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nal space라는 일종의 aesthetics 같은걸 접했는데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심상들과 잘 맞아떨어져서 매우 맘에 든다 (하단에 링크된 페이스북 게시물에 예시 이미지들 첨부).
인공적인 걸로 둘러싸인 공간 (특히 지하철 같은걸 탈 때) 에서, 일상적인 것 사이에 매우 낯설고 비일상적인 것이 숨겨져있다가 튀어나오는 듯한 매력적인 경험을 종종 하게된다. 자연에서와 달리, 합리적으로 조직되고 배열된 인공물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는 그런 낯선 것들이 일상으로부터 딱 한발짝만 내딛어도 될만큼 가까이에 있다. 원래대로라면 '무대 뒤편'의 사람들만이 이용하고 나는 갈 일이 없어야 하는 시공간들, 말하자면 조정시간대 내지는 배후공간에, 나는 버튼 하나 잘못 누르는 것만으로, 글자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문 하나 여는 것만으로 쉽게 빨려들어갈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들이 신화적 시공간이거나 권력이 농도짙게 작용하는 음모론적 공간도 아닌,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직접 종사하는 자들이 영위하는 또다른 일상적 시공간일 뿐이라는 점도 인상깊다. 이것은 카리스마가 탈색되어 있음에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대적 권위에 대한 나의 미적 매료와도 약간은 연결되지만 이부분은 좀 결이 다르니 별도의 얘기로 빼두자.
파고들어갈수록 랜덤하고 부조리하고 풍부한 절대적 형식으로서의 자연(물리학도로서 할말인가 싶지만(...) 근본법칙으로서의 자연이라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창발하는 경관적, 경험적 자연이라고 보자)과 달리, 도시에서 자연의 역할을 대체하여 시공간을 조직해내는 절대적 형식들은 파고들어갈수록 차갑고 단순하고 합리적이며 공허하다. 그리고 시공간과 그 채워짐에 의한 일상세계의 주조를 내가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은 이상하리만치 후자에 치중되어있으며 꿈에서도 역시 그런것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런것들을 재밌게 느끼는것 같다.
사실 디지털 매체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기 상당히 쉬운데, 그도 그럴 것이 인공적 세계에 대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도시경관과 디지털공간이 주요하게 다른 점은 밀도 그리고 immersivity의 정도의 차이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테마는 종종 그런 공간속에 괴수가 숨어있다는, 시쳇말로 다소 '뇌절'처럼 느껴지는 괴담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이를 Backroom이라고 부르나보다) 이런건 정신세계를 쿡쿡 찌르던 아우라를 없애버려서 나랑 잘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괴생명체가 배치된다고 늘 두려움이 유발되는것이 아니며 그 배치의 방식이 정교해야한다.
더 넓게 보자면, 애쓰는 창작행위의 비중이 높은 특정한 종류의 인터넷 문화들에 비해서, aesthetics라고 하는, 비교적 최근에 범람하고있는 상대적으로 무관심적이고 관조적인 애호의 문화가 내 마음에 더 맘에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더 그럴수도 있겠다.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공간적인 것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것들도 더 많이 탐구됐으면 한다. 시간을 단순하고 합리적으로 주조해내는 장치들이 주는 특유의 낯섦이 있는데, 그 기원을 정치사회학의 도구로 탐구한 '24시간 시대의 탄생'(김학선 저) 등을 접한바 있지만 지적 인식이 아닌 미적 애호의 방식도 더욱 많이 축적되면 재밌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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