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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0일 금요일

윤석열 예비후보의 과거와 현재

과거에 썼던 몇 개의 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해서 해볼수 있는 논의들의 결을 깔아 놓은 바 있다 (하단에 링크함). 그 결들이 현재까지 꽤나 유효한 것 같아 그 연장선 상에서 윤석열의 현재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2013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린 국정원 덧글사건은 내가 정치에 본격적 관심을 가진 첫 계기였다. 당시 윤석열 검사가 많은 국민들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은 직분에 충실한 검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무척 잘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주적(?)인 가치와 얼만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다.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대단히 가치있는 하나의 구현사례는 될수 있으나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요체까지는 아니라는것.

그래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의 윤석열 응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한 걱정이 되었다. 윤석열이 정치적 신념이 아닌, 검사로서의 신념 때문에 그렇게 하는것이기를 바랬고, 새누리당 정권의 외압도 이겨내야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과도하게 이용되지도, 과도하게 신뢰받지도 (이 둘은 어찌보면 동의어다) 않았으면 했다. 이건 정권이 교체되고 윤석열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것은 검찰총장 취임 시점이었다. 당시 대검 대변인실에서 낸 자료를 보자.

"신임 총장은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집행 문제에 관해 고민해 왔다”,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 왔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검찰총장에게 기대되는 종류의 발언인가? 물론 기업활동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오히려 원칙을 어기는 재벌기업을 단죄해야 한다고 선해할 수 있고 실제 본인의 생각도 이런 느낌이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메시지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당식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구분짓는 (물론 그 연료를 민주당 정치인들이 잊을만하면 제공해주지만) 보수우파 특유의 자유관(觀)과 겹쳐 보이는, 그리고 헌법의 자유 개념보다는 불필요하게 한 발짝 더 구체적인, 어찌보면 무척 '정치적'일 수 있는 메시지였다.

그 미묘함을 뒤로 하고 총장 임기는 시작이 되었고, 조국사태를 거치며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계를 다시 현재쯤으로 돌려보자. 한국정치에서 아직까지 제3지대 독자세력화는 환상이다. 제3지대에 가장 합리적, 중도적인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건전한 정당정치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과도하게 개인플레이로 승부를 보려는 인물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당에 있는 유능한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독자세력화를 추구하면서 소위 '멘토'(대개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들한테 과외수업을 받는 전형적 형태가, 정치신인인 잠재적 대권주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것같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대권주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여전히 독자세력화를 꿈꾸는듯하다. 설령 그것이 입당 시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포석일지인정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 예비후보가 정치입문 초반에 국민의힘 입당을 안 한 것은 순전히 그런 제3지대를 향한 자기과신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고 본다.

보수 진영에서 2010년대 초중반에 특히 흥했던, 경제를 소리높여 외치는 젊은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신기하게도 거대 보수정당보다는 주로 위와 같은 제3지대 근처의 군소집단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장예찬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사람은 거대 보수정당에도 몸담았지만 역할이 한정적이었고 언제나 외곽 활동이 더 돋보였다).

이런 걸 위의 대검 대변인실 자료와 연관지어 볼때, 윤 전 총장은 거대보수정당 바깥에 있던 그 사람들과 실제로 사상적으로 잘 맞다고 생각해서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본인의 사상이 없는 소위 '정치 괴물' 타입은 아니고 오히려 독서와 토론을 통해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있는 타입에 가깝다는것. 이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오랜 지인들의 증언들과도 일치한다.

그러면 그렇게 거대정당 바깥에서의 잠행을 거치면서 도출된 출마선언문은 어땠을까? 나는 상당히 인상깊게 봤다 (직후의 기자회견은 안봤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당식(?) 민주주의를 나눠서 생각하는 그 인식의 코어에는 비록 위에 쓴 뉴라이트적 자유관이 자리잡고 있지만, 민주당 정권의 실책 중 꽤 많은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유로운 욕망의 무시'라는 키워드가 유통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과 언설 자체는 대중 일반에게 상당한 소구력을 확보한 상태다. 즉 자유민주주의 신념 강조는 실제 본인의 생각이면서, 무척 잘 잡은 키워드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과 경제, 국가의 미래를 연관짓는 대목도, 4차산업혁명, 그린뉴딜 등에 비해 혁신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관점이 돋보였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의 포지션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대목도 인상깊었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보편가치의 모범적 담지자로서 확실하게 포지셔닝 시켜놓길 바래왔는데, 4년간 미진한 점이 많았고, 도리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윤 전 총장이 정확히 그 말을 해버렸다. 여러모로 중도우파와 우파가 열광할 만한, 그리고 민주당은 위기감을 느껴야 할만한 (건전하지 못한 자유관이 보편화될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이 하지 못한 좋은일들을 하겠다고 한 점), 잘된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플레이에는 곧바로 한계가 왔고, 정당조직의 노하우가 없는 독자적인 캠프도 허점을 많이 노출했다. 출마선언과 달리 기자회견에서는 별다른 명언 같은건 안 나온 듯하고, 대대적으로 개설한 페이스북 계정의 소개 문구는 요즘 말로 '억텐' 그 자체였다. 좀 더 나중에는 후보 본인의 120시간 발언은 물론이거니와, 참모의 "좌파입니다, 질문 안받아도 됩니다" 이런 발언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반기문 시즌2가 되어가는 것인가 하고 있었다.

오늘자로 윤석열 예비후보는 국민의힘에 입당을 했다. 물론, 그렇게 강단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더니 결국은 거대정당으로 간다고 비꼬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정당이 마련해둔 절차, 그리고 산전수전 겪은 정당정치인들과의 덜 불편한 관계를 형성할수 있다보니 후보의 파괴력이 조기에 소진되지 않게 되었다고 본다 (물론 다른 논란성 변수가 터지는건 별개 얘기다). 쥴리 운운하는 걸 진지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위기감을 좀 가져야한다.

문제는 이거다. 이렇게 해서 확고한 정치인으로 거듭난다면 윤석열이 검사로서 걸었던 길이 앞으로 어떻게 해석되게 될까. 윤석열 자신이 검찰 고위직일 당시에 구속이 이뤄진, 범죄를 많이 저지른 전직 두 대통령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다고 하고, 국정원 사건 당시 자신을 향한 외압의 수뇌였던 황교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이러한 행보들의 결론이 난 뒤에, 윤석열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2010년대 한국정치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윤석열 개인의 정치여정과 사후적으로 연관지어진 해석이 아니라 기존의 민주적 보편가치에 근거한 해석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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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남긴 것
- 윤석열 총장의 딜레마: 검찰개혁을 완수해야만 하는 이유
윤석열 검찰총장의 독특한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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