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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다시 87년을 생각한다: 막연한 낙관은 자제하되 국민들의 지혜를 믿어보자

비상계엄 사태를 그동안 엄중하게 지켜보면서도 국민의 민주적 의지와 제도를 믿고 잘 버텨 왔는데, 요 며칠 사이에는 스트레스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 버린 듯하다.

나는 군대가 동원되어 버린 이번 반헌법적 사태의 중대성에 비해 국민의힘의 태도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단순한 당리당략 문제를 넘어 헌법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무려 당 공식 조직인 '진짜뉴스 발굴단'에서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기초의원부터 중진 국회의원까지 곳곳에서 계엄 선포 자체를 아예 옹호해 버리는 등,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에 대한 선 긋기조차 거의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화가 나고 걱정이 된다. 오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정치 고관심층 친구들한테 이걸 솔직하게 토로해 보고, 몇 시간 전에 내가 신뢰하는 페친 분의 포스팅도 보고 나니, 이런 내 생각이 중도층 생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늘 calibrate해야 되는 것 같기는 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문제있는 경제관이나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먹사니즘, 빛의혁명 등 특유의 독자적인 어휘 사용을 보면 짐작이 된다)은 나 역시 지극히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재명 일극 체제가 너무 공고해져서 딱히 경쟁할만한 유력 주자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부적인 계기도 없는 작금의 민주당 상황은 심히 유감스럽다.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의 층은 국민의힘이 훨씬 두터운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그냥 균형 맞추려고 적당히 섞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걸 논할 시점이 아직 전혀 아니라고 느낀다. 일부러 말을 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탄핵 인용 결정이 나고 윤석열 측이 파면을 확실하게 승복하기 전까지는 일단 차기 대선에는 정말로 아무 관심이 안 간다... 이런 내가 이상한가 싶다. 군 부대의 국회 투입이라는, 통상의 정치 사안과 궤 자체가 다른 잘못을 저질러 버린 윤석열의 혹시 모를 정치적 복권(탄핵 기각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이나, 그 잘못의 심각성을 부정하거나 아예 적극 옹호하고 있는 극우세력 쪽으로 보수정당 주류가 아예 고착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만이 오직 최우선적으로 든다. 이게 지금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게다가 19대 대선과 비슷한 '어대명' 상황도 전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군을 동원한 국가폭력의 무서움과 중대함을,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들이 생각보다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비상계엄이 조기에 해제되어서 결과적으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 덕분에 (사실 없지도 않았지만) 일반적인 민주정치의 틀 내의 정쟁 사안이랑 비슷하게 취급되는 지금의 흐름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쌓아온 민주주의인데.

그렇지만 이런 흐름이 존재하는 이상, 결국 이것도 건전한 사법과 정쟁의 틀 내에서, 더 좋게 말하면 민주정치의 절차적 방법으로 순리대로 풀어나가야만 한다. 위에서 언급한 페친 분도 얘기하셨듯이, 그러려면 어느 진영이든 일단 현상 자체를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야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내 페북을 오래 봐오신 페친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유권자를 원망하거나 부정하기만 해서는 되는 게 없다, 현상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된다는 얘기를 정말 꾸준히 해 왔다.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국민들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때 꼭 국민을 탓하고야 마는 민주당 지지자들한테도, 그리고 호남표심을 자꾸 이상하다고 하고 인정을 안 하는 일부 보수 지지자들한테도 정말 꾸준히 해왔다. 이번에는 이걸 내가 나 스스로에게 새겨야 하는 시점인 듯하다.

내 지금 상태가 이럴진대, 비상계엄 사태가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걸로 생각하고 벌써 이재명 등 차기대선 이슈를 적극 언급하는 국민들은, 아마도 순리대로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믿고 벌써 그 다음 국면을 생각하는 것이니, 나보다 현명하고 강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음모론적 극우가 없을 수야 없지만, 대통령 본인이 경도되어서 거기에 아예 힘을 실어 줘 버린 것은 정말 너무 대형사고다. 혹자는 미국정치와 현재 세계질서의 변동을 보면 극우의 등장은 언젠가는 겪었어야 할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는' 겪지 않아도 될 너무 큰 분열의 씨앗을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빠르게' 싹틔워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내가 오랫동안 경계해왔던, 기독교극우의 주류화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빠르게,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서 한국사회를 두고두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한다.

미래통합당 때 장외 위주로 극우 음모론이 득세한 것이 황교안 당시 대표의 행보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거라고 안심시키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까지 영항을 발휘하면서 지금의 이 사단을 일으킨 것 아닌가.


이런 내 우려가 과도한 것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진입, 정치인 체포 시도 등 일련의 사태의 반헌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게 아니라, 그것들은 너무 당연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굳이 언급을 안 하고 그 이후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길 바란다.

국민의힘이 지금 정권을 뺏기면 안된다는 위기감 때문에, 마일드한 수준의 민주당 비토부터, 무려 당 공식 조직이 스카이데일리를 그대로 받아쓰는 수준의 심각한 가짜뉴스까지 모든 스펙트럼의 주장들을 일시적으로 여과없이 내보내는 것일 뿐이길 바란다 (물론 공당으로서의 공보기능이 마비된 수준의 그런 가짜뉴스 살포는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국힘 지지 유권자들의 다수도 반헌법적인 계엄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지도자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자연법칙화해서 책임에서 이탈시키는 우파 지지자들의 특이한 습관을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됐건 나는 탄핵 인용과 정상적인 승복 전까지는, 대통령이 계엄군을 동원해서 국민들과 대치시킴으로써 일촉즉발의 폭력에 노출시킨 사태의 중대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그걸 잊거나 가벼이 여기는 의견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판적인 생각을 유지할것이다. 차기 대선은 그 이후에나 머리를 굴려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너무 비장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수 있지만, 이것도 결국 내 관심사에 따라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대한 내 판단인 거니까.


다시 87년을 생각한다. 정보가 차단된 채 진행된 고강도의 훈련으로 악에 받힌 계엄군을 동원하여 아예 실제로 국민을 학살하는 결과에 이르고, 그 이후로 7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독재까지 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에 끝나게 되었을 때, 양김의 분열로 인해 민정당 내 다른 세력도 아닌 전두환의 최측근 노태우가 당선되어 버렸다. 이를 보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들의 절망감은 대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시간조차도 한국인들은 버텨왔고 민주화를 정착시켰다. 그러니 이번 상황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비합리적인 기대를 가져 보게 된다.

다만 1980년대에 비교해서 지금의 한국은 엄연한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서 너무 잃을 게 많은 나라가 되어있긴 하다. 국격과 국가 경제의 낙차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크다. 게다가 경제 성장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취라도 얻어 내면서 정치적 진전과 희망이 없지 않았던 87년과 달리, 지금은 나라의 여러 상황 전체가 그렇지 않아도 근시일 내에 고점을 찍고 급격히 하락하는 게 예정되어 있던 시점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최대한 잘 해결되어 봤자 이번 사태의 빠른 수습과 세계에 자랑하던 민주주의의 원상회복 정도이지, 나라가 딱히 진전되거나 성취를 얻을 부분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는 87년에 비해서 미래지향적 계기를 찾기 더 어려워보이는 면도 있다. 또한 정치엘리트들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 크기가 아닌 민간의 극우 및 극우기독교 조직이 너무나 커진 상태라는 점도 상당히 부정적인 지표다.


그러나 디테일에 있어서는 개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 배우고 기억할 부분도 분명히 많이 보인다. 내 생각에 먼저 5년짜리 왕과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위를 더욱 분산하는 제도와 관례를 확립해야 한다. 경호실이 본연의 기능을 넘어서 정치적 최측근이 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만들고, 심기경호라는 잘못된 개념도 철폐해야 한다. 군 일부 고위 인사들과 일부 일선 부대 내에서 아직까지 이어져온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 헌법과 군의 역할에 대해 더욱 철두철미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번 일은 아마도 뉴미디어 음모론에 국가지도자 자신이 경도되어 반민주적 군사개입까지 일으킨 최초의 사례로 보이므로, 굉장히 중요한 화두를 전세계에 던져주고 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앞으로 한국인들이 활발하게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가 아까운, 나라가 성장을 점점 멈추고 미래를 위한 동력도 안 보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기 위한 각 부문의 정책논의가 반드시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물론 계엄 때문에 더 밀린 것 같긴 한데, 연내에 결국 상법개정 하나 합의를 못 한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암튼 이것저것 많이 썼는데 결과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이렇게라도 내 생각을 풀어내고 반대 의견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요새 임계점에 달해있는 스트레스를 좀 식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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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일요일

급기야 북한발 비상사태까지 유발하려 한 내란세력: 안보와 국민경제는 안중에도 없었나

설마 했는데, 지난 가을의 평양 무인기 사건도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기획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희대의 주장도 완벽한 거짓말로 드러나고있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 왜 일어나는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부의 불안정한 역학관계가 발생했을때 대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바깥(?)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과 김용현도 비슷한 이유로 남북관계 긴장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북한 같은 폐쇄 고립 정권이 들어선 곳도 아니고 대외적인 리스크에 정면으로 개방된 채 매일같이 막아내며 여기까지 성장해온 나라인데, 이번 국지전 유발 시도 및 계엄으로 국민 생명이 이미 위협당한 것은 물론이며,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국민경제는 쪼그라들었고 국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북한이 대응해서 확전이라도 했으면? 한국의 계엄군뿐 아니라 북한에 의한 실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엄령의 정당성마저 확보될 수가 있고 그 여파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교육받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지금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들이 이미 RP 무제한매입, 국민연금-한은 외화 스와프 등으로 우리 세대의 복지 자금이 될수 있는 돈들을 하루에 십수조 혹은 수십조씩 빼서 금융시장 충격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건 안 그래도 무너져 있고 부동산에 기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생애주기 설계에 장기적이고 결정적 악영향이 불가피하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 및 용서가 불가능하다.

잘못은 내란을 획책한 소수 사람들이 했는데 왜 그 책임은 5000만 국민들이 져야 하는지, 그것도 왜 하필 내가 살아가가야 하는 세대에 이런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정말 너무나도 억울하다.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이번 기회에 국가 체질을 바꿀 부분은 바꾸어서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는 게 그나마 이번 사태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다.

기무사도 이름까지 안보지원사로, 또 방첩사로 바꿔가며 쇄신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충암파인 방첩사령관 지휘 하에 사전 작업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번일에 참여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상명하복에서 오는 비극일 수도 있지만 결국 본연의 임무들 잘 했건 못 했건 이번 일에는 부대 해편까지 포함한 아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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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0일 수요일

비판을 차단하는 졸속행정과 극우 이념운동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부의 15개월

대선 직후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실하고 양심있는 시민들의 절차적, 실질적 법익이 당장 대규모로 침해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비판과 감시가 작동할 테니까, 검사출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이제 우리도 검찰에 잡혀가는거 아니냐'(주로 SNS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많이 말하던)라는 식의 과도한 언사는 일단은 반대자들한테 비웃음만 사기 쉽고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었다. 이 얘기는 무려 대선 바로 다음날 포스팅에서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군검찰이 해병대 사망사건 수사단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니 (뉴스 기사 링크: [1보] 군검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청구 | 연합뉴스) 위의 우려는 그 동기와 별개로 결과적으로 결코 조롱도, 과도한 걱정도 아니었고 그 자체로 맞는 말이자 타당한 우려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료집단은 그 보신주의적 성격상 정권의 의지가 강하다면 아무리 이상한 일에 대해서도 억지로라도 논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이는 대통령 실언 수습 과정, 그리고 수능 논란이랑 R&D예산삭감 등 졸속정책 등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법익이 직간접적으로 심대하게 침해되며, 논쟁의 내용 면에서도 건전하고 조심스러운 논의일수록 가장 빨리 힘을 잃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관료집단을 통해 구현되는 국가권력을 내가 너무 가볍게 봤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대규모로 법익을 침해하고 일을 말도 안 되게 더 키우는게 벌써 십수 번씩이나 눈에 보이니까 정말 걱정이 된다. 외교 무대 관련 논란이나 수능 킬러문제 논란 때도 여러 번 그랬었다. 사실은 백수십명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너무 마음이 아파지니까 더 얘기는 안 하겠다.

물론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폭로하고 싶으면 이런 고초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한데, (내가 평시 군검찰 군판사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인건 차치하고) 그걸 감안하고 봐도 지금 수사단장에 대한 군검찰의 적극적인 기소는 다름 아니라 윗선의 외압을 폭로하는 행보에 대한 보복임이 명백해보인다.


말문이 트인 김에 역사관 논쟁도 얘기해보자. 21세기 이래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보수 이념운동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형국인데 그 수위가 대단히 세며 국민통합이 아닌 좌우 분열을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점, 그리고 육사를 비롯한 군 조직이 자신들의 내부 방침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문제겠다.

임시정부 수립 및 8.15 광복이 아니라 1948년 건국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서 늘 밀고 있는 방향이니 이번 정권 들어 그렇게 하겠다 싶긴 했지만, 그 방법으로서 당대 인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행보를 '현재의' 북중러와 직접 연관시켜, 현재적 이적성(利敵性)에 가까운 것을 단정적으로 부여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하려는 지금의 행보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막말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전후에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대한민국 수립에의 기여를 일괄적으로 불인정해 버리면 (실제로 홍범도 유해를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북한이 그들에 대한 계승의식을 배타적으로 취하는 것을 막을 논리가 사라져서, 대한민국을 이념의 무균실로 만들어 그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맷집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지 않은가.

섬세한 역사학적 논리가 아닌 오직 반공 몰이를 통해 역사 논쟁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려고 하는 보수 이념운동의 오랜 나쁜 습관이 정권에 의해 직접 추인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정부여당이 매우 강경한 의견을 천명하니까 그동안 외면되거나 자제되었던 온갖 강경한 의견들이 덩달아 힘을 얻어 수면위로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정치권력의 가장 무서운 힘 중에 하나는 스스로의 개념체계를 - 그 개념체계의 건전성과 무관하게 - 현실 사회에 그대로 구현해 버리는 능력이다.


인사도 정말 문제다. 막말로 이동관이 자녀 학폭 무마 적극 개입, 정보기관과 연계한 적극 방송탄압 경력 등 숱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장으로 임명을 시키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2019년 당시의 검찰이었다면 바로 수사개시를 해야 맞음.

정권 초반 고위공직자 인사문제는 일차적으로 정치영역에서 해결을 보는 게 순리이기도 할 것이고. 후보자의 논란사항에 대해 검찰이 전격 수사를 개시해봤자 정권이 아직 건재하니까 제대로 진행될 각이 안 선다고 봐서 일반적으로 안 하는 일인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국정원 덧글사건, 그리고 2019년 조국사태 당시 검찰 내 특정인사는 숱한 노골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걸 해냈기 때문에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국 임명된) 이번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그런 움직임을 전혀 안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이건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겠냐는 것.

물론 여러번 지적했듯이, 이걸 어떻게 해야 이상적이냐고 물었을 때 답이 명확하진 않다. 무슨 카드게임 하는 것처럼 어떤 건은 바로 수사 개시하고 다른 건은 각이 안 나오니 꿍쳐놓고 못 하고... 특수수사의 이러한 '근본적으로 선택적인' 모럴은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지만,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관료기구가 자율적 시스템 위주로 작동하면서 구성원의 직업윤리적 책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지난 5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하는 문제가 많은 발언들에 질려서 가급적 거리를 뒀는데, 정권 바뀌고 나서 나도 이렇게 금방 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말 (나도 잡혀가는거 아니냐? 왜 조국은 수사했는데 쟤는 수사 안하냐?) 을 하게 될 거라고는 1년 전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제대로 하면 이러지도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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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 함양은 통례, 통설의 존중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꽤 유명한 우파 페북셀럽의 최근 포스팅 중에 사실관계와 인식의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는 글이 하나 보이길래 캡쳐해봤다 (본 게시물 최하단 Facebook 링크에 캡쳐본 게시). 이 글에서는 전후 GHQ가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한국인들은 그 이름을 거의 모르고 일본인들은 거의 안다며 한국인들의 무지와 반미적 의식을 비판하고있다.


그러나 내가 늘 지적하듯이, 어떤 역사적 개념이나 쟁점을 남들은 몰라서 얘기 안하는게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일부러 안가르친다, 쉬쉬한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소위 '불편한 진실'이다, 성역화다 등으로 믿는 것은 건강한 보수세력이 아닌 극우화로의 출발점이 될수 있으므로 경계해야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시작, 위기극복 그리고 존속에서 미국의 역할을 되새기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국제주의적 시야를 함양하는것 자체는 우파에서 권장될만한 하나의 정합적인 실천적 견해임.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사실관계와 역사학계의 통례/통설을 기반으로 해야하는것임.


► 2차대전 종전 후 일본과 한반도에서 군정을 시행한 기구의 정식명칭은 SCAP이며, GHQ는 사실 원래는 그냥 총사령부 라는 일반명사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에만 주로 사용함.


► 그렇다고 한국에서 안 쓰거나 기피할 이유가 없는 단어이고, 한국에서도 근현대 세계사와 일본사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GHQ 당연히 모르지 않을것임. (물론 한국의 역사교육에 국제주의적 시각이 아직 부족하고 한국인들이 국제사안에 관심이 덜한면은 있어보이긴 함)


► 그러나 GHQ가 주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단어임은 변함이 없으며 한국의 미군정사령부 및 군정청은 그냥 '미 군정'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임.

► 편제상 한국 미군정의 사령관인 존 하지가 맥아더 휘하였던것은 맞으나, 실제로는 일본 통치에 바쁜 맥아더보다는 미국 본토의 지휘를 받거나 미군정청 자체적으로 통치한 면이 많으며 맥아더의 직접적 영향은 미약하였음 (물론 재조망의 시도도 존재함). 따라서 실질적 통치 형태를 고려하더라도 본문에서처럼 한국의 미 군정까지 GHQ로 칭하는것은 통례와 매우 다르며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용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색한 쓰임임.

즉 종합하자면 본문은 역사서술에서 용어 사용의 이슈(그마저도 용어 선택 문제가 실질적 정치적 쟁점사안도 딱히 아닌)에서 자신이 임의로 택한 의견이 통례와 불일치할 뿐인 것을, 국민들의 역사 인식의 문제로 비약 과장하고있음.

본문의 핵심 문제제기였던 GHQ 용어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로 하되, 미 군정 자체에 대한 평가부분에도 사실관계 오류와 비정합적 논조가 다수 보이므로 사족으로 추가해본다.

► 물론 공산주의를 철저히 막는다는 큰 방향성 설정, 그리고 한반도 남부 통치라는 중책을 맡고 향후 수립될 대한민국의 기본적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미 군정의 영향은 매우 크긴 하지만 정작 그 세부에는 반복되는 실패와 혼란이라는 측면도 많이 존재함.

► 특히 여순사건은 미군철수 공표와 한국군 전력 충원 과정에서 미군정청이 좌익성향 인물들을 색출 없이 군인으로 받아서 총을 쥐어준것이 주요 요인중 하나로, 미 군정의 실책이 있다고 보는것이 통설임.

► 게다가 막상 여순사건의 실제 발생 및 진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이므로 미 군정의 역할은 없음. 백번 양보해서 '주한미군'이 진압을 지원하긴 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진압으로 보는게 일반적. 여순사건의 대응에서 미군의 역할이 알려진것보다 클것이라고 가정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반미 진보계열 언론임.

► 4.3 사건의 경우도 그 최초 발생은 미 군정시기이나, 약간의 소강기를 거쳐 본격적인 토벌에 따른 커다란 인명피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역시 미군정과 무관함. 남로당 무장세력뿐 아니라 군과 서북청년단 등의 토벌대가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음. 더군다나 미군정이 각 세력을 조기에 원활하게 다루지 못한것도 4.3사건의 극단적인 귀결에 책임이 있다는게 흔히 지적됨.

► (이건 글 서두와도 연결되는 내 개인적 생각임) 정부수립 전후 혼란상에 있어 공산주의 세력의 책임은 모르거나 쉬쉬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모두가 아니까, 그리고 당시에 조직이 와해되고 주요인사가 월북하면서 쟁점들이 종결되고 현재성을 잃었으니까 굳이 적극적으로 얘기 할필요가 없어서 얘기가 덜되는것이 아닐까함.

► 4.3사건 진행은 미국이 예의주시하며 본국에 리포트 하고 있었으나, 토벌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얼마나 했는지는 미규명된 부분이며, 역시 미국의 역할이 클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진보언론의 견해임. 물론 정확히 알려져야 할 부분이나 본문의 미군에 긍정적인 논조와는 맞지 않음. 4.3사건은 수많은 민간인희생을 자유진영 공산진영 양쪽에서 일으킨 사건이므로 미국의 역할을 부각하며 상찬하는것을 미국이 꺼려할지 반길지는 명약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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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2일 금요일

병무정책의 정치화와 병사월급 정상화는 무조건 환영이다

병사월급 200 공약은 윤 대통령 취임 날 전후로는 사실상 공약 파기 수순이라고 보도될 정도로 크게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추진 의지가 꾸준히 있는 듯해서 다행이다.


지난 정부에서 원래 계획보다는 다소 적긴 하지만 60만원 (병장 기준) 으로 올려 놓았고, 이는 물가 및 통상 임금 대비 아예 없는 돈 수준이었던 기나긴 10~20만원 시절과는 군복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 또한 정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수 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그렇지만 파격적인 증명이었다. 이번 정부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가서, 20-30년 전에 진작 달성되어도 모자랐을 세자리수 월급을 드디어 달성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월급인상은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얻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보편적 권리라는 관점에서 다소 탑다운 성격으로 주어진 것이고, 핵심 수혜층의 정치적 성향도 문정부와 반대되는 탓에 주요 정치적 성과로서 부각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는 엄연히 '정치적' 쟁점사안으로서 이 문제가 줄다리기되면서 다뤄지고 있다.


개별 군사안보 문제에 나쁜의미로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개입되는건 여야 모두 경계해야 하지만 (북송문제 여론추이를 보라), 국가와 국민의 관계설정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병무정책만큼은 의사결정에 민주적인 국민 참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까지 많아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이는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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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또 "'MZ세대'의 군 생활이 안전하고 유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해 달라"며 대선 공약이었던 병사봉급 200만원 이상을 차질없이 추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촘촘하고 효율적으로 구성하는데 만전을 기해달라"며 "한미동맹 강화에 발맞춰 실기동 훈련을 정상화하는 등 연합훈련과 연습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尹 "병영문화 지속개선…병사 봉급 200만원 이상 차질없이" (중앙일보 기사(김은빈 기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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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5일 화요일

허준이 교수님의 필즈상 수상 및 세간의 논쟁

허준이 교수님(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 수학계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한 분인데, 우리 학교 물리천문학부 출신이고 학부 후반까지만 해도 과학기자를 하려고 했다고 하니 공연한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과학인문학이나 과학저널리즘 쪽까지 포함한 여러 진로를 탐색하다가 물리 쪽으로 뒤늦게 마음 정하고 시작했지만, 잘 할수 있으면 좋겠다.


박사 1학년 때 증명한 Read's conjecture, 그 이후 2015년에 증명한 Heron-Rota-Welsh conjecture (혹은 Rota's log-concavity conjecture. 언론에서는 로타 추측이라고만 언급되는데 찾아보니 흔히 Rota's conjecture라고 불리는건 다른 명제인듯) 등의 업적이 있고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연결짓는 연구를 하신다고 한다.


학부 후반에 필즈상 수상자인 일본인 초빙교수의 대수기하학 수업을 듣고 (이 시점에서 이미 흔히 생각하는 늦깎이와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수학 쪽은 워낙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긴 하니까) 수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결국 스승처럼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영화같은 스토리도 있다.


한편, 세간에서는 축하의 분위기와 함께 국적 및 병역과 관련된 궁금증과 논쟁들도 있다.

사실 그동안 허준이 교수와 반대로 한국과 인연이 없는 한국계 미국인이 좋은 소식으로 뉴스에 나왔을 때, 어쨌든 핏줄은 한국인 아니냐며 동질감 느끼고 축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게 과도한 민족주의로 많이 비판받기도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와 반대로, 국적은 미국이지만 초중고 학사 석사까지 한국에서 나온 사람이 필즈상을 받은 것을 두고 '그냥 미국인 아니냐'라며 왜 축하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이 보인다. 위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내용은 반대지만 형식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은 거울상 같아서 퍽 심술이 난다.


각 부문에서 사례가 쌓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나친 국뽕(?)을 경계하는 성숙한 태도가 어느정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는 안티테제로서 이러한 과도한 냉소도 생기는가보다 싶다. 그래도 그런 태도가 반대쪽에서 꾸준히 역할을 하는 덕분에, 정반합으로 성숙한 태도가 더 효과적으로 자리잡게 될것 같기는 하다.


가족관계로 이어지는 혈통, 서류상의 국적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어떤 판단을 하기보다는, 삶의 총체적인 행적을 (물론 알려진 정보만으로 내 맘대로 재구성하는 거지만) 읽어 보면서 어떤부분은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부분은 이질감 느낄 수도 있고 그런 것 아니겠나. 그냥 그런 총체적인 느낌들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왜 어떤 한 기준으로 고정시켜서 규정하고 판단하려 하는것인지 모르겠음.


그 모든 동질감이나 이질감을 퉁쳐서, 해소해야 할 비합리적이고 두려운 것으로만 취급한다면 종합적인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 감정들의 존재를 appreciate한 채로 어떻게 하면 특수성에 기반한 세계시민적 보편성을 만들어 나갈것인지 생각해야한다.


또한 같은 수학자였던 배우자분이 커리어를 중단한 사정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다. 하단에 링크한 임소연 교수님 글에서 보듯이, 알기 어려운부분인 개인사를 추측하고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보다는, 좀더 보편적인 여성 커리어 문제로 연결지어 논하는것이 지혜로울테다.


아무튼 필즈상 수상소식을 성취지위에 대한 논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적 분위기 속에서 허준이 교수의 수상소식은 병역 논쟁과 젠더 논쟁을 뜻밖에 약간이나마 초래하고있다. 흔히 세간의 논쟁에서 임출육 문제와 병역문제를 병치하는 게 졸렬하다고 종종 간주되지만, 한국이 수십년간 쌓아온 업보 탓에 그 둘이 현실적으로 interlocking 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90%에 달하는 남성이 현역으로 징집되며 나머지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기형적 강제노동을 하는 극단적 병역부담을 해소하고,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결정적으로 제한하는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둘을 지혜롭게 unweave해야 할 텐데, 아직은 기존의 질서가 꽤나 공고해보인다. 대안적 수행과 개선된 제도로 과감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압박과 주변의 시선에 의해 들볶아지는 기존의 분위기가 유지될지, 그 과도기는 우리 세대에 오는듯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1, 링크2, 링크3(임소연 교수님 '과학기술 분야 성별 격차에 대하여')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병역자원 문제는 임박한 현실이다: 숙의 부재 유감

군대 징집가능 인구수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쯤 뒤에는 어떤 식으로든 논의가 가시화돼서 대대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하필 지금 우리 세대 정도가 딱 과도기라 현역 입영률이 말도 안 되게 높고 그런 게 특별히 더 억울한 것인데.. 한 20년쯤 윗세대부턴 이런 정도의 억울함-감각을 잘은 이해 못 하던데, 인구집단의 정치적 견해차 때문에 그들이 우리 세대에게 일부러 위악적으로 하는 것도 있을 테고, 요즘 세대의 여러가지 인식 변화도 있겠지만 현역입영률 문제가 제일 주효하다고 본다. 솔직히 이미 벌어진 일이고 딱히 해결방법이 없는 부조리인거 같다.

그나저나 한국에서 우리 나이대는 왜케 모든이슈에서 다 과도기 같냐... 사실 모든세대가 다 그렇게 느끼는걸수도 있겠지만 암튼 인구도, 부동산도 그렇고 반도체도 지금 난리고. 모종의 이유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엔진이 총체적으로 꺼지고있는 상황인게 아닌가 하는 문학적(?) 생각도 해보되 이건 일단은 상상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암튼 그래도 향후 있을 대대적 변화를 준비하는 느낌으로 월급 인상, 휴대폰 허용 등이 지난 몇년간 이뤄진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수 있음. 그나마 뭐라도 해주는게 생긴셈인 데다, 변하려면 변할순 있다는걸 보여주긴 한거니까.

물론 기존에 병사로 들어오지 않았던 인구집단, 예컨대 이주민이나 여성 등등이 병사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비교적 원활히 생활이 되도록 문화(?)를 바꿔나가는건, 휴대폰 허용 같은것보다 훨씬훨씬 어려운 과제이고 장기간의 노력을 필요로 할것임.... 솔직히 지금상태에서는 일치단결해서 적을 향한 폭력을 준비하는데 해가 될뿐더러 국민으로서의 군인의 기본권을 심대하게 해치는, 불가피하지 않은 폭력을 내부적으로 재생산하는 문화가 너무 심하고 이는 이미 현재만해도 약자에게 특히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병사 인력풀이 급거 확대되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싫을 정도다.

덮고 묻으려는 보신주의적 경향을 약화시켜야 하고, 군사법원 등이 제대로 신뢰 못얻는데 결정권을 과도하게 갖는 문제도 (지난 몇년간 어느정도 변화 있긴 했지만) 계속 해결해야하고 군도 민간을 더 믿어야한다. 여기에 더해서 인상된 월급을 바탕으로 해서 기존과 다른 방식의 시범 병사 같은것도 꾸준히 해봐야 한다. 마법같은 한방 해결책을 바라기보단 꾸준히 정석적으로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겠음.

병무청이야 눈에 불켜고 인원 확보해야 하는 입장이니 꾸준히 연구같은거 해서 발표 하던데, 이에대해 대응 겸 공조 겸 각 정당의 연구소랑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진지하게 제대로된 대책으로 구체적으로 기능할수 있는' 병무정책 연구를 반드시 축적해 나가야 하고, 내부적으로뿐만 아니라 꾸준히 바깥에 던져서 국민들의 의사를 확인 해야한다.

특히 징병 vs 모병 논쟁은 사람들마다의 평등에 대한 이념이 강하게 충돌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걸 서로 견줘볼 사회적으로 좋은 기회기도 하고. 암튼 병무를 폭력과 불합리의 상징으로 놓고 각자의 의제를 이슈파이팅 하는 데에 상징적으로 도구화해서 동원하기만 하는 방식의 접근은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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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1일 목요일

막을 수 있었던 죽음: 평시 군인의 건강권과 생명권

벌겋게 달아오른 반점에도 복귀 명령… 8일 만에 숨진 21살 병사

(기사 링크: https://m.edaily.co.kr/news/Read?newsId=03965526632297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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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있었던 죽음. 먼저 국가의 포괄적 책임으로 구조적, 제도적 해결을 해야하고, 그 다음엔 지휘관의 직접적 책임이어야 한다. 싫어할 얘기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방이 안된다.

군인의 이동을 통제하고 명령하는건 국가의 정당한 강제력인만큼 확실한 근거 하에 행사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손실을 막는다는 전술적 차원뿐 아니라, 군인을 국민으로 존중한다는 기본권의 측면에서 그렇다.

아픈데 안 내보내줘서 사망까지 간 경우가 드물지도 않고 보도가 많이 되고...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병원 안보내줘서 가벼운 병을 키워서 나오는 경우 자체는, 씁쓸하지만 보도 가치조차 없을정도로 정말 흔한듯하며 내 주변만해도 한두명이 아니다.

이러지 말고 평시에는 외부진료를 포괄적,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듯하다. 촌각을 다투고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한 작전 수행과정에서도 아니고,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데', '치료받기만 하면 낫는 상황인데' 단지 허락 하나가 안떨어져서 치료 못받아서 병을 키우는건 명백히 불합리하다.

아니면, 되도록 무조건 복귀 시킬거라면 민간 진료에 준하는 수준으로 믿을만한 진료를 제공하던가.

물론 일선 부대에서는 부대원이 오래 나가있을수록 지장이 있고 다른 부대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가능한한 복귀 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의 생태와 논리가 있다. 엄중한 군관련 문제에 건강권같은 상아탑같은(?) 소리가 먹히겠냐고 비판할수 있으며 실제로도 흔히들 그렇게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 논리는 기본권과 조화되어 행사되어야 한다. 불가피한 상황인것도 아닌데 건강권과 생명권을 적극적으로 위반하는 내부논리는 정당성을 잃을수밖에 없다. 군인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결코 상아탑같은 소리가 아니며 당사자에겐 그 무엇보다 선명한 현실이다.

한두명이 짧지않은 시간동안 빠지더라도 부대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고, 악의적으로 나가있으면서 폐 끼치는것도 최소화할수 있도록 정석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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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4일 목요일

시혜적 태도를 걷어치워라: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기본권의 보장 관점으로

페이스북에서 어떤 글을 보았다.


전형적인 좋은 일 하고도 욕먹는 화법이 이런것이다. 군인 월급이 그동안 비상식적으로 낮았고 문재인정부 때 많이 오른걸 군인들이랑 20대들이 당연히 누구보다 제일 잘 알지 그걸 왜 모르겠나.

글쓰신분의 평소 포스팅에서 보이는 정치 성향상, 20대 남성이 이걸 모르기 때문에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원망 내지는 훈계도 은연중에 들어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지라 단 두줄이지만 더 좋지않게 읽힌다. 따뜻한 시선을 갖고, 권익을 보호해야할 국민의 한사람으로 보면 과연 이런 워딩이 나올수 있을까?

군인 월급 정상화 같은 기본적인 권익 관련 정책을 얘기할때는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기대해서는 안되고, 설령 정치적 지지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옳기 때문에' 해야한다. 무시하는 뉘앙스와 시혜적 태도가 모든걸 꼬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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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8일 화요일

천안함을 모욕하는 자들에게: 가혹한 언사마저도 너무나 어색하다

천안함 음모론이라던지, 전사한 장병들 그리고 생존했지만 부상이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을 여러 장병들에게 못할 말을 하는 범 민주계열 일부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소위 말하는 군인정신이라던가, 적에 대한 철두철미한 인식 같은걸 평소에 쎄게 가질 계기가 특별히 없었을 사람들인데, 천안함에 대해 뭔가 말을 얹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전쟁 '잘알' 코스프레 하는것 같다는 것.

당시 상황에 대해 이래저래 평가하면서 일종의 갈라치기(?)도 시도하는 거 같은데 그것마저도 어딘가 어설프다.

패잔병 운운도 마찬가지고. 그런 발언들을 보면 평소의 신념에 기반해서 말한다기보다는, 단호하고 승리를 중시하는 가상의 인간상을 설정해놓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해서 대충 가혹하게 말하는 느낌. 근데 그런 언설들이 너무 많이 유통돼버렸다.

그런 말을 앞장서 유통시킨 사람들이 그 말의 무게에 걸맞도록 전투 같은 것에 대해 책임감있게 고민해본적 있을까, 그리고 보훈 같은 개념은 염두에나 두고 있을까 싶다.

하긴 나야말로 군대 다녀오지도 않았고 그런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러니까 함부로 그렇게 말은 안하지 않나.

물론 그냥 인상일 뿐이고 왜 저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런 언사들에서 드러나는 인식이 어딘가 어색해서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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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8일 토요일

군대문제에 필요한 관점: 근시안적 제안이 아닌 실현가능한 거시적 변화로

정부에서 지난 몇 년간 추진한 월급 인상과 휴대폰 허용 등 병사 처우개선은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따지자면 이는 편견과 관성 때문에 누구도 추진하지 못했을 뿐 '진작 이뤄졌어야 할 일'에 속하며 군대문제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 성과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는 어떠한가? 지난 보궐선거 이후에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첫째로 (특히 코로나 대응에서의 인권침해와 관련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부조리가 폭로된 게 있다. 이 부분은 장관까지 사과하는 등 꽤 잘 되고 있다고 본다. 겁먹고 더욱 은폐하려는 쪽보다 폭로 하려는 쪽이 힘이 세지도록 앞으로도 정치권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테다.
그러나, 병역제도 자체와 관련해서 여당에서 내놓는 여러 방안들은 명백히 불충분하고 때로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 안보, 젠더문제, 복무자 인권 등 다양한 이슈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병역제도에 대한 큰그림을 찾아보기 힘들다. 군가산점 부활은 물론이거니와, 박용진 의원이 제안한 평등복무제 역시 평등복무 그 자체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런데도 딱히 그렇게 평등한지도 모르겠고, 많은 인원에게 실질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숙련도를 확보하기 어려운 등 국가 입장에서나 개인 입장에서나 낭비만을 일으킬 방안에 가깝다고 본다.
나는 이런 현상이 병역과 관련한 불만을 어떻게 '달랠지' 생각하다 보니, 기계적 공정함에 영합해서 비교적 '쉬운' 근시안적 대책만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본다. 결국 군대문제 관련해서 해야 할 일의 본질은 불만 달래기 그 자체라기보다는, 군대가 실제로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일테다.
보상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겠지만 더 어려운 문제인, 군대 조직을 적당히 들볶으면서 군대문화 자체를 바꿔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군대에서 무슨 사건이나 문제제기가 생겼을 때 악명높은 보신주의적 일처리와, 그에 따라 모든 책임과 고통이 피해자한테 돌아가는 그 뿌리깊은 구조 자체를 혁파해야 한다.
일단 사건을 덮어서 얻는 이득보다 그 은폐의 시도가 폭로되었을 때 얻는 손해가 더 크다면 어떻게든 움직이긴 할거라는 점에서, 휴대폰 허용에 따라 그런 폭로가 보다 수월해진 점은 일단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건 군대문화의 말단에서 코너에 몰린 당사자가 택할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서 어떤 시작점일 뿐이다.
결국은 간부가 병사를, 선임병이 후임병들을 사람 취급할수 있게 하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귀찮은 골칫거리로 인식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만으로 된다고 하면 순진한 소리일 거고, 징계 등과 관련한 상급자의 손익 판단이 하급자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방향으로 덜 가게 하는 장치들을 생각해볼수 있을 것이다. 박용진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로 시도했던 것과 같은, 병역제도에 대한 보다 큰 그림들도, 군대문화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돌려놓는 모멘텀이 확실히 보일 때에야 더 성숙한 형태로 다시금 따라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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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8일 수요일

군대 부조리는 더욱 많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군 공식 기구로 오해받는게 장단점이 있다고 유머섞인 말씀을 들었었는데 이런 실질적 어려움까지 생기는구나 싶다. 업무에 많은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사람들이 항의전화를 올바른 곳에 하면 좋겠다.

그래도 병사 가족들이 군대가 이 지경인걸 알고 항의하려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주변사례와 보도사례를 보면, 병사들이 부모님 걱정 안 끼쳐 드리려고 군대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걸 말을 잘 안 하는 모양인지, 거의 모르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거 같더라. 애초에 그런 일들이 없었더라면 최선이겠지만, 이미 일어난 이상 언론 보도를 통해 당사자들의 가족들이 많이 알게되는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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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5일 목요일

보이콧성 병역거부도 당연히 인정될수 있어야한다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적용하면 이런 보이콧성 병역거부도 당연히 인정될수 있어야함. 물론 법리의 디테일은 당사자가 잘 만들어서 가야겠지만... 암튼 상상만 하던 건데 엄청 용기있는 분이네.

상징적으로라도 엄청 많은사람이 이런거 하면 뭐가 좀 바뀌지 않을까싶음. 병역거부로 인정 안해주더라도 군대 여건을 더 낫게 해준다거나 사고났을때 좀 제대로 대응 해준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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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4일 수요일

안보역량과 민주성을 조화시키기: 원칙의 준수와 시민 감시의 확대로부터

국군기무사령부(현 안보지원사령부)에서 입대예정자의 진보신당 학생위원회 경력 등을 입수해서 문건으로 만들고, 논산훈련소에서 따로 불러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냥 입대예정자인지 아니면 '기무사 입대예정자'인지는 모르겠는데, 신상조사가 있을거라고 미리 얘기해주는 지원병이나 장교같은게 아닌 한에야 명백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군대든,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공권력을 가진 집단에서 정보역량, 수사역량 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좀 원칙에 어긋나는 걸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너무 뭐라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지만, 내 생각엔 이런 게 걸렸을 때 그 경우에 부합하는 충분한 명분을 못 제시하면 어쨌든 그만큼 까이고 넘어가야 하는것 같다. 그래야 폭주를 방지하고 민간의 견제가 가능하지 않겠나.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되는 것들 중 진짜로 중요한 것도 많이 있겠지만, 군 내부 사람들의 시대착오적 판단에 의한 것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욱 그렇다.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결국 민간에 평가를 맡겨야 하는 것이고, 이런걸 둘러싼 문제제기는 누가 하더라도 딱히 불온하거나 위험한 게 아닌, 건강한 줄다리기로 받아들여질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평시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행사할수 있는건 군인이 아닌 경찰과 검찰(그리고 경우에 따라 국정원 등)인 만큼, 정석대로면 민간인 대상, 군대와 직접 무관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무부대가 저렇게 직접 정보 수집하는 방식이 아니라, 검경으로부터 전과기록이나 수사 상황 같은걸 정식으로 전달받는 식으로 해야 맞는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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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4일 토요일

여기는 종교법정이 아닌 세속법정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헌법불합치라는 헌재 판결이 이뤄졌고 거부자들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대체역도 신설되어 2020년 10월부로 첫 소집되었다. 그러나 진행중인 병역거부 사건들에서 신념의 진정성을 다툴 때 검찰이 사용하는 주된 논리는 여전히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잘 부합하지 못하며, 병역거부자에 대한 이들의 근본적 인식 역시 헌재 판결 이전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 논리의 저변에는 특유의 어떤 관점이 깔려있다. 그 정체를 논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병역거부자의 신념을 종교에 비유하여,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마치 세속재판이 아닌 종교재판처럼 임하고 있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이는 단순 편의상의 비유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근본적으로 특정 종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신념, 단순 보이콧 등 무엇에 의해서도 될 수 있어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또한, '현역 입영자들이 비양심적인 것인가?'라는 흔한 반발은 이하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는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를 *남들보다 양심적이어서 하는 병역거부*로 혼동해서 일어나는 단순오류이며, 헌재 결정요지문 본문에도 무려 맨 처음 단락에 이 내용이 설명되어있다. 이전에도 밝혔듯 양심적 병역거부의 반댓말은 *비양심적 병역이행*이 아닌 '양심적 병역이행' 정도로 보아야 한다. 물론 제도의 취지를 착각해서가 아니라 거부자들의 신념을 선민의식이라고 판단해서 위와 같이 반발할 수도 있으나, 그 경우에도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므로 해소 방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검찰이 사용하는 논리의 두 개 축 중 첫번째는 FPS 게임 하지 않았냐는 것으로 대표되는, 신념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증거의 발견이다. 병역거부에 대한 기본적인 여론도 좋지 않은데다 이런 경우는 '선택적 양심발휘'이라는 조롱섞인 비판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 논리는 직관에의 소구가 굉장히 강력하고 병역거부자 개인을 숭고하지 않은 존재로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신앙심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탄에 따른 소위 '나이롱 신자' 걸러내기에 해당한다. 인품과 생활양식에 대한 이러한 판단이 병역거부의 유무죄를 가르는 세속법정에서 핵심쟁점이 될 수는 없다. 거부자 개인 및 그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에서 내적으로 참회할 일일 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신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술 및 일관된 실천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이 품행과 생활에서의 미비는 매우 심각하고 광범위하지 않은 한 병역관련 신념의 진정성을 반증하기는 어려우므로, 후술하듯이 이에 대해선 비교적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다른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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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자를 대하는 논리의 두번째 축은, 그의 신념 자체가 내적 일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일관성을 따를 때 그 신념이 유효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평가하려는 태도이다. 최근 읽은 임재성 변호사님의 사례(검사가 피고인에게 군대의 필요성과 평화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논쟁하려 함. https://www.facebook.com/jaesung.lim.182/posts/4046959075330964)도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교리논쟁'으로, 비유하자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어떤 형태로 있는지를 다투겠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신학자들끼리의 논쟁 혹은 이단심문 같은 종교재판에서 할 일이지, 세속법정에서는 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만약 어떤 신념이 완전히 일관적인데 심지어 현실적으로도 유효하다면, 그런 성공적인 신념체계를 만들어낸 사람은 거의 성인으로 추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렇듯 내가 아는 한 모든 신념은 불완전하며, 철저하게 일관적으로 추구되었을 때 내부 모순이 드러나거나 유효성을 잃는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심문은 근본적으로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 그 양심이 마치 어떤 공표된 학술적 주장인 양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공권력이 논쟁에 개입하는 건 여전히 이상하긴 한데) 정합성과 유효성을 논쟁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개념 자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양심 자체는 공권력이 인정하거나 기각하는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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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현역 징집이라는 강제력에서 예외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이견을 가지고 논해 볼 수 있다(그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양심의 자유가 수호된다고 결론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론이 어떻든, 그 논의의 과정은 늘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신념은 행위의 일관성과 합리성 같은 것이 정황적으로, 보충적으로 작용해서 증명하는 것일 뿐 신념의 내용 자체를 둘러싼 논쟁을 핵심쟁점 삼아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근본적으로 신념이라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강한 의미로 입증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양심의 자유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처럼, 신념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자, 통과!' 해서 대체역으로 갈 수 있는 방식은 양심의 자유라는 가치와 결이 맞지 않다. 따라서 신념의 진정성에 있어서는 신념의 내용 그 자체를 두고 종교재판처럼 다투기보다는, 신념이 드러나는 지속적인 실천의 존재와 진술 등을 중심으로 보면서 비교적 포괄적으로 인정해야한다.

그 대신 대체역을 어떤 평화적 봉사 부문에 투입할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웬만큼 진정성 있는 신념이 아니면 대체역을 선택하지 않도록 유도하여 병역기피를 예방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단순 징벌적인 것이 아닌 엄연한 공익적 가치에 기여하는 대체복무로 인식되도록 제도운영 및 사회적 인식제고를 해야 한다. 교도소에 근무하도록 한 것도 그 고민의 산물일 것이다. 아무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인식이 변하고 그것이 병역거부 판결 및 대체역 제도운영에 반영되려면 사례도 축적되어야 하고,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교육과 연수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역이 아닌 현역징집병들의 처우 역시 대폭 개선되고 병역이행이 다변화되어야 한다.

한편, 한동안은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실질적으로는 특정종교 신자들일 것이다. 해당 종교는 병역뿐만 아니라 수혈거부와 같은, 동료 시민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교리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종교 신자들만이 현역징집의 합법적인 예외라는 인식(그리고 현실)이 생겨 버리면 이들은 공동체적인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 하레디 같은 집단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혔듯 병역거부는 해당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며, 실제로 외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례를 포함하여 가장 유명한 병역거부자들 중 일부가 이미 비종교적 거부자들이기도 하다.

해당 종교집단의 하레디화를 방지함과 동시에,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다양하면서도 통합된'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려면, 해당 종교 외에도 위와 같은 다양한 사유의 병역거부가 알려지고 활성화되어야 하며, 특정종교임을 전제해서 관행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도 일부러라도 보편적 용어로 바꾸어야 한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교적 잘 되어있으나 현장에서와 대중적 인식상으로는 아직 미비하다.

결론적으로 이처럼 대체역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서는 법조영역의 판례 축적 및 인식변화를 중심으로, 사회 각 부문에서의 총체적 노력이 함께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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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9일 금요일

육군훈련소 인터넷편지 축소개편 시도 유감

찾아보니 진짜네. 육군훈련소 인터넷편지가 140자의 응원메시지로 변경된다고 한다. (기존에는 1500자, 사진첨부 가능)


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유가 상당부분 제한된 채로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생길텐데, 그런 환경에서 인터넷편지는 사회와의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이고, 실제 훈련병들한테도 많은 힘이 된다고 한다. 무슨 전면전 상황이 아닌 한, 시간과 인쇄용지가 많이 쓰이고 업무량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바꿀 성격의 일은 아니다.

군 복무환경이 대체로 개선되는 와중에 이런 퇴행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다른 방식을 도입해서 해결하던가 해야 하는데 이런 건 전형적인 한국군대식 하향평준화 해결법이다. 애초에 수많은 사람을 징병하는 만큼 그에 걸맞게 이런 걸 원활히 지원가능한 여건을 갖추어 놓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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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각계의 비판 및 전용기 국회의원의 관심 등에 따라 해당 조치는 1-2주만 시행한 뒤 철회되었다고 함. 전용기 의원 Facebook 게시물 보기: 링크)

2020년 9월 12일 토요일

헬리콥터 사회를 질타하기 전에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

 이 글은 성장 중인 매체 매거진닷킴(https://www.magazine.kim)에 기고되었습니다. 실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꾸준한 성장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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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임에도 학부모 단톡방이 존재한다는 소리에 의대생들이 조롱을 받는 모양이다. 그런 반응들은 표면적으로 비웃음이지만, 그 네트워크가 효과적인 재생산의 도구로 기능할 거라는 데서 오는 묘한 씁쓸함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아예 다른 얘기긴 하지만, 비록 성인들이지만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보호해야 마땅한 집단도 필자의 생각엔 분명히 있다. 바로 군대에 가 있는 병사들이다.

군인이 겪는 여러 제한과 압박 중에 ▲군대의 특수성에 의해 요구되어 마땅한 부분과 ▲그렇지 않고 허용해줄 수 있음에도 안 해 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한국군 병사들이 겪는 것 중 후자에 해당하는 게 꽤 많다는 데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에야 해결된 핸드폰 소지다.

병사 개인이 그런 걸 구분해서 요구하기 어렵다. 사회 초년생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다는 것도 틀리진 않은데, 좀 더 근본적으로 상명하복 질서가 생활 전반에 매우 내밀하게 파고들어 있는 군대의 구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 한다.

군에 대한 민간감시 차원의 여러 공적 제도를 병사 개인이 직접 활용하기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러한 환경은 분명히 보완이 필요하다. 개인의 신뢰할 만한 대리자로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군대는 이들의 요청에 대해 지금보단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기밀 유지 때문이 아니라 자기 보신과 사건 은폐를 위해 병사 가족들한테까지 고압적 비협조로 일관하는 일이 그동안 많지 않았나.

물론 이게 생각대로 제대로 안 돌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건 사적인 것이며, 공적 보호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군대에 대해 병사 부모들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하게 되면, 대리인으로서의 부모들이 다 같이 합심해서 병사들의 권리 일반을 공적으로 챙겨주는 것보다는, 권력 가진 부모들, 싸울 줄 아는 부모들의 사적인 제 자식 챙기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러면 이게 요즘 비웃음 받는 의대 부모 단톡방과 대체 뭐가 다른가? 바로 당사자들이 기본권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제한받고 있으며, 그에 대해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해명하고 조정해야 할 군대라는 조직이 수십 년간 뻔뻔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술한 부작용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군대와 관련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저런 게 지금보단 활발히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적 토양에서 그런 부작용은 어느 정도 선에서 관리될 수 있어 보인다.

자녀의 학교 생활 및 입시에서는 물론이고, 직장 생활 등에까지 나서서 좌지우지하려 드는 '헬리콥터 부모'가 군대에서까지 사적인 부탁으로 악영향을 주는 것을 경계하는 의견도 물론 정당하다. 따라서 거창하게 말했지만, 필자가 얘기하는 건 사실 상식적이다: 사적으로 챙겨달라고 청탁하는 건 금지하되, 공적인 보호장치 및 민원창구는 확대해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의 구분이 모호한 게 난제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최근 이슈를 하나 더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현 법무부 장관이 당 대표 시절, 아들의 군대 휴가 미복귀 관련해서 챙기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에 대한 논란이다. 아들 서 모 씨의 휴가 미복귀가 원활히 처리된 것이, 위에서 언급한 '특수성에 의해 요구되면 안 되는 부분'에 해당하는지 '허용해 줄 수 있는 부분'에 해당하는지 필자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진실은 많은 카투사 병사들이 그런 사례는 자기 경험상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진술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사례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사안은 간단하다. 부당한 영향력 행사이다. '허용되지 말아야 할 일이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후자에 해당한다면 얘기가 좀 더 복잡해진다. 물론 부당한 영향력 행사인 건 변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일반인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데, 소수에게만 허용된' 것이 문제라는 점에서, 비판을 위해 필요한 단계가 위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지위에 의한 특권 행사의 방식으로 기회의 부족을 극복할 때, 그 개인 차원에서는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획득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남들이 따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그런 획득과정은 공적이지 못하기에, 사회적 불평등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기회의 보편적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그 특권 행사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 논의는 오히려 축소되므로 국민 전체의 권익은 도리어 침해된다. 특수한 루트를 통한 권리획득이 나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를 휩쓴 조국 교수 자녀 논란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인턴을 제대로 안 하고 1 저자로 실렸다는 것, 그리고 표창장을 허위로 발급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인턴을 할 기회 자체는, 많을수록 좋고 일반적일수록 좋다. 그런 공식적 루트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연락에 의해서 소수에게만 허용되는 기회가 존재했던 것은 분명히 문제적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어때야 할까? 그런 기회들을 없애는 것보다는, 그런 기회들이 실질적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확대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조국 사태가 그런 '수시스러운' 기회들의 보편적 확대가 아닌, 수시 축소와 정시확대라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이어진 것을 필자가 무척 반동적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군대 문제에서는 저런 것이 일상이다. 누군가가 어떤 과도한 제한사항을 특권적으로 극복하면, 사회는 그 제한사항 자체에 대해 재고하기보다는 특권 행사를 욕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은 사회의 당연한 속성이며 나는 이걸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제한사항 자체를 논할 창구가 점점 좁아지는데, 군대라는 조직은 이런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 극복의 여지를 아예 차단해 버리며, 그에 대응할 당사자들의 정치적 결집력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도, 자기 혼자만 빠져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그 특권적 개인을 욕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현역 군인들의 휴가 관리만 더 빡빡해지고 끝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군필자들이 많다. 병역과 관련해서 특혜 논란이 생겼을 때 이렇게 하향평준화식 대응으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일을 막으려면, 군대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한 담론이 상시적으로 있어야 한다. 여당의 몇몇 의원들이 이번 논란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되려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는데, 군대가 왜 이토록 민감한 문제가 되었는가를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이 특혜를 받았는지의 여부만 논의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현역판정률,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데 따른 불안감, 그리고 권익 침해가 만연한 군복무 환경 같은 것들도 공적인 논의의 주제가 되고 정치인들의 관심사가 되기를 바란다.

2020년 9월 11일 금요일

경험과 증언을 존중하기: 권익의 보편화를 향해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논란을 보면서, 나도 미필이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말 이해 안 가는 게 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옹호하는 과정에서, 대체 왜 자기가 겪은 군대가 모두와 같을 거라고 단정짓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본인이 권익 보장받았었다고 해서 남들도 똑같이 그랬겠는가? 군대라는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군병원에서 진료 안받고 민간병원에서 받겠다고 병사 마음대로 정할수 있는 것이나, 휴가 미복귀 상태에서 전화로 연장하는 것 자체가 (당연히 되어야할 일이지만) 본인은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신빙성도 꽤 있어 보인다. 아픈데 민간병원으로 안 보내 주고 군 병원에서 시간 지체하거나 진단을 제대로 못 해서 병 크게 키운 것을, 인터넷 썰이나 뉴스 기사 등을 통해 예전부터 아주 많이 보아 왔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설령 본인은 안 그랬더라도 '아 그런 어려움이 있구나... 경우에 따라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게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안 그랬고 얼마든지 편하게 외진 결정할 수 있었다면서, 저런 증언들을 거짓말 취급하는건 진짜 이해가 안 간다.
특권이나 빽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단정짓진 않겠다. 오히려 본인이 이리저리 알아보는 수완이 좋고 인간적으로 싹싹했거나, 간부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남들이 문제를 겪었다는 걸 저런식으로 무시하는건 참기 어렵다.

권익을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보장받은 경험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례들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위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이 논란의 결말은 권익의 보편적 보장이 아닌, 다같이 더 나빠지는 길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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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0일 목요일

전문연구요원, 학위취득 늦어지면 현역입대 처분?

(기사 링크: 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대체복무' 전문연구요원, 박사학위 취득 못하면 현역 입대")


 정책이라는 것은 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국민들의 법익이 보호되도록 짜여야 한다. 국방부의 이번 입법예고대로라면 최악의 경우까지 갈 것도 없이, 아주 일반적으로 예상가능한 경우에 대해서조차 보호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불합리를 조장하고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훼손할 위험성이 크다.

대학원에서 풀타임 학위과정을 제대로 밟고 연구를 잘 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료 후 5년을 넘기는 경우는 전혀 희귀하지 않다. 게다가 실적이 좋고 요건이 충족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지도교수가 졸업을 제 때 시켜주지 않는 경우 역시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학위취득 노력을 안 하고 대체복무 시간만 때우는 (실제 있기나 할지 의문인) 극단적 사례를 방지하려고,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떳떳한 케이스들을 잠재적 불이익으로 몰아넣는 조치는 합당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수료 후 5년이라는 기간을 인위적으로 정해두고, 해당 기간 내에 학위 취득 못할 시 현역입대 시키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알려면 기존 전문연 제도, 혹은 다른 대체복무 제도에서 무슨 잘못을 했을 때 편입취소 및 현역병 변경 처분이 이뤄지는지 살펴보면 된다(사실 산업기능요원 등 다른 대체복무제도의 편입취소 및 현역처분도 문제조항이 많긴 하다). 국방부의 이번 입법예고는 학위취득이 늦어지는 것을 심각한 수준의 '부정', '부실 복무', '복무의무 위반' 취급하는 부당한 징벌적 사고방식이자, 제도취지 및 현장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탁상공론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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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9일 수요일

강력한 민간감시와 보호만이 한국군을 정상화한다

 한국 군대는 사건 조작하고 은폐하기, 속임수로 내부고발자 회유해서 조지기 전문 집단인가? 김영수 소령님이 공유해 주신 아래의 글을 보니, 심지어 병사한테만 저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부당하게 수감되어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속이 탈까 싶다.

군대의 특수성과는 상관 없이 그 자체로 명백하게 불합리한 이런 일이 더는 없도록, 군대라는 집단은 민간의 보편적 상식에 발맞춰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심과 용기가 있는 훌륭한 군인들의 양성과 더불어, 그들이 권력과 책임을 가진 위치에 가서도 헛짓을 하지 못하고 순리대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감시 및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군이 사건사고에 막장으로 대응할수록, 민간으로부터 더욱 많은 시정요구를 받는 상식적인 구조가 자리잡는 것이 건강한 군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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