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9일 월요일

과학교육과 과학문화 사이의 긴장을 통해 보는 단순화된 지식전달에서의 책임

커뮤니케이터 궤도 님이 방송에서 생물학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비판한 안준용 교수님 포스팅을 시작으로, 과학커뮤니케이션/과학문화의 역할 및 과제에 대한 논쟁이 어제부터 굉장히 많다. 과학담론에 관여된 그룹들이 서로 동질적이지는 않지만 서로 아주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라서, 가끔씩은 이런 식으로 서로의 인식 차이를 견주어 보는 얘기도 하기는 해야 한다.

나같은 경우 이에 대해 뭔가 새롭게 긴 글을 쓸 만큼 확실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없어서, 과학 및 그 인접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행위자들 간에 발생하는 협력과 긴장에 대해 예전에 느슨하게 썼던 글[https://bit.ly/3xu1jgs (한국 과학담론의 지형)]을 다시 가져와만 본다. 어제부터 보이는 논쟁도 이러한 긴장들, 그 중에서도 과학과 과학문화 사이의 긴장에 대한 좋은 예시일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있다.

단순화는 불가피하다. 이는 과학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직업 과학자들이 대중화에 직접 나설 때도, 심지어 직업 과학자들이 대학교 강단에서 전공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식 전달 면에서 도움이 되는 체계적인 단순화그렇지 않은 단순화, 그리고 한때는 유효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수명이 다한 단순화는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그 경계는 모호하고 정답은 없으며, 이에 대해 건강하게 토의해야 한다.

아주 사골 같은 예시지만, 물이 전도체인지 부도체인지가 초/중/고/대학 교과서에서 매번 달라진다는 것도 약간은 비슷한 맥락이다. 교육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있어서 그 외의 복잡한 진실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또다른 예시로, 최근에 본 'DMT Park' 채널의 유튜브 영상('물리 교과서 보고 충격받았습니다', 링크)에서는 많은 물리교과서의 특수상대론 부분에 나와 있는 단순화된 설명(아인슈타인의 어릴 적 사고 실험)이 사실은 어떠한 제대로 된 개념도 전달하고 있지 않고 물리학적 의미가 없으므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 원론적으로도, 구체적으로도 공감한다.

이렇듯, 전제된 맥락과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한, 따라서 '정확히 어떠한 개념을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불명확한' 임의적인 단순화는 지양해야 한다.

물론 과학커뮤니케이션의 현장은 제도권 과학교육의 현장과는 다르기 때문에 교육 커리큘럼처럼 엄격하게 승인된 방식의 비유, 승인된 방식의 단순화만 할 수는 없다. 각자의 창의성을 동원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그러나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실제 내용과 개념에 대한 충실성을 넘어서는 순간들에 종종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특히 유전학/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 등 유난히 세간에 화두가 되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있는 내용의 경우에는 전달에 있어서 더 주의하고, 전문가의 최신 견해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 같다. 단순화를 통해 개별적인 최신 사실들이 뭉개지는 것을 넘어서, 최신의 이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포인트가 뭉개진다면 그것은 지적될 필요도 있다.

무언가를 단순화해서 재미있게 전달했을 때, 해당 과학지식 혹은 과학분야에 대해 청중들에게 '과연 정말로 전달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다같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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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3일 토요일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개인전 <매일이 휴가!> 관람 후기

오늘 낮에 잠실 소피텔에서 하는 엘리자베스 랭그리터 개인전 <매일이 휴가!>에 다녀왔다. 전시 제목에서 보이듯이 행복과 편안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즐겨도 마음이 편안한 그런 전시였다.

인터뷰 등에서 보이는 작가 본인의 작업 태도도, 과도하게 밝은 작품들에 으레 따라붙는 어둡고 강박적인 이야기들과는 달리 실제로도 굉장히 행복하고 즐거운 느낌에 가까워보였다. 작업 시작한 지 5년도 안 되었는데 차원을 모호하게 만드는 독특한 질감과 맑은 분위기로 빠르게 인기 작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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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6일 토요일

의식 연구에서 계산신경과학적 개념들의 지위: 복잡계 유행과의 비교

베이즈 뇌, 자유에너지 원리, 예측코딩 등 계산신경과학에서 발전한 개념들은 수식 및 물리적 의미로 보면 명료한데, 뇌 및 의식 연구에서 그것들을 다루는 국내 텍스트들 중 꽤 많은 수가 너무 '말로만' 되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 수학을 전개하는 데 있어 기초가 되는 (혹은 반대로 그 이론들의 결과를 통해 형성되는) 뇌 연구의 철학적 전제들이 다 있는 거고, 그런 얘기들이 뇌와 의식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말'이 길어지는 점은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라, 때때로는 수식으로부터 연역될수 있는 개별적인 결과들까지 그 개별 명제들 단위로 일일이 저장해두고 그 연역단계와 결과들을 말로 풀어서 서술하는 느낌, 그리고 그 말들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느낌이 들때도 있어서, 이게 과연 이해에 도움이 되는 방식이 맞는가 하는... 그리고 서로간에 관계를 가지고 확인되고 검증되어야 할 가설들인 건데 그냥 병렬적인 관점과 개념들인 것처럼 조금 어색한 층위에서 나열 서술되는 것 같아서 아무리 읽어도 뭔가 이해가 불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이게 실제로는 배후에서 작동하는 수학은 서로간에 다 공유되고 있되 단지 더 넓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글이 그렇게 써질 뿐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해당분야에서 그런 이해로 충분한것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만약에 후자에 가깝다면, 물리학을 중심으로 등장해서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지적 패러다임인 '복잡계' (여기서 더 과거로 가면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때때로는 다소간에 남용되기도 한 사례들이, 지금 현재의 우리가 지적 신중함을 기하는 데 참고가 될수 있다고 보인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임계성, 멱법칙, 창발, 자기조직화, 혼돈, 열린 계, 흩어지기 구조 등은 (100% 통합된 체제는 아닐지라도) 통계물리학 및 복잡계 물리학에서 상당히 연역적인 상호관계를 맺는 것들인데, 그 연역관계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인식 없이 복잡계의 집단현상을 그 개별 단어들로 reduce시켜서 이해하고 "말로만 복잡계 연구를 하는" 일이 한동안 경제학, 행정학, 경영학 등에서 꽤나 많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이후의 복잡계는 하나의 '분야'였는가, 아니면 ai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켜서 실제 현재 주류 ai와 계보학적 연관성까지 갖고있고, 한편으로는 '사이버-'라는 단어를 문화/기술계에 정착시키도 하면서 성과를 거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처럼 일종의 'movement'였는가? 후자라고 하더라도 만약에 그 운동의 강령 아래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그 이념을 따라서 전개되기만 한다면 모두 적법한 복잡계에 대한 논의로 볼수 있는가? 하여튼 복잡계 이 쪽에서도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흔적들이 참 많은데 역사가 정리가 좀 덜 된 부분이 있다.

물론 그렇게 개별 명제, 개별 개념 수준에서 말로 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관점이 제공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테면 식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레토르트 식품들을 까서 원하는 재료만을 취해서 요리를 만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무튼 쓰다 보니 복잡계로 얘기가 샜는데, 뇌 및 의식에 대해서는 물론 나도 뭘 자세히 알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수식들에 대해, 그리고 뇌 및 의식연구에 대한 철학적 함의에 대해 세미나 몇 개에서 듣고 문헌들 조금 찾아본 게 전부인 채로 인상비평 하는 것이라, 이번 글은 다소 조심스럽게만 적어두고 끝맺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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