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는 조선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와 학도들은 역사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부분까지 입체적으로 발굴해내려고 노력하면서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의 높은 가치와 약간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체감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캡처한 글(아래 이미지)의 후반부에서는, 실록이라는 훌륭한 기록물이 있는데 (아마도 매체나 세간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등 유명 인물만 조명받는다며 역사학계를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는 비난이 심하다 아니다를 넘어서 그 구도 자체가 매우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그 실록 번역과 전산화는 그러면 누가했을까?
실록 번역은 다 되었지만 (물론 더 쉬운 번역 등 접근성 개선은 필요할수 있다), 승정원일기라던가 다른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물들, 중요한 역사인물들의 사상을 담은 서적들의 번역이 아직 부족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역사학자들이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관심은 너무 많은데 역사학을 연구할 사람, 그중에서도 연구에 그치지 않고 번역까지 할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강단사학(?)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발산하기보다는 학계에서 어떤 논의와 협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나도 역사는 정말 잘 모르는 입장이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상술했듯이 '역사학계가 세종과 이순신만을 조명한다'는 식의 구도가 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기존에 조명되지 않은 인물 및 사건을 다루거나, 이미 조명된 것이라면 기존의 토대를 계승하면서도 재구축하면서 새로운 측면을 다루어야 논문 감이 되지 않겠나.
꼭 이 글에 대한 얘기는 아닌데, 이 글과 덧글들이 나한테 상기시킨 어떤 다른 주제들, 다른 글들에 대한 얘기도 해보겠다. 문제가 있는 이야기들로 싸움을 먼저 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학계의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반박을 하는 것은 왜 늘 강단사학 내지는 식민사관이라는 납작한 표현으로 단순화되고 사악한 기득권이라고 공격당해야 하나? 어디까지 착하게 말해야 하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착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마치 동등한 두 입장인 것처럼 오히려 링 위에 올려주는 꼴이 되는 딜레마적 현상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최근에 과학커뮤니케이션 논쟁에서도 약간 시사되는, 과학기술 쪽에서도 어느정도 동감이 되는 이러한 억울함은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딱히 도움이 안되고 학계가 더 노력해서, 더 착하고 재미있게 말함으로써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학계 구성원들에게 메타적인 억울함을 준다.
(애초에 학계라는 게 어느정도의 통용되는 합의는 있지만 대립도 존재하고, 따라서 한통속인 집단도 아니므로 위에서는 안전하게 '학계의 누군가'라고 썼다. 학계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거나 이상화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역사라는 게 워낙 민감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주제이다보니, 그런 반감을 필요이상으로 조장하면서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취하거나 심하게는 유사역사학으로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것도 사실이고, 정치권에도 상당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런 사람들을, 오로지 학계의 문제점에서 파생된 부산물 내지는 현상으로만 보고 간접적 해결만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과도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창조과학 유행의 일차적 책임을 진화론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지 않은 것에 돌리는 게 맞겠는가 아니면 꽤 많은 기독교 단체들에서 그런 걸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겠는가?
공유한 글에서 언급하는 식민사관이라는 것의 실체(물론 이분이 생각하는 식민사관이라는 것의 외연은 지나치게 넓고 타겟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비판은 바로 위와 같은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과도한 반감을 적극 조성하는 것은 비판하되, 그런 반감이 호응을 얻는 현상은 면밀하게 분석을 하고 관심을 가져서 보다 세심하고 간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김해시사》나 《전라도 천년사》에 대해서도 굉장히 씁쓸한 이야기들이 있는 모양인데, 나도 이 두 개의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던 것인지 기회가 되면 논쟁을 팔로업하며 이해해 보고자 한다.
사실 이 정도로 비난 일변도인 짧은 글, 그것도 딱 후반부 2개 문단 정도를 보고 이렇게 굳이 길게 코멘트를 적는 것이 오히려 위에 썼듯이 '링 위에 올려 주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글 쓴다고 해서 딱히 링 위에 올려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글에 좋아요가 너무나 많고, 이 분 타임라인의 다른 글들을 보니 어쩌다가 나온 말만은 아닌 것 같아서 몇 마디 적는다. 그리고 위에 썼듯이, 딱 이 글만을 보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글이 내게 트리거시킨 여러 다른 글에 대한 기억들을 상기하며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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