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교수님(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 수학계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한 분인데, 우리 학교 물리천문학부 출신이고 학부 후반까지만 해도 과학기자를 하려고 했다고 하니 공연한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과학인문학이나 과학저널리즘 쪽까지 포함한 여러 진로를 탐색하다가 물리 쪽으로 뒤늦게 마음 정하고 시작했지만, 잘 할수 있으면 좋겠다.
박사 1학년 때 증명한 Read's conjecture, 그 이후 2015년에 증명한 Heron-Rota-Welsh conjecture (혹은 Rota's log-concavity conjecture. 언론에서는 로타 추측이라고만 언급되는데 찾아보니 흔히 Rota's conjecture라고 불리는건 다른 명제인듯) 등의 업적이 있고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연결짓는 연구를 하신다고 한다.
학부 후반에 필즈상 수상자인 일본인 초빙교수의 대수기하학 수업을 듣고 (이 시점에서 이미 흔히 생각하는 늦깎이와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수학 쪽은 워낙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긴 하니까) 수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결국 스승처럼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영화같은 스토리도 있다.
한편, 세간에서는 축하의 분위기와 함께 국적 및 병역과 관련된 궁금증과 논쟁들도 있다.
사실 그동안 허준이 교수와 반대로 한국과 인연이 없는 한국계 미국인이 좋은 소식으로 뉴스에 나왔을 때, 어쨌든 핏줄은 한국인 아니냐며 동질감 느끼고 축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게 과도한 민족주의로 많이 비판받기도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와 반대로, 국적은 미국이지만 초중고 학사 석사까지 한국에서 나온 사람이 필즈상을 받은 것을 두고 '그냥 미국인 아니냐'라며 왜 축하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이 보인다. 위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내용은 반대지만 형식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은 거울상 같아서 퍽 심술이 난다.
각 부문에서 사례가 쌓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나친 국뽕(?)을 경계하는 성숙한 태도가 어느정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는 안티테제로서 이러한 과도한 냉소도 생기는가보다 싶다. 그래도 그런 태도가 반대쪽에서 꾸준히 역할을 하는 덕분에, 정반합으로 성숙한 태도가 더 효과적으로 자리잡게 될것 같기는 하다.
가족관계로 이어지는 혈통, 서류상의 국적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어떤 판단을 하기보다는, 삶의 총체적인 행적을 (물론 알려진 정보만으로 내 맘대로 재구성하는 거지만) 읽어 보면서 어떤부분은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부분은 이질감 느낄 수도 있고 그런 것 아니겠나. 그냥 그런 총체적인 느낌들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왜 어떤 한 기준으로 고정시켜서 규정하고 판단하려 하는것인지 모르겠음.
그 모든 동질감이나 이질감을 퉁쳐서, 해소해야 할 비합리적이고 두려운 것으로만 취급한다면 종합적인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 감정들의 존재를 appreciate한 채로 어떻게 하면 특수성에 기반한 세계시민적 보편성을 만들어 나갈것인지 생각해야한다.
또한 같은 수학자였던 배우자분이 커리어를 중단한 사정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다. 하단에 링크한 임소연 교수님 글에서 보듯이, 알기 어려운부분인 개인사를 추측하고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보다는, 좀더 보편적인 여성 커리어 문제로 연결지어 논하는것이 지혜로울테다.
아무튼 필즈상 수상소식을 성취지위에 대한 논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적 분위기 속에서 허준이 교수의 수상소식은 병역 논쟁과 젠더 논쟁을 뜻밖에 약간이나마 초래하고있다. 흔히 세간의 논쟁에서 임출육 문제와 병역문제를 병치하는 게 졸렬하다고 종종 간주되지만, 한국이 수십년간 쌓아온 업보 탓에 그 둘이 현실적으로 interlocking 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90%에 달하는 남성이 현역으로 징집되며 나머지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기형적 강제노동을 하는 극단적 병역부담을 해소하고,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결정적으로 제한하는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둘을 지혜롭게 unweave해야 할 텐데, 아직은 기존의 질서가 꽤나 공고해보인다. 대안적 수행과 개선된 제도로 과감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압박과 주변의 시선에 의해 들볶아지는 기존의 분위기가 유지될지, 그 과도기는 우리 세대에 오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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