2018년 7월 17일 화요일

과학계 정설의 인용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인가? : 과학주의에 대한 적확한 비판을 향하여

  '누군가 A가 참이라고 했으므로 A는 참이다'라는 논증은 분명히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A는 학계의 정설이다'라는 명제는, 개념 정의를 잘 하고 논증을 잘 구성한다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없이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 A를 인용하여 어떤 논증을 구성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는 딱히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아니다.

  페이스북 철학 그룹 등에서는 과학 지식들에 익숙하며 그것들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구축한 자들을 비난함과 함께, 그 사람들이 과학 지식의 권위를 맹신하는 문제를 저지른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이러한 주장은 과학도 결국 종교 아니냐고 주장하려고 하는 종교인들이나, 과학주의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철학적 비판자들에 의해 이뤄지는데, 이러한 주장이 근본적으로 취약한 이유는 바로 위 문단의 두 가지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들은 모두 유보적인 것이며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새로운 지식이 얻어짐에 따라 그 지식들로부터 유비적으로 얻어지는 우리의 세계관도 바뀔 수 있는 것인데, 과학주의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비판자들은 확실성, 진리성에 대한 과도한 추구 때문인지 늘 '과학 지식은 확실한 진리가 아니다'라는 점만을 강조하며, 과학 애호가들이 무언가를 크게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진리가 아니지... 게다가 현재 과학 교과서에 수록된 주장들이 후대에 의해 즉시 기각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견디어 왔다는 점도 종종 통째로 무시되곤 한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예외가 있는 지식은 완전히 틀린 것이며 따라서 채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과학 애호가들이 개별 지식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어떤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을 논파할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지식들이 속해야 할 층위를 혼동하는 경우가 적다고는 할 수 없으며, 그 해악도 상당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저질러지는 일 역시 잦다(물론 내 생각에 더 중요하게 비판되어야 하는 것은 자연주의의 오류이지만 말이다). 그러한 태도를 과학주의 내지는 과학만능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철학의 논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근세의 사변적 회의주의 정도에 불과한 위와 같은 주장들은, 이러한 과학주의를 비판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가 지나치게 취약하다.

  개인적으로는 과학주의에 대한 적확한 비판을 생산하려면 실제 아카데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면서, 과학 애호가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지식의 단순 나열을 통해 논증하는 것, 혹은 과학 지식을 이용하여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 모두 딱히 '과학적'이지 않으며(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 개별 과학 지식이 생산되고 비판되는 과정만이 과학적일 수 있는 것임이 과학 애호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인지되도록 해야 한다.

  과학 애호가들이 스스로의 작업을 '과학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깊은 일이다. 그리고 과학주의의 세련되지 못한 비판자들은 이것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과학을 비판한다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 사고는 제거된다. 과학적인 것과, 과학을 둘러싼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학을 둘러싼 담론에서 과학적 사고가 제거되는 이러한 현상은 웃기긴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학을 둘러싼 담론에서 과학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이 아닌, 지식들의 층위를 분별하는 비판철학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이 보다 제대로 설정된 목표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방법론은 전문화된 영역인 데다 100% 완벽한 매뉴얼화된 과학적 방법론이란 없으므로 모두가 과학적 방법론을 직접 획득하는 일은 이상적으로조차 불가능하지만, 과학적인 것과 과학을 둘러싼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비판철학적 사고를 모두가 갖도록 하는 것은 이상적이라면 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과학주의에 대해 철지난 사변적 회의주의 이상의 더 적확한 비판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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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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