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21년 5월 22일 토요일

과학 및 과학문화에서의 '문제 아닌 문제'들에 대하여

어릴 때는 강한 확신과 취향에 의해 뭔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자라면서 차츰 이해하게 된 것들이 상당히 많다. 아마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어릴 때는 책이나 매체를 접하면서 뭔가가 이상하게 느껴져도 '내가 아직 이해 못하는 뭔가가 있나보다' 하고 넘겼다가, 나중에 와서야 아 그런것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였구나 (꼭 틀렸다는건 아니고) 싶은 것들도 꽤 있다. 그 중 하나를 공유해 본다.

물론 아래에 소개하는 방식은 대개 현재의 내 견해에 맞춰서 윤색, 발전되고 정리된 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런 의구심을 단편적으로나마 여러차례 분명히 가지긴 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의구심이 들게 하는 매체상의 표현이 그만큼 많았다는 점을 발화점 삼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져 온 생각의 경향성을 정리나 해 보자는 느낌으로 써본다.

이상하다고 느꼈던 게 뭔고 하니, 소위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 인간만이 가졌다고 알려진 특별한 능력들,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게 된 구도 등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특별함이 마치 그 연원에 대한 설명과 납득이 필요한 '문제적' 성격을 갖는 것처럼 여기는 사고 및 서술의 방식이다.

인간의 여러 정신적 능력에 대한 경탄, 인간이 자연과 불화하면서 자연을 이용한다는 도식 등을 나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이라는 집단이 가진 특징을 묶어서 단순히 편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결국 파고들어가면 인간성도 자연과의 동질성, 연속성 속에 있다는 관점을 기본적으로 갖게 되는 듯하다. 말하자면 인간도 결국 자연과 하나라는 것인데, 다소 클리셰적인 표현이라서 오해될 수 있겠으나 그런 클리셰가 주로 가리키는 신념들과는 그 동기가 다르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다.

즉 나는 인간성 자체가 어떤 현상일뿐, 각별한 관심에 따라 설명과 납득이 필요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편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불연속성을 더 강조하며 그 불연속성을 근본적인 것이라고, 뭔가 설명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종교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가 싶을 수도 있는데, 위에서 얘기한 그런 방식은 단지 종교뿐만 아니라 과학에 관심있는 쪽에서도 은근히 많이 나타난다. 돌아보면 나는 기억나는 가장 어린 시점부터 과학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학을 소비하고 찬미하는 주류적인 방식도 나는 충분히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따옴표를 붙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학의 내용을 적법하게 생산하는게 과학이지, 특정 세계관이나 특정 사고방식이 '과학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사회적 프로그램로서의 과학에 우연찮게 친화적이고, 그러한 과학의 도미넌스를 위해 실제로 육성되기도 하는 어떤 세계관(보다 정확히는 그 향유자들)은 특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과학을 서포트하는, 혹은 스스로 그렇다고 하는 세계관들은 대개 내가 가진 성향과 잘 맞았으나, 그것들 중 위에서 말한 것들은 내 생각과 달랐다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 혹은 인간집단의 능력에 대한 그런 설명과 납득에의 요구를 '문제'라고 부를 수는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다 구체적인 다른 질문들을 위한 중요한 동기부여는 될 수 있지만, 그 중요성과는 별개로 직접 답을 얻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문제 아닌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궁금증은 겉보기에 마치 과학적(?) 관심사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런 관심사를 추동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왜 하필 이렇게 태어났는가', '생명체라는 게 어떻게 이렇게 찬란하게 번성했는가'와 비슷한, 목적론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은 질문자 스스로 마음깊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계속되는 성격의 것이다. 납득을 위해 여러 사실관계와 수치 등을 제공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결국은 '신기하다는 선언'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결론은 해당 질문 자체에 대한 논리적 분석 등으로 간단히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질문들을 지금 다루고 있는 이 방식 역시, 결국 어떤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이라기보다는, 동감이 별로 가지 않는다는 '선언'에 불과함은 물론이다.

물론 그런 신기함이 들 때의 가슴뛰는 느낌은 긍정적인 것이고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게 없었다면 그 어느 분야에서도 재밌는 지적 성과들이 잘 안 나왔지 않겠나. 그리고 칼같이 나눠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문제 아닌 문제'들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것, 다른 문제들이 오히려 가짜고 그런 문제들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마음 한켠이 부담스러워지고, 그런 것들이 강조되는 걸 볼 때면 분명히 뭔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걱정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정작 내가 생각하는 '문제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그러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한 과학 강연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청취자들의 동기가 이런 경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예전에 대중적인 철학 강연이 과도하게 '교훈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쓴 바 있는데, 이것과 어느정도 통하는 이야기 같다). 유튜브 등에서도 어떤 과학 컨텐츠가 인간과 관련된 것일 경우 주로 이런 식으로 소비된다.

대중적 수요의 그런 측면이 내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수요에 기댄 문화사업들이 프로그램으로서의 과학의 도미넌스로 단기적/장기적으로 연결되는지의 여부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는 것 같다. 꼭 그런 수요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소비의 그런 개인적 동기와는 상관없이, 질좋은 과학의 사회적 도미넌스에 기여하기만 한다면 괜찮은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과연 정말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가일테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