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지난 몇 년간 추진한 월급 인상과 휴대폰 허용 등 병사 처우개선은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지자면 이는 편견과 관성 때문에 누구도 추진하지 못했을 뿐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에 속하며 군대문제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 성과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는 어떠한가? 지난 보궐선거 이후에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첫째로 (특히 코로나 대응에서의 인권침해와 관련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부조리가 폭로된 게 있다. 이 부분은 장관까지 사과하는 등 꽤 잘 되고 있다고 본다. 겁먹고 더욱 은폐하려는 쪽보다 폭로 하려는 쪽이 힘이 세지도록 앞으로도 정치권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테다.
그러나, 병역제도 자체와 관련해서 여당에서 내놓는 여러 방안들은 명백히 불충분하고 때로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 안보, 젠더문제, 복무자 인권 등 다양한 이슈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병역제도에 대한 큰그림을 찾아보기 힘들다. 군가산점 부활은 물론이거니와, 박용진 의원이 제안한 평등복무제 역시 평등복무 그 자체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런데도 딱히 그렇게 평등한지도 모르겠고, 많은 인원에게 실질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숙련도를 확보하기 어려운 등 국가 입장에서나 개인 입장에서나 낭비만을 일으킬 방안에 가깝다고 본다.
나는 이런 현상이 병역과 관련한 불만을 어떻게 '달랠지' 생각하다 보니, 기계적 공정함에 영합해서 비교적 '쉬운' 근시안적 대책만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군대문제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의 본질은 불만 달래기 그 자체라기보다는, 군대가 실제로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일테다.
보상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겠지만 더 어려운 문제인, 군대 조직을 적당히 들볶으면서 군대문화 자체를 바꿔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군대에서 무슨 사건이나 문제제기가 생겼을 때 악명높은 보신주의적 일처리와, 그에 따라 모든 책임과 고통이 피해자한테 돌아가는 그 뿌리깊은 구조 자체를 혁파해야 한다.
일단 사건을 덮어서 얻는 이득보다 그 은폐의 시도가 폭로되었을 때 얻는 손해가 더 크다면 어떻게든 움직이긴 할거라는 점에서, 휴대폰 허용에 따라 그런 폭로가 보다 수월해진 점은 일단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건 군대문화의 말단에서 코너에 몰린 당사자가 택할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서 어떤 시작점일 뿐이다.
결국은 간부가 병사를, 선임병이 후임병들을 사람 취급할수 있게 하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귀찮은 골칫거리로 인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만으로 된다고 하면 순진한 소리일 거고, 징계 등과 관련한 상급자의 손익 판단이 하급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방향으로 덜 가게 하는 장치들을 생각해볼수 있을 것이다. 박용진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로 시도했던 것과 같은, 병역제도에 대한 보다 큰 그림들도, 군대문화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돌려놓는 모멘텀이 확실히 보일 때에야 더 성숙한 형태로 다시금 따라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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