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문재인 정부가 소위 촛불정신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반영한다면 좋은 일일 것이며, 나 역시 그러길 바란다. 70퍼센트대의 지지율을 가진 정부와, 대선 당시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역량을 보여준 민주당이 그 능력을 좋은 데 활용해서 바람직한 방향의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그 촛불 정신의 '필연적인' 귀결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허지웅 평론가가 문재인 정부가 '혁명 정부'라는 특수성을 가지므로 정부의 방향성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서사적 미의식을 정치영역에 투사해서 나온 부당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강력한 여론에 의해 뒷받침된 일련의 정교한 민주적 절차에 따른 박근혜의 탄핵은 그 정치사적 의미가 대단히 크다. 촛불을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으로 귀속시키지 말고 개별 정부를 초월해 있는 무엇으로 보되(한국의 민주주의 환경을 볼 때, 촛불 개념을 이렇게 잡는 건 토템 같은게 아니라 나름 실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정신의 실현을 위해 잘 노력하고 성과도 거두고 했다는 식으로 회자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오히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제일 좋은 그림일 것이다. 실제로 촛불에 대한 청와대의 오피셜한 인식도 오히려 이 쪽에 가깝다. 진보세력에게 '촛불 도둑'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비난하는 일부 지지자들과는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그림을 위해서는 강성 지지자들이 좀더 비판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비판은 실패를 바라고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사전적 의미로도 그렇다. 지금보다는 지지자들이 좀 더 수용적이어야 한다. 정권 힘빼기를 위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터놓고 따져 보자는 취지의 비판이라면 말이다. 물론 본래 취지는 후자였는데도 전자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일을 적확하게 견제하는 게 바로 지지자의 역할이다. 그리고 적절한 비판은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진짜 발목잡기식의 비난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지지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잘못된 부분, 여론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빠르게 개선하여 좋은 정부로 남아야 할 것 아닌가.
진보진영과의 반목,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정점을 찍은 MB정권의 망신주기 등에 따른 노무현 트라우마를 이해하며, 나부터가 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정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하며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막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_________________
from facebook post https://www.facebook.com/yongjae.oh/posts/1506446099447090
archived on 2018.12.3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