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8일 일요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보며: 제도보완뿐 아닌 미시적 인식개선도 동반되어야 한다

 6년 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며 여성 안전과 페미니즘 관련해서 처음으로 길게 써봤던 내 생각(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1746071250431&id=100002451425265)은 엉성하긴 하지만 그 쟁점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대하는 작금의 세간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어떤 사건의 발생 기제가 여성혐오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과 그 뒤에 숨어있는 반동적 가치판단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이제는 그 논쟁을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여가부장관이 받아서 무려 정권차원에서 조장하고있다. 현실적 위협 앞에서의 '젠더 갈등'이라는 기만적 용어사용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의 개념을 더 정확히 설명하자는 방향으로의 노력은 그 이유가 어떻든 성공하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꼭 그 개념을 적확히 수호하면서 전달해야겠다는 의지 자체도 몇년 사이 공허해졌다. 여성혐오의 타개에는 친절한 설명과 설득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매체 및 생활에서 실제로 여성혐오라고 불릴수있는 답답한 공기가 존재한다는걸 체감하는 여성당사자 중심의 담론의 비중이 높아지고, 이번 민주당 모 시의원 발언같은 남성중심적-폭력적 발언들이 제지되고 자제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선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보이는 여성혐오 논쟁과, 매우 직접적인 여성 대상 폭력 문제를 잠깐 나눠서 얘기해 보겠으나, 이 둘은 칼같이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다. 먼저 스토킹범죄와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절실히 필요해보인다. 공권력이 예전보다는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 가해자가 직장에서 직위해제 되었어도 데이터베이스를 볼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더 꼼꼼하게 막아야 할것이다.


또한 접근금지나 구속 등의 조치를 더 적극 검토해서, 조치가 명백히 필요한 상황인데도 법적으로 할수있는 일이 없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피하는 것과, 국민 모두가 가진 원칙적인 법익을 심대하게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피해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실무경험 축적과 연구가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보완 외에 인식의 변화도 당연히 뒷받침 되어야 하며, 적어도 여기에는 세간의 여성혐오 논쟁이 들어갈 자리가 충분해보인다. 그리고 이하에서 보겠지만 이는 제도보완과 아주 분리된 문제만은 아니다.


먼저 그러한 보완된 제도의 수혜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개인들의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직위해제된 스토킹가해자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걸 막는 등의 예방조치는 제도개선만으론 되는 것이 아니고, 각 직장 내에서 일 처리가 돌아가는 구조를 잘 알고 실제로 조치를 취하는 이들의 사려깊은 꼼꼼함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그들 개인이 스토킹문제의 심각성과 관련해서 미적지근해하지 않고 인식을 함께해야한다.


또한 구속이 안된 이유가 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서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정확히 어떤지 몰라도 과거 의대생 성범죄 사건들 당시에도 그런 얘기들이 있었던 걸 보면 영 실체가 없는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미래가 창창한 청년 타령은 기성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게,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전문직일 경우에 노력을 해서 뭔가를 성취했을 가해자의 인생서사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이입이 인터넷에서도 꽤 보인다. 그런것들이 쌓여 잘못된 인식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아무튼 그게 사실이라면 법관들의 그러한 잘못된 정서에 대한 국민들의 큰 질타와 법관 연수 같은 프로그램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판결 사례와 좋은 판결문의 축적이 필요할것이다.


또한 인식의 변화는 스토킹피해를 비롯한 성범죄를 겪고 있는 이가 주변의 인간적인 이해와 지지를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토킹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불편한 접근과의 연장선에 있는 면도 있겠지만 알고보면 잘 정의된 특유한 문제행동이며, 피해자와 가족의 일상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라는 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미시적 인식 개선과 거시적인 제도 개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이 있는 것이고 어느쪽에 비중을 두느냐는 각자의 판단인것이지, 그 둘이 충돌하는데 후자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므로 전자는 틀렸다라고 이야기하는건 적절치 않아보인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여성혐오의 개념을 끌어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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