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4일 토요일

민주당의 기술사회학적 상상력은 왜 에너지문제 앞에만 서면 멈추나

나는 여러 정치 이슈에 있어서 대체로 보수진영보다는 넓은의미의 민주/진보진영과 스탠스가 겹치는 편이지만,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 및 지지층과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나는 현재까지의 역사와 지금의 정치지형에 비추어볼때 민주당이 잘 살릴 수 있는 강점은 지나친 기술 및 자본 낙관주의를 경계하고,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권익의 불평등과 민주성의 침해를 짚을 줄 아는 적당히 세심한 사회적 감수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에너지문제에 있어서 원전에 반대하고 신재생 위주의 포트폴리오에 지나친 낙관을 보여줄 때만큼은,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잘 어울리지도 않는 경제논리(이미 원전 경제성을 신재생이 추월하고있고, 신재생으로 안만들면 해외기업이 안 사준다)로의 무한 환원, 그리고 계속 연구개발 중이니 잘 될 것이라는 기술낙관주의를 끌어온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 다수가 이게 어색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이게 기술낙관주의가 아니라 휴머니즘이라고 느낀다면 내 스탠스가 남들과 많이 다르긴 한 것 같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나타나고있는 정치적 스탠스가 내 머리속의 구획과 다르면 현실부터 인정하고 시작은 해야 되기는 하겠다.

(2025.12.08: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더 온건해졌다. 의도적으로 원전을 사양시켜서든 아니든, kWh당 태양광 경제성이 원전을 추월한 것이 이미 벌어져버린 사건이 맞다면, 또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들이 아니고서는 판매가 어려워지는 흐름이 주류가 된다면, 그쪽으로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원전기술이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가진 커다란 장점과 그 분야에서의 한국의 경쟁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천안함 음모론에 어느 정도는 선 그으려는 태도를 보여주니 심하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이것은 마치 천안함 사건 당시 평소에 군사, 안보에 크게 관심도 없었을 사람들이 생존 장병들에 대해 위악적으로(?) 패잔병이라고 가혹하게 말하던 기괴한 현상이 생각나기도 한다. 자신들 상상 속의 차갑고 엄격한 지휘관처럼 그렇게 가혹한 태도를 보이면 군을 잘 아는 세력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당연히 실제와는 거리가 있고 대단히 어색하다. "나는 민주/진보 지지 성향이지만 이럴때만큼은 차가운 경제논리도 적용할줄 안다", "이건 절대로 이념에 기반한 게 아니고 차갑고 실용적인 판단의 결과이다"하고 애써서 과시하는 느낌이 든다.

이준석이 사회갈등에 대한 근본적 진단을 은폐하고 겉보기 현상의 말단에서 사회운동세력이 보이는 행동을 희화화하기 위하여 과학, 합리, 이성을 소리높여 외칠 때마다 내가 다 화끈거릴 지경이지만... 유독 신재생에너지 쪽에 대해 민주당 쪽이 보여주는 '투자하면 무조건 발전한다'하는 경제논리 및 기술낙관주의도 이와 비슷하게 화끈거리는 느낌이 있다. 이 '나이브하다'라는 말조차 우파들이 낭만주의적 진보좌파를 비난할 때 쓰는 전형적인 단어라서 별로 안 쓰고 싶은데, 이 경우에는 좀 적용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민주당에게 부족한 것은 (우파 쪽에서 사실은 자기들도 잘 모르면서 흔히 조롱하듯이) 기술의 내용적, 기능적인 면에 대한 전문성 이전에, 자신들이 가장 잘 해야 할, 기술인프라가 그 자체로 사회적 구성물이자 사람들의 삶과 산업을 조건화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는 태도, 잘 되면 좋고 노력해야 하지만 정말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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