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초안을 쓰면서 영어 단어들의 뉘앙스를 보다 정확히 알고자 하다 보니 영영사전을 습관적으로 찾아보게 되었었다. 그런데 요새는 그걸 넘어서 단어들의 etymology를 찾아보는 취미 같은 게 생겼다.
제일 신기했던 건 -able의 어원인데, 다름이 아니라 고인류 '호모 하빌리스'의 이름에서 많은 이들이 보았을 라틴어 단어인 habere -> habilis (손을 쓴다, 손으로 잡다, 다루다 이런 느낌) 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구체적인 대상이나 동작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나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의 일반 양상과 관련된 추상적(?) 단어로 자리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손'이라는 특정 대상과 결부된 계기가 강하게 들어가 있어서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예 더 추상적으로 on, at, in 이런 식의 미묘한 위치관계를 표현하는 성분들도, 현재는 알 수 없게 되었을지언정 구체적인 대상으로부터 유래된 구상적 어원 같은 것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딱히 없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어원을 찾아보다 보니 언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일상적 동작과 일상적 사물들로부터 출발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어디서 출발하고 어떻게 약속돼서 이어져 온 걸까, 기초 단어들은 그 성립의 초기에는 언중에게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것일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돼서 재미있다.
언어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들의 언어능력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교류사·전쟁사 및 흥망사와, 어떤 경우에는 탁월한 개인들의 흔적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널리 쓰이지만 어원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한자어 및 우리말 단어들에 대해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아쉬움을 쉽게 메꾸려고 하다보니 유사역사학이나 유사언어학이 나오는 것일 듯하다.
생각해보면 한자문화권의 한자어 단어들도 그 구성 원리가 전혀 다르지만은 않다. 나는 한자를 잘 모르긴 하지만 어떤 한자어를 볼 때에 특정 글자가 어떤 다른 단어의 글자와 같은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편인데 (물론 헛다리도 많음), 그렇다고 해서 각 글자의 유래를 떠올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모르니까. 이와 비슷하게 서구권 화자들 역시 복잡한 단어를 봤을 때에 맥락과 라틴어 어원에 따라 (일일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대략적인 느낌이 올지도 궁금하다.
대표적으로 텝스 준비할 적에 절대 안 외워지는 com- 혹은 con-이 들어간 온갖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맥락과 어원을 결부지어 직관적으로 기억한다면 경선식류의 장난식 암기 굳이 필요 없이 좀더 효과적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일어 같은 경우에도 기초 어휘들은 게르만에서 온 것이라 라틴어, 그리스어 쪽과는 계통이 꽤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한창 공부할 적에 이런 쪽으로 접근해 봤으면 매일매일이 새롭고 좀더 재미를 붙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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