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불합치라는 헌재 판결이 이뤄졌고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대체역도 신설되어 2020년 10월부로 첫 소집되었다. 그러나 진행중인 병역거부 사건들에서 신념의 진정성을 다툴 때 검찰이 사용하는 주된 논리는 여전히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잘 부합하지 못하며,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들의 근본적 인식 역시 헌재 판결 이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 논리의 저변에는 특유의 어떤 관점이 깔려있다. 그 정체를 논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신념을 종교에 비유하여,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마치 세속재판이 아닌 종교재판처럼 임하고 있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이는 단순 편의상의 비유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근본적으로 특정 종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신념, 단순 보이콧 등 무엇에 의해서도 될 수 있어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현역 입영자들이 비양심적인 것인가?'라는 흔한 반발은 이하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는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를 *남들보다 양심적이어서 하는 병역거부*로 혼동해서 일어나는 단순오류이며, 헌재 결정요지문 본문에도 무려 맨 처음 단락에 이 내용이 설명되어있다. 이전에도 밝혔듯 양심적 병역거부의 반댓말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이 아닌 '양심적 병역이행' 정도로 보아야 한다. 물론 제도의 취지를 착각해서가 아니라 거부자들의 신념을 선민의식이라고 판단해서 위와 같이 반발할 수도 있으나, 그 경우에도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므로 해소 방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검찰이 사용하는 논리의 두 개 축 중 첫번째는 FPS 게임 하지 않았냐는 것으로 대표되는, 신념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증거의 발견이다. 병역거부에 대한 기본적인 여론도 좋지 않은데다 이런 경우는 '선택적 양심발휘'이라는 조롱섞인 비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논리는 직관에의 소구가 굉장히 강력하고 병역거부자 개인을 숭고하지 않은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신앙심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탄에 따른 소위 '나이롱 신자' 걸러내기에 해당한다. 인품과 생활양식에 대한 이러한 판단이 병역거부의 유무죄를 가르는 세속법정에서 핵심쟁점이 될 수는 없다. 거부자 개인 및 그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에서 내적으로 참회할 일일 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신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술 및 일관된 실천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이 품행과 생활에서의 미비는 매우 심각하고 광범위하지 않은 한 병역관련 신념의 진정성을 반증하기는 어려우므로, 후술하듯이 이에 대해선 비교적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다른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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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를 대하는 논리의 두번째 축은, 그의 신념 자체가 내적 일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일관성을 따를 때 그 신념이 유효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평가하려는 태도이다. 최근 읽은 임재성 변호사님의 사례(검사가 피고인에게 군대의 필요성과 평화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논쟁하려 함. https://www.facebook.com/jaesung.lim.182/posts/4046959075330964)도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교리논쟁'으로, 비유하자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형태로 있는지를 다투겠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신학자들끼리의 논쟁 혹은 이단심문 같은 종교재판에서 할 일이지, 세속법정에서는 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만약 어떤 신념이 완전히 일관적인데 심지어 현실적으로도 유효하다면, 그런 성공적인 신념체계를 만들어낸 사람은 거의 성인으로 추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렇듯 내가 아는 한 모든 신념은 불완전하며, 철저하게 일관적으로 추구되었을 때 내부 모순이 드러나거나 유효성을 잃는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심문은 근본적으로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그 양심이 마치 어떤 공표된 학술적 주장인 양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공권력이 논쟁에 개입하는 건 여전히 이상하긴 한데) 정합성과 유효성을 논쟁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개념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양심 자체는 공권력이 인정하거나 기각하는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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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현역 징집이라는 강제력에서 예외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이견을 가지고 논해 볼 수 있다(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양심의 자유가 수호된다고 결론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론이 어떻든, 그 논의의 과정은 늘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신념은 행위의 일관성과 합리성 같은 것이 정황적으로, 보충적으로 작용해서 증명하는 것일 뿐 신념의 내용 자체를 둘러싼 논쟁을 핵심쟁점 삼아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근본적으로 신념이라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강한 의미로 입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양심의 자유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처럼, 신념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자, 통과!' 해서 대체역으로 갈 수 있는 방식은 양심의 자유라는 가치와 결이 맞지 않다. 따라서 신념의 진정성에 있어서는 신념의 내용 그 자체를 두고 종교재판처럼 다투기보다는, 신념이 드러나는 지속적인 실천의 존재와 진술 등을 중심으로 보면서 비교적 포괄적으로 인정해야한다.
그 대신 대체역을 어떤 평화적 봉사 부문에 투입할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웬만큼 진정성 있는 신념이 아니면 대체역을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여 병역기피를 예방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단순 징벌적인 것이 아닌 엄연한 공익적 가치에 기여하는 대체복무로 인식되도록 제도운영 및 사회적 인식제고를 해야 한다. 교도소에 근무하도록 한 것도 그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아무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인식이 변하고 그것이 병역거부 판결 및 대체역 제도운영에 반영되려면 사례도 축적되어야 하고,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교육과 연수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역이 아닌 현역징집병들의 처우 역시 대폭 개선되고 병역이행이 다변화되어야 한다.
한편, 한동안은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실질적으로는 특정종교 신자들일 것이다. 해당 종교는 병역뿐만 아니라 수혈거부와 같은, 동료 시민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교리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종교 신자들만이 현역징집의 합법적인 예외라는 인식(그리고 현실)이 생겨 버리면 이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 하레디 같은 집단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 병역거부는 해당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실제로 외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례를 포함하여 가장 유명한 병역거부자들 중 일부가 이미 비종교적 거부자들이기도 하다.
해당 종교집단의 하레디화를 방지함과 동시에,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다양하면서도 통합된'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려면, 해당 종교 외에도 위와 같은 다양한 사유의 병역거부가 알려지고 활성화되어야 하며, 특정종교임을 전제해서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도 일부러라도 보편적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교적 잘 되어있으나 현장에서와 대중적 인식상으로는 아직 미비하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대체역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서는 법조영역의 판례 축적 및 인식변화를 중심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의 총체적 노력이 함께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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