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9일 목요일

(2025 노벨상) 올해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노벨상 시즌

작년 노벨상은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부문이 평년보다 훨씬 인상깊고 재미있었다. 6개 부문 중 내가 제일 문외한인 영역인 경제에서조차 언젠가 받을 것 같다고 이름을 많이 들어 본 Acemoglu가 수상을 했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하필 올해 여름에 스웨덴에 갈 기회가 있어서, 한강 작가님이 싸인하신 의자도 보고, 홉필드, 힌튼, 허사비스, 점퍼, 베이커 등의 싸인과 전시물도 보고, 김대중 대통령 기증품(꽤 많다)도 볼 수 있고 해서 참 좋았었다.

이번 노벨상도, 특히 내 전공분야이기도 한 물리학에서 누가 받을지 상당히 궁금했다. 예측까지는 아니지만Michael V. Berry, Xiao-Gang Wen, Alexei Y. Kitaev 이런 분들이 언젠가 노벨상을 받을 것 같고 또한 그러면 좋겠어서, 노벨상 시즌이 되면 이 분들의 이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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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발표된 노벨물리학상은 거시적 크기의 물체에서 양자 터널링을 구현한 연구자 3명에게 주어졌다. 그 중에 한 명인 Michel H. Devoret은 내 고등학교 동기의 (전)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그 친구가 작년에 한국에 놀러 와서 초전도 큐비트 실물을 보여주었다. 한 손에 잡히는 유리 기판처럼 생겼다. 큐비트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부가적인 장치가 달려 있을지언정 그 핵심에는 원자 한 개 스케일의 물리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크기의 이 회로 자체가 큐비트 1개라길래 잘 이해가 안되면서도 신기했었다. 그 신기함이 이번 시상에서 해결이 되는 느낌이었다.
(여담으로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엘 모키어의 경우, 2018-19년경 진행한 과학기술학 스터디에서 그의 저작인 <성장의 문화>를 함께 읽어 보며 많은 지적 자극을 얻었던 기억이 있어서 참 반가웠다)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과학계에 대학원생으로서 오랫동안 있다 보니, 나와 직접적인 연관까지는 없더라도 내 주변과의 관련성을 상당 수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내가 이것저것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그룹에서도 노벨상이 꽤 자주 나온다는 느낌이 든다. 그 말인즉슨, 한국 과학계도 노벨상을 받는 그룹들과의 과학계량학적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과학 분야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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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사례들을 보면 수여의 취지가 되는 연구 성과 아래에 후속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샤라웃(?)을 받고, 그러면서 점점 높은 단계의 상들(대표적으로 우리 통계물리 분야 안에 있는 Boltzmann medal)을 쓸어담는 과정을 거쳐 노벨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영화업계에서의 오스카 레이스처럼 말이다.

한국인이 과학분야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물론 연구 성과 자체의 임팩트가 제일 중요하겠으나, 그렇게 달성된 성과를 활용해서 위처럼 학계에 지속적으로 recognize되는 어떤 연속성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호암상을 비롯한 한국 로컬 상들이 국제적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한국 연구문화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지적되는 것도 아마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기존에도 이미 한국인 혹은 한국계 과학기술인들에 의해 인류 최초로 연구개발된 것들도 찾아보면 꽤 많다. 그런 성과들이 노벨상까지 닿기에는 끗발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서사를 만들어서 위원회에 어필이 되었다면 수상 가시권에 보다 수월하게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쌓아올린 입지만으로도 노벨상 수상 가시권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휘소 박사,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 전자기기에 수억 개씩 들어가는 MOSFET을 발명한 강대원 박사가 너무 일찍 작고하신 게 안타까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 더 최근에 노벨상과 관련지어 notable한 한국인/한국계 연구자들로는 그래핀과 위상 물질에서 업적을 남긴 하버드대학교 김필립 교수, 노벨상을 수상한 David Baker의 포닥 제자로서 현재 최다인용 논문의 1저자인 서울대학교 백민경 교수의 사례 등이 있다).

심지어 실제로 그런 흐름이 존재하더라도, 누군가가 그걸 식별해 내서 이름을 붙여주고 글로 써 주고, 국제 컨퍼런스의 academic talk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해주고 그래야만 동시대에 빛나는 업적으로서 recognize될 수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게 어디까지가 국가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고 어디부터 개별 과학자들 및 과학 커뮤니티의 역할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가의 역할은 예를 들어서 난제 해결을 위한 거대과학 연구시설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게 신경쓰는 것, 연구문화의 실질적인 국제화가 이뤄지도록 외국인 연구자를 유치하는 것, 뛰어난 재외 한국인 과학자들을 찾아서 그들과 국내 연구생태계의 연계를 유지하는 것 등이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채로 마음대로 상상하는 부분이라서 앞으로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숫자 장난과 내수용 언론플레이를 비롯한 순전한 공학(정치공학과 비슷한 의미에서) 그리고 국가적 밀어주기로만 노벨상을 달성할수 있다고 기대해서도 안 될 일일테다. 훌륭한 연구자를 찾아서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어필이 되게끔, 정석적인 방법으로 연구사를 정리하고 학계에서 인지도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시권에 들자 당시 한나라당이 정치적 동기로 반대 로비를 하질 않나, 수상 이후에는 MB 국정원이 노벨평화상 취소 공작을 하질 않나 (루머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이다), 그리고 향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한강을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나 올리기나 하고. 한편 민주당 진영에서는 황우석 박사를 국가적으로 밀어주다가 사고가 나기도 하고 (이는 과학사회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주제이다). 아무튼 이런 일들을 보면 국가는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학관료나 정치인들이 과학계와 형성하고 있는 인맥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해 실질적으로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는 현장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꼭 노벨상을 떠나서, 이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인사가 기존 정권들에 비해 기대되는 부분들이 있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2000년대를 풍미한 복잡계 물리학 및 네트워크 사이언스 분야도 그 임팩트와 해당분야의 볼륨만 본다면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당분야가 통계물리의 한 분야로서 자리를 잡고 빵 뜰 수 있게 된 데에 pioneering한 역할을 한 world wide web 구조 논문 (척도없는 네트워크와 멱법칙) 의 저자 중에 한 분이 한국인이시고(정하웅 교수님), 그 흐름 속에서 다른 한국인 물리학자들도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함께 상당히 많은 일을 하면서 일파를 형성을 하셨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네트워크라는 게 전통적인 물리학적 연구대상과는 다소 다르다 보니 ('응용분야'라고 말하기는 조금은 애매하다. 대상이 비전통적일 뿐 분명 순수과학에 더 가까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노벨물리학상의 관심사가 될지 의문이기도 하고, '통계물리학으로서의' 네트워크과학 말고 전체 네트워크과학에서 한국인 학자가 pioneering한 역할로 탑 3에 들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쉽지 않은 건 사실이기는 한지라... 아무튼 이쪽의 연구 흐름도 꾸준히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정리가 되면서 연속성있게 그 유산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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