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감상이지만 식물들이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약동하는 생명력의 정점과도 같은 모습, 밀도높고 다채로운 모습이 식물들에서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식물의 일부분을 잘라 심어도 자라난다던가 하는 식으로 동물과는 이질적인 방식의 재생산이 가능함을 접할 때, 농사를 짓기 위한 육종의 시도에 잘 반응하여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 그야말로 전혀 다른 식물처럼 되어버리기도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순간순간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며칠 만에 산비탈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그 양이 늘어나는 개체군을 볼 때 등등. 심지어 빛에 반응해서 밤낮에 그 모습을 달리하는 것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계절에 따라 식물들이 말랐다가도 잎이 다시 나는 것 등, 생명력과 그것이 가져다 주는 주기적 현상들에 대한 애호는 가지고 있고, 조그만 식물들은 무척이나 예뻐하는 편인데 말이다. 게다가, 단일 식물체(?)일지라도 무척이나 화려한 꽃들은 왜인지 위와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용이하여, 사진 같은 건 신기해서 찾아보곤 하지만 집에 두거나 하기에는 부담스럽더라.
살아있는 것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일 수가 있지만 한편으론 어디로 튈지, 얼만큼 커질지도 알 수가 없고 지양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삶의 이런 측면이 인간의 일상에서는 주로 정제된 형태로 보이는 것과 달리 꾸역꾸역 자라난 식물들의 화려함 속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 그것이 어떤 위화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식물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텐데 말이다. 좀 전혀 다른 얘기지만 에반게리온이나 사도들의 통제불가능하고 제압불가능한 특유의 생명력이 무척 매력적인 소재인 이유와도 비슷할 것 같고. 물론 자연물들을 내 마음대로 상징으로 간주하고 비평적으로 얘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위에서 예시들을 쓰다 보니 든 생각인데, 어쩌면 식물들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실제로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서 약간 이상한 것뿐인데, 거기에 온갖 감상이 붙은 걸 수도 있겠다. 얼마나 활발하냐에 따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지, 무질서한 자원을 빨아들여서 질서있는 패턴과 구조를 만들어내며 생장한다는 점 자체는 기본적으로 확실히 매력적이고 놀라운 것이기도 하다. 뭐 이건 식물만이 아니라 대다수 생명체가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다채로운 현상들을 예뻐해야만 한다는 것도 좁은 시각일 것이고, 그렇다고 굳이 싫어한다고 픽스해 두거나 조그만 식물들만 좋아한다고 픽스해 두어서 좋을 것도 없는 듯하다. 따라서, 감상적 태도를 완전히 극복하긴 힘들더라도 위에서 말한 보편적인 애호를 바탕으로 직시하고 알아 가는 태도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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