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9일 목요일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서평: 복합위기 앞의 우리가 경성 지식인들에게 배울 점

오늘자 우리 동네 자율독서모임에는 지난 4월 4일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소 콜로퀴움에 강연하러 오신 민태기 박사님께 사인까지 받았던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가져와서 읽고 있다.

그날 강연의 중심 내용이었던, 과학혁명 시기를 중심으로 서구 근대 과학사를 주로 다룬 책 <판타 레이>와 비슷하게, 이 책도 과학지식 그리고 과학자들이 역사의 중요 사건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아 왔는지를 중심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쟁과 정치 위주의 역사서술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화사와 정치외교사의 접점을 풍부하게 서술하므로 지극히 흥미롭다.

소소하게는 안창호 선생의 호인 '도산'이 하와이 섬을 보고 지은 것이라는 점부터, 책의 제목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과 양자 역학이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언론에 연재기사로 상당히 정확하게 소개되었고,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순회강연을 했을 때 (비록 조선 초청은 실패했지만) 조선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었으며 최윤식 등이 상대론에 대한 순회 강연을 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 등등 잘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이 책에서는 매 페이지마다 트럭 단위로 쏟아지며, 그런 사실들이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라는 책처럼,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이 굉장한 수준의 국제적 감각과 실천을 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외 불확실성에 정면으로 노출된 채로 반세기 넘게 고도성장을 해온 대한민국에서, 세계정세 혼란과 국내 사회문제 누적으로 복합위기를 마주하고있는 현재의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 할 태도가 많다고 보인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서 학술검색엔진 Google Scholar에 검색을 해 봤는데, 우장춘 박사가 주창한 생물학 개념인 우장춘의 삼각형(Triangle of U)은 무려 2020년대 들어와서도 Brassica 속 식물에 대한 논문들에서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활발히 인용되고 언급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한국의 선구적인 과학자들이 많고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우장춘의 연구가 해당분야에서 현재까지도 상당히 활발하게 인용되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민태기 박사님의 다른 저작인 판타 레이』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근대화 시기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과와 문과의 구분이 상당히 희미했다는 점이다. 계몽운동과 정치개혁에 참여한 이들이 과학에 상당히 본격적인 수준의 관심을 표명하고 토론에 참여하거나 아예 직접 연구한 경우가 많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문/이과 분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문화에서 지적되었듯이 이러한 분리는 부작용도 많으며, 한국에서도 장기간의 분리에 따라 상호이해와 교류가 부족한 면이 많다. 문이과가 다시한번 머리를 맞대고 당면한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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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4일 토요일

민주당의 기술사회학적 상상력은 왜 에너지문제 앞에만 서면 멈추나

나는 여러 정치 이슈에 있어서 대체로 보수진영보다는 넓은의미의 민주/진보진영과 스탠스가 겹치는 편이지만,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 및 지지층과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나는 현재까지의 역사와 지금의 정치지형에 비추어볼때 민주당이 잘 살릴 수 있는 강점은 지나친 기술 및 자본 낙관주의를 경계하고,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권익의 불평등과 민주성의 침해를 짚을 줄 아는 적당히 세심한 사회적 감수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에너지문제에 있어서 원전에 반대하고 신재생 위주의 포트폴리오에 지나친 낙관을 보여줄 때만큼은,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잘 어울리지도 않는 경제논리(이미 원전 경제성을 신재생이 추월하고있고, 신재생으로 안만들면 해외기업이 안 사준다)로의 무한 환원, 그리고 계속 연구개발 중이니 잘 될 것이라는 기술낙관주의를 끌어온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 다수가 이게 어색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이게 기술낙관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이라고 느낀다면 내 스탠스가 남들과 많이 다르긴 한 것 같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나타나고있는 정치적 스탠스가 내 머리속의 구획과 다르면 현실부터 인정하고 시작은 해야 되기는 하겠다.

(2025.12.08: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더 온건해졌다. 의도적으로 원전을 사양시켜서든 아니든, kWh당 태양광 경제성이 원전을 추월한 것이 이미 벌어져버린 사건이 맞다면, 또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들이 아니고서는 판매가 어려워지는 흐름이 주류가 된다면, 그쪽으로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원전기술이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가진 커다란 장점과 그 분야에서의 한국의 경쟁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천안함 음모론에 어느 정도는 선 그으려는 태도를 보여주니 심하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은 마치 천안함 사건 당시 평소에 군사, 안보에 크게 관심도 없었을 사람들이 생존 장병들에 대해 위악적으로(?) 패잔병이라고 가혹하게 말하던 기괴한 현상이 생각나기도 한다. 자신들 상상 속의 차갑고 엄격한 지휘관처럼 그렇게 가혹한 태도를 보이면 군을 잘 아는 세력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당연히 실제와는 거리가 있고 대단히 어색하다. "나는 민주/진보 지지 성향이지만 이럴때만큼은 차가운 경제논리도 적용할줄 안다", "이건 절대로 이념에 기반한 게 아니고 차갑고 실용적인 판단의 결과이다"하고 애써서 과시하는 느낌이 든다.

이준석이 사회갈등에 대한 근본적 진단을 은폐하고 겉보기 현상의 말단에서 사회운동세력이 보이는 행동을 희화화하기 위하여 과학, 합리, 이성을 소리높여 외칠 때마다 내가 다 화끈거릴 지경이지만... 유독 신재생에너지 쪽에 대해 민주당 쪽이 보여주는 '투자하면 무조건 발전한다'하는 경제논리 및 기술낙관주의도 이와 비슷하게 화끈거리는 느낌이 있다. 이 '나이브하다'라는 말조차 우파들이 낭만주의적 진보좌파를 비난할 때 쓰는 전형적인 단어라서 별로 안 쓰고 싶은데, 이 경우에는 좀 적용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에게 부족한 것은 (우파 쪽에서 사실은 자기들도 잘 모르면서 흔히 조롱하듯이) 기술의 내용적, 기능적인 면에 대한 전문성 이전에, 자신들이 가장 잘 해야 할, 기술인프라가 그 자체로 사회적 구성물이자 사람들의 삶과 산업을 조건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는 태도, 잘 되면 좋고 노력해야 하지만 정말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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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6일 금요일

독서모임 소개 및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서평

독서모임 소개

나는 늘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은 하고 다니지만 정작 시간 활용을 정말 못 하고, 다른 자잘하고 다양한 일들에 늘 압도되다 보니, 책을 실제로 펼쳐서 읽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결국은 하는 일의 가짓수를 좀 줄이고 본업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런데 올해 3월경부터 들어가게 된 독서모임을 통해 책 읽는 시간을 꽤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은 크게 자율독서모임과 지정독서모임으로 나눠지는데, 먼저 자율독서모임에서는 각자 책을 가져와서 간단하게 소개만 한 뒤에 자율적으로 읽는다. 자연스레 약간의 수다는 떨어도 되지만 서로의 신상은커녕 이름조차 모르고, 정말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정독서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만 있는데, 이때는 책 내용을 두고 1시간 반 정도 토론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독서모임은 2018년에 몇 번 나가 봤던 서울대학교 고전연구회다. 거기서는 서로에 대한 과도한 관심 없이 오직 문학책의 내용과 거기서 드러나는 인간관 및 세계관을 둘러싼 toxic한 발제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견주어보며 교류한다. 조용하게 책 좋아하는 문학소녀, 문학소년들이 사실은 제일가는 광인들이라는 격언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하지만 편안한 자리랄까.

그런데 이 독서모임은, 꼭 소설이나 인문학 책만 읽는 게 아니고 주식투자, 종교, 자기계발 등등 가벼운 실용서적 읽는 분들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고전연구회처럼 독서인들끼리의 편안한 분위기가 났다. 적당한 갓반인(?) 분들이 부담없을 정도의 친화력으로 챙겨주시고, 가벼운 수다도 떨면서 각자의 페이스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책을 가져가서 일주일에 한두시간쯤 집중해서 읽기에 아주 좋은, 부담없는 자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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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전 배경 조사

이렇게 자율독서모임만 참석하다가, 처음으로 가보게 된 5월의 지정독서모임에서는 지정도서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선정되었다.

지정 말고 자율독서 시간에는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재테크 책이나 종교책, 자기계발서 같은것도 딱히 읽는 데 제한이 없는데다,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쟁은 피하는 분위기의 모임이다보니,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2020년대에 재호출된 이 책이 선정된 것은 조금 의외였다 (관리자님도 분란이 생길까봐 걱정이 많았다고 하셨다). 예컨대 4월 지정도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이 책도 이야깃거리는 많지만 현실 문제에 대해 논쟁이 발생할 지점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쯤부터 양귀자의 모순이 여러 곳에서 제목이 언급되고 꽤 인기를 끄는데도 그 명확한 계기를 알기 어려워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아래의 논문(조하린, 연남경, "'양귀자 현상'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독자 행위성 연구," 이화어문논집 64 (2024).)을 보니, 모순』과 『나는 소망한다~』가 트위터에서 플로우를 타면서 인기를 얻게 된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더 선행하는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논문 외에도 최근의 이러한 '양귀자 현상'을 다룬 논문이 몇 건 더 있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 영향을 받을까봐 논문들을 자세하게 읽지는 않았다.


이 책은 장르론적으로는 추리, 범죄소설에 가까운 점이 있는데다 출판 직후(1992년)에는 오히려 페미니즘의 탈을 쓴 반페미니즘적 통속 소설이라고 평가되는 경우도 많았다는데, 최근에 페미니즘 서적으로 재호출되고 해석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이 흥미로운 듯하다. 읽으며 이 지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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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서평




이 단락에서는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작성한 두서없는 소감을, 독서모임 사람들의 토론을 마친 뒤 조금 보강해서 써본다.

일단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나는 소설책을 논픽션에 비해서도 특히 잘 못 읽는다. 일단 작가가 밀도높게 직조해놓은 인물과 세계에 dive in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내용이 100% 파악되지 않으면 페이지를 잘 못 넘기고 계속 앞으로 돌아가는 강박이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은 생각해볼 점이 많으면서도 아주 잘 읽혔다.

나는 주인공인 강민주가 세상에 자신의 메시지를 무리하게 발신하려는 과정에서 파국이 일어날것으로 예상했는데, 정작 그 과정은 매우 스무스했고 세상 사람들도 여기에 호응해서 열광한 점이 일단 의외였다. 강민주의 이러한 메시지 발신과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딱히 자세히 묘사되지조차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오히려 다소 평면적인, 소설의 탈을 쓴 페미니즘 교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오히려 주요 인물들 위주의 군상극으로 진행된다.

파국이 일어나는 것은, 강민주가 뜻밖에도 인간적인 매력과 연민, 개인적 관계에 물들고 그의 계획이 실패해서이다. 그런 후반부는 어찌보면 다소간에 전형적인 흥미 위주의 추리소설 내지는 범죄소설, 혹은 결말에서 등장인물의 죽음이라는 (자극적이지만 그런만큼 전형적인) 장치를 통해 긴장을 폭발시키곤 하는 하나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저자 또한 희곡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후반부의 주요 소재 또한 연극이다. 그래서 소설의 볼륨이 후반부로 갈수록 확 좁혀지는 기분이다.

강민주는 매우 강한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똑똑하고 돈도 많아서 그러한 자기확신에 근거한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강민주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기 자신 또한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비범함'일 것이다. 이 인물의 성장 배경과 사고방식에 대해 알게 되는 앞부분이 독서 과정에서 사실 제일 재미있었다. 강민주는 세상에 대해 완전히 냉소적이지만은 않다. 뛰어난 취향과 안목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있는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은 즐길 줄 아는 강인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바깥의 것들은 가차없이 깔보는 면이 있다.

강민주에 대한 내 '비범함'이라는 해석은 독서모임에서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다. 나는 나 자신 및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마치 강민주처럼 자기가 똑똑하고 자기의 안목을 신뢰할 만하다는 확신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경우(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를 많이 봐 와서, 이런 캐릭터성이 다소 과장되었을지언정 충분히 내적 모순 없이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자들은 강민주의 이런 태도를 매우 생소하고 비현실적이며,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강민주에게도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본연의 어떤 모습이 억압되어 있을 것이며, 그것이 백승하를 통해서 회복되는 과정이 소설의 주요 줄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강민주의 비범함이 아버지의 심각한 가정폭력을 겪으며 어머니에게 강하게 키워진 결과임을 감안할 때 이 또한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비범함'이라는 내 해석을 조금 더 끌고 가 보자면, 강민주가 백승하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발휘(아들을 만나게 하면서 단서를 남기는 것)하거나, 김인수를 끊어내지 못하고 전화에 응하는 장면 등은 독자에게는 백승하와의 관계에 물들게 되면서 일어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강민주 스스로에게는 이것조차 비범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비범함 덕분에 정당화된다.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고 실패할리가 없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그러나 독자가 볼 때 그러한 행위들이 결국에는 강민주가 목적 달성에 실패하는 데 구체적으로 기여하고있다.

이는 후반부에서 강민주의 동의 하에 ‘연극 속에서’ 백승하와 강민주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것과 겹쳐 보인다. 그리고 연극 속 권력관계 역전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은, 결국 연극 바깥의 강민주가 실제 바깥 상황을 장악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발생하는 파국과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여기서 해석에 차이가 나는 부분은, 강민주의 계획이 (심지어 대중의 호응과 관심을 얻었음에도)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와 관련해서이다. 계획이 실패한 이유가 그저 그의 비범함이 어떤 억압의 결과로 형성된 허위의 것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적 형식에 따른 권력관계 때문일까?

이는 소설이 출간 당시에 페미니즘의 외양만을 취한 상업소설이라고 비판받았던 이유와 결정적으로 관련된다. 결국 전통적인 남녀관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흥미, 통속 위주의 스토리로 마무리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급진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그러한 비판은 일리있다. 그러나 앞부분에서 화자인 강민주를 통해 세밀하게 묘사되는 여성주의 담론(작가의 문제의식 없이는 불가능한)을 보았을 때 페미니즘적 재해석의 가능성은 많아 보인다. 최근에 재조명받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강민주가 개인적 관계에 물들고 감정의 변화가 묘사되면서 통속소설과 같은 전개로 끝나는 것이, 당대에는 '폭력적, 혁명적인 해결방식은 결국 끝이 안 좋다', 혹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 관념대로) 감정에 물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것이며 그걸 계속 거부하기는 어렵다' 식의 다소간에 기만적인 평화주의나 전통주의로 해석되어 첫 출판 당시에 반페미니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래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실제로 이번 독서모임의 토론자들 중에 꽤 많은 수가 이런 식으로 해석하고, 이 책의 결말이 찝찝하지 않고 해피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평화주의적 독해의 가능성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현대 독자들이 읽기에는 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재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면도 있어 보인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얽히면서도, 조건지워진 사회적 형식을 급진적으로 극복하고 자기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최근에 재조명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한다.

심지어 강민주는 자신의 비범함을 바탕으로 백승하를 설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꽤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백승하는 자신이 선망받는 남자배우로서 인기를 얻어온 바로 그 방식,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분야인 '연기'를 하자고 요구함으로써, 그토록 비범하고 자신감에 차 있던 강민주를 굴복시키고 본인이 상황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상술했듯이, 이것이 ‘감정에 의해 흔들리는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단순히 재현하면서 이 작품을 통속소설에 그치게 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당대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점도 이러한 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재현을 통해 젠더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하는 방식의 재해석도 가능해보인다.

내가 느끼기엔 백승하의 부드러움은 강민주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물리적인 폭력과 반대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남성의 젠더권력을 동원하는 또다른 방식일 수 있다. 백승하는 힘든 시간을 겪지만 결국은 하나도 잃은 게 없이 끝난다. 이것도, 전통적인 마초적 남성상과는 다른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인간적 연민에 호소해서 상황을 장악하는 능력,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너무나도 모범적인(?) 내용의 인터뷰를 함으로써 또 인기 남배우로서 박수를 받게되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도 남성의 부드러움과 스윗함 역시 간접적인 형태의 젠더권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켜주었다.

결국 백승하는 실제로 강민주를 만나서 생각이 바뀌기까지 했음에도 결국은 원래 인기를 얻은 그 방식으로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작중에서 뭇 여성들을 계몽시키고자 하는 강민주의 설파에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열광적인 반응들이 있었고, 백승하 본인도 생각이 바뀐 부분이 많다는 점은 재미있는 상상의 여지들을 남긴다). 여성 입장에서 태도를 급진적으로 관철하는게 쉽지 않은 것만큼, 남성 입장에서도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권력관계의 극복을 실천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들을 들어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상당히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이 소설은 비록 강민주가 범죄를 저질렀으니 좋게 끝나기는 애초에 어려웠지만, 본질적으로 강민주와 백승하가 서로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게 된 해피엔딩이고, 남녀 갈등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작가의 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긴 하다고 한다). 물론 내가 백승하의 스윗한 카리스마와 연극 연습 제안이 젠더권력을 동원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한 것에 동의를 표해 준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두 가지 독해가 정말 다르면서도 화해의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게 바로 90년대와 2020년대의 서로 다른 독해와도 겹쳐 있는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독서모임 관리자님이 제시한 공통 질문지를 공유해 본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질문지]
오늘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질문 간단하게 작성해 보았어요. *이 질문지가 필수는 아니기 때문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1.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제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이나 생각은?

2.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금지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 인물의 욕망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었나, 아니면 거부감이 들었나?

3. 작품 속 인물들은 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억누를 수밖에 없었을지? 현실의 우리 사회와 비교했을 때, 작품 속 사회 구조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느꼈는지?

4. 양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5. 나에게도 ‘금지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외부의 시선, 두려움 등)

6. 인상깊었던 문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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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0일 토요일

국민의힘의 한덕수 대선후보 기획 추대

국민의힘 지도부의 김문수 끌어내리기와 한덕수 추대는 정말 역대급 사태인듯하다. 5월 11일까지면 잘 쳐줘야 48시간인데, 그 사이에 대선후보를 새로 뽑겠다는 게... 당원들의 의견을 구하고 정당성 부여하는 최소한의 형식을 어떻게 하려는지?


아무리 그래도 대선후보라는 게 국가적 초 중대사인데, 거대 정당이 이렇게 인스턴트하게 이틀만에 대선후보를 뽑아서 올린다는 것은 당원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다. 지도부는 어차피 후보는 김문수는 단일화 용이고 최종 후보가 한덕수인 걸로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틀만에 대선후보를 정한다는 게 일반 국민들 보기에 대체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밑에도 쓰겠지만 당 지도부가 이런식으로 무리하게 하는 배경에는 이미 파면된 대통령(실)과의 교감이 있다는 설도 있다.


한덕수 총리는 비상계엄은 정말로 몰랐던 것 같지만, 알게 된 이후에 국정 2인자로서 그걸 저지하지 못한, 원론적 무한책임 이상의 구체적 책임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이후 국민들이 너무나 불안해하는 살얼음 같은 시국에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으면서 헌법질서를 (소극적으로가 아닌) 적극적으로 해치고 내란수괴를 사실상 돕는 행보를 보인 잘못이 너무 크다. 대선 관리와 외교 유지를 해야 할 책임을 던지고 대선후보로 나온 것 자체도 문제가 많다. 흔히 생각하는 관료적 성정은 아니어서 대단히 깜짝 놀랐다. 내 생각에, 관료적 보신주의는 흔히 절제심과 관련지어 이해되지만 사실 그 본성은 기회주의에 더 강하게 닿아 있고, 승진을 거쳐서 더 올라갈 데가 없어질 때에, 혹은 위기를 마주할 때에 그 기회주의적 면모가 본색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김문수는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긴 하지만 그 역시 비판받을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물론 전설적 노동운동가의 아우라가 이번 이번 국면에서의 곤조와 겹쳐 보이면서 밈적으로(?) 응원하게 되기도 했지만, 사실 김문수는 전광훈을 위시한 기독교 극우에 합세했을 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한 번 갔기도 하고, 지금도 극우기독교와의 결탁을 숨기지도 끊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또한 그 역시 비상계엄 자체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긴 하지만 그 이후에 계엄에 은근히 정당성을 부여하고 탄핵에 노골적으로 반대한 잘못이 너무 크다. 혹시 당권을 먹게 된다면 망해가는 당의 일이라고 팝콘 먹으며 지켜볼 일이 절대로 아니고, 윤석열이 깔아 준 극우의 고속도로에서 본격 21세기형 극우정당이 등장하는 셈이 되며, 이는 국가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여파로 돌아올것이다.


반 년간 너무 엄중한 시국을 지나왔고, 법조엘리트들과 검찰 출신 정치인들의 지속적인 윤석열 봐주기와 이재명 때리기가 어느 정도는 의심되는 상황이다. 물론 나는 이게 모두가 결탁한 큰 그림이라기보다는 서로 공을 떠넘기다 보니 전반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은 든다. 애초에 낙선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열리는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도 하기는 한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목적이 아주 명확한 여러 무리한 법안을 내고 있는데, 지금의 분위기는 마치 문재인 정권 최후반에 검찰 손발 자르는 법률을 집중적으로 통과시킨 것, 아니 그 이상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최후반과 달리 지금은 민주당이 정권을 곧 잃는 입장이 아니라 곧 얻을 것이 유력한 상황이고, 만약 정권이 넘어간 후에도 이러한 관성이 계속된다면 (비상계엄 선포에 비할 바겠냐만) 법질서의 형해화와 그 장기적 영향이 지극히 우려되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지금 시국이 극우 유튜브와 부정선거 음모론에 경도된 윤석열 개인의 심각하게 일탈적이고 망상적인 조치에서 결정적으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크게 보면 검찰과 민주당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6공화국 통치구조 내부의 심각한 권력투쟁이라는 긴 터널을 우리가 2019년부터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생각도 든다. 온갖 기괴한 실정을 저지른 윤석열 정권과 그 하에서 극우로 치달은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당에 대한 내 감정도, 2024년 12월 딱 한 달 가량을 제외하면 든든함보다는 대체로 걱정스러움에 가까웠다.

그 과정에서, 산업구조 혁신 및 국민 생애주기설계의 총체적 실패와 인구 급감 때문에 이미 예정되어있는, 그 어떤 나라도 겪은 적 없는 새로운 문제들을 한시라도 빨리 논의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여러 중대사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재명 선대위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역시나 문제가 많은 경제참모들이 포진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30% 내외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지지하고 있는 국민의힘이라는 제2정당이 이정도로 지리멸렬하고 이기적인 모습,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한덕수를 후보로 만들려는 모습(원래 선출된 후보가 극우개신교 부역자이자 내란수괴 탄핵 반대자 김문수인 것부터도 내용적으로 당의 민주역량의 실패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신나게 팝콘을 뜯을 일만은 아닌듯하다.

하루하루가 웬만한 영화보다도 무척 박진감 있게 돌아가는 만큼, 잠시 걱정을 접어두고 이 사태의 전개 자체를 즐기는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표명은 긍정적인 것이고 존중되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러나 그 귀결은 한국 정치문화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져야 하며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한덕수는 국민이 불러냈다기보다는 철저히 국힘 지도부에 의해 기획되어 추대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위에도 썼지만 그 기획의 과정에서 대통령실 사람들, 심지어 윤석열 본인과의 교감이 있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한국 정치에 더 큰 어둠을 드리우는 일이고 철저히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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