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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0일 일요일

폭력 직시와 현장 중시가 낭만주의를 극복한다

나는 숨쉬듯이 공공영역의 수혜를 입으면서 현대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걸 명시적으로 느끼려면 계기가 필요한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근대적 체제의 공적 기구는 수혜를 줄뿐 아니라 통제와 폭력을 가하기도 하며 그것은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불합리한 억압이 되기도 한다.


자라면서 내가 속한 집단이 사적인 관계(혹은 사적 의무관계의 착취가 공공영역을 대체하고 있는것)가 아닌 공적인 장치를 통해 케어받고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느낌, 그리고 그에 따른 실질적 효용을 내가 크게 느낀건 중학교때 (아마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 생긴 학생인권조례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화두는 체벌금지였다.


우리세대와 그 이후까지도 어메이징한 기합이나 체벌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는데 비해, 우리 중학교에선 애초에 비교적 표준적인(...) 형태의 체벌들 위주로만 있기는 했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거고 정말 심한 경우나 정말 문제있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도 그것들이 없어진다는게, 당시 느낌으로는 엄청 큰 불합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이어서 꽤 효능감이 컸고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도 많이 됐었다.


이건 시사에 특별히 관심있는 학생뿐 아니라 대다수가 마찬가지였고, 더 개기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 개기는게 너무 보기힘들고 통제도 마땅치 않다보니 체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이 있었다.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자신들과 직접 관련있는 특정 사안에 대해 각자 나름의 의견을 형성한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접할 일이 크게 없고, 접할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인 교육봉사나 사교육도 안하다보니, 나는 각자 나름의 의견을 가진 주체로서의 학생들이 굉장히 궁금하다. 나같은경우 한창 가치관을 형성하는 초/중학교 시절에 사회에서 여성을 재현하고 여성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단적인 예로, 학생들이건 TV에서건 희화화된 여장 하곤 하는 것에서 남성성/여성성이란게 저사람들에게 갖는 사회적 의미가 뭐길래 비대칭성이 생기는지 등등... 그리고 그런 생각들의 동기는 주로 거창한 인권 이런것보단, 성과 관련되기만 하면 왜그렇게 다들 징그럽게 말하고 비논리적으로 구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한명의 철저한 이과 너드로서의 논리적(...)인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그런걸 개념화하고 언어화할 도구가 딱히 없어서 혼자 네이버 블로그에나 썼었다.


그런식의 생각을 쌓아왔으니 미시적인 권력관계, 그리고 언어와 문화 속의 매우 미묘한 지점들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는 페미니즘의 언어는 전적으로 동의는 안하더라도 (당연히 그 안에서도 다 다르니까...) 매우 반갑고 맘에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성주의적 인식이 상당히 대중화가 되고 명시적으로 유통되고 있으니, 그런쪽으론 학생들의 의견이 어떨지 궁금하다.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불가역적으로 변화된 부분들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순도 100%에 가까운 반대vs동의 싸움인건지...


그러나 여러 기사들이나 현장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런부분은 엄청난 분쟁을 일으키는 주제가 되고있고 그 누구한테서든 차분히 들어볼 여건은 마땅치 않은듯하다. 기회와 여건이 되면 누구나 차분한 대화를 할수있다는 막연한 기대야말로 접어둬야할 낭만주의적 착각이겠지.


아무튼 다시 체벌금지 얘기로 돌아와서... 물론 그 당시 엄청난 효능감을 느꼈고 커다란 불합리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어메이징한 체벌이 있는 학교일수록 그런 문화가 뿅 하고 한번에 없어지기는 더욱더 어려울거고, 따라서 실제로는 사태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현재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물론 기억에 따르면 그당시 학생들 최고 관심사안이었던 두발 규제 폐지는 그때도 한다고 하다가 제대로 안됐고,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하지 말라고 하긴 하는데 많은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쉬이 안 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많은 지역의 학교들에서 전형적인 한국인 ethnicity를 갖지 않은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럴경우에 두발 등 외양관련 통제는 어떤식으로 변화해갈지도 궁금하기는 하다.


이러한 흐름에는 많은 노력이 있었겠으나 제도권에서 제일 임팩트있게 주도한 사람중 한명으로는 곽노현을 꼽을수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의 금품문제 및 해당 건과 관련된 mb국정원 개입 (개입 안해도 어차피 문제 됐을텐데...) 등 논란을 떠나 교육관 얘기만 해보자면, 인권이라는 가치에 근거해서 폭력적인 학교의 모습을 바꿔보려던 위와 같은 개혁 방항은 보편적 공감대를 살 잠재력이 있었고 결과도 그럭저럭 긍정적이었다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동일인물이 나중에 수학 교육에 대해 쓴 글 같은걸 보면 사적인 진보적 신념을 교육 및 교과내용에 과도하게 개입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건 곽노현 한명만의 모습이 아니고, 많은이들이 소위 진보교육을 결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국가의 중장기적인 발전 그리고 보편적 가치에 따른 국민일반의 권리 증진은, 경합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신념 중 다소 이상한 것들은 빠르게 쇠퇴시키고, 중요한 것들, 보편적으로 설득가능한 것들을 전면에 내놓고 견줌으로써 가능한게 아닐까 싶다.


뽑아 놨더니 원하지 않은 여러 가지 것들이 세트로 딸려오는 사태는 정치의 본성상 어쩔수 없지만, 어쩔수 없다고만 하고 적극적 해결 노력을 안한다면 대의제 정치에 대한 냉소가 커지며, 모든 사안을 분해하거나 반대로 모든 사안을 엮어버리는 극단주의의 탄생 계기가 된다.


쓰다보니 매우 두서없어졌는데, 구성이 탄탄해보이는 눈속임을 위해 맥아리없지만 어케든 마무리를 써보자. 결국 학생들 또한 권리와 욕망을 의식하고 피력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 대한, 낭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의 현장감있는 인식이 필요할듯싶다. 경합하는 정치적 가치들 중에선, 그렇게 인식된 욕망들을 존중하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긍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사이에서의 균형감 있는 선택은 단순히 선의만을 따라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단순히 어느 한 세력의 지향점을 전적으로 택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심지어 절충하겠다면서 중간을 택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결국 사적 신념을 우선시하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여러 행위자들이 느끼는 불합리를 먼저 경청하는 태도, 그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의제를 조직해내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공간을 열어줄수 있는지와 관련된 퍼블릭섹터의 역량이 문제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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