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단어가 페미니즘의 대안이 될 '진정한' 성 평등주의인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자주 이야기되길래 분명히 인터넷 어딘가에서 문헌오염(?)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렇게 된 것이었다.
이퀄리즘이라는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빌려서 '역차별의 우려가 있는 페미니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 이론으로 둔갑시키고, 실체가 없는 이론을 나무위키 문서로 게재하여 소개한 것이다. 비겁한 일이다.
물론 성평등을 추구하면서도 페미니즘의 여러 요소들에 대해 비판적일 수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상이 "없으면 만듭시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하고자 했다면 실체가 없는 사상을 상정해 놓고 거짓 권위에 의존한 논증을 펼칠 것이 아니라, 타당하고 건전한 논거를 갖춘 '선언'을 했어야 한다. 혹은 새로운 이론을 직접 세웠어야 한다. 없는 이론을 있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논의들을 참고하고 스스로의 새로운 논의를 더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도 성차별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페미니즘에는 문제가 있다' 라고 하는 사람이 과연 실제로 성차별을 잘 발견하고 있는 것일지 알기란 상당히 어렵다. 페미니즘과 성평등 자체에 적대적이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는 신뢰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최근 몇 달간 있었던 젠더 이퀄리즘 해프닝은 이러한 신뢰를 지극히 위태롭게 만드는 기만적인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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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