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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5일 일요일

MOF와 나노테크: 다학제 분야로서의 구획과 그 과학기술사회학

2025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주제인 MOF(금속-유기 골격체)에 대해 뒤늦게 조금 접할 기회가 있었다.

MOF는 1g 안에 축구장 몇개 넓이의 표면적이 있는 새로운 종류의 물질군이라고 한다. 프랙탈을 소개할 때 유명한 '해안선'의 예시에서 보듯이 표면적이라는 것도 측정하기 나름이지만, 아마 분자~고분자 크기 입자들이 얼마나 달라붙을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말하자면 유효 반응 단면적(?) 같은 것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닐까 싶다.

근본적으로 다학제적이며 그 경계도 조금 모호한 나노과학이라는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을 꼽자면 아마도 리처드 파인만의 "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 즉 "바닥에는 아직 충분한 공간이 있다"일 것이다.
내가 영어 native 화자가 아니어서 정확하진 않으나, 여기서 room이 말하는 바는 아마도 '공학적 엔지니어링을 할 여지와 기회의 크기'인 것 같다. 그런데 만약 room을 그게 아니라 literally 물리적 공간의 크기로 생각한다면,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와도 같은 MOF가 바로 위 격언에 매우 잘 어울리는 예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나노테크에 해당한다고 간주되는 여러 분야 및 대상들을 가장 넓게 묶어주는 특징은, 바로 전기적, 기계적, 재료적 성질 중에 둘 이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 아닐까 한다. 물론 이는 나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이라서 부정확하거나 예외가 있을수 있다.

내가 한때 관심 가졌던 과학기술학적 문제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것울 과연 '분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강령 하에 전개된 운동(movement)에 가깝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나노테크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명백히 movement에 가까워 보이는 사이버네틱스에 비해 나노테크는 훨씬 더 '분야'에 가까운 듯하지만, 파인만의 유명한 격언과 몇 가지 계산들에 의해 주목받고, 에릭 드렉슬러가 큰 그림을 제시한 저술 《창조의 엔진》이 대중적으로도 히트를 치고 관료들에게도 어필되면서 미국 과학정책에 의해 드라이브가 걸린 일련의 구체적 과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에서 실제 나노테크의 실현은 드렉슬러가 제시한 경로대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혹은 드렉슬러의 구상이 애초에 원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본 바 있다. 과학사적/과학사회학적으로도 살펴보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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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하버마스 향년 96세로 별세

위르겐 하버마스가 조금 전 향년 96세로 별세했다고 한다.

의사소통적 전회를 통해 이성을 한계짓고 규명함으로써 상호주관적 합리성을 정초하고 생활세계를 구원하고자 했던 그의 대안적 기획은 내가 접했던 사상 중 칸트의 비판철학과 함께 가장 감명깊은 이론 중에 하나였다. 요즘과 같이 현대정치의 위기징후가 뚜렷해지고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 필요한 시점일수록 하버마스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더 궁금해지고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래저래 큰 별이 졌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Freethinkers 동아리에서 하버마스에 대해 소개했던 세미나 발표 자료를 아래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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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9일 목요일

윤석열 1심 무기징역 선고에 대한 의견

윤석열에게 내란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데에는, 만일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윤석열, 김용현, 노상원 등이 과연 그 이후에 도대체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던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 같다.

특히 정보사령부가 '계엄 성공 이후'를 주로 담당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재판에서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어디까지 계획되어 있었는지가 인정되지 못했고 아마도 앞으로도 소상히 알려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점이 실제 형량 측면에서도,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측면에서도 아쉬운 듯하다. 게다가 납득하기 다소 어려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몇몇 판단들까지.


선고요지를 보면 비상계엄 선포 자체도 어느정도 유형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을뿐더러 군의 출입 통제, 국회 진입 등이 일어났고, 그 목적도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한다. 선고요지에서 수차례 언급하듯이, 밝혀지지 않은 전후맥락을 제외하고서라도 이 사건의 핵심인 "국회에 군을 보내서 상당 기간 그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라 전체의 평온을 해한 것이라고 인정되고, 여기에 범죄전력없음, 고령을 이유로 선처까지 해서 비로소 무기징역이라는 아주 무거운 형벌이 나온 것인데,

이를 달리 말하면 만약에 정치인을 체포해서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가 입증되었거나 (체포 시도 자체는 인정됨), 거리에 나온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더 밀어붙이려 했다는 것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이 되었더라면 (혹은 그래서는 안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성공했다가 나중에 끌어내려졌다면), 훨씬 넉넉히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나왔을 듯하다. 특검의 입증 역량 문제도 있을테지만 증거를 확보하기 근본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요컨대 다른 중대 정치사건과도 그 궤를 달리하는 수준의 중한 범죄인 내란에 대해서 사법부가 단호한 태도를 표명하겠다는 의지가 판결에서 상당부분 드러난 면은 있다고 본다. 장기독재를 기도하거나 정치인을 체포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를 일단 떠나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징역이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위 문장의 '떠나서'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아쉽다. 로마부터 시작되는 타국의 역사적 사례들까지 거창하게 검토한 것치고는, 그리고 헌정을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무력을 동원하여 헌정위기를 촉발했던 사태의 엄중함에 비해서는, 이번 판결에서 선고에 이르는 논리 구성이나 선고요지의 구체적 표현들이 12.3을 생생히 직접 겪은, 나아가 20세기 군사독재를 겪었던 현재의 우리에게 충분히 경종을 울리지 못하고, 다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기는 해서다. 이번 사건이 워낙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보니, 국회 군 투입이라는 그 장면만 똑 떼어 놓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의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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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9일 월요일

세계 해석의 도구로서 분절적 명제화를 때로는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분절적으로 의미화·명제화하고, 논리를 통해 그것들을 직조하여 이해를 획득한다. 이는 세계를 해석할 때의 인지적 부담을 낮추어주며 폭넓은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절적 이해를 관성적으로 적용한다면 사태의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에는 소홀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환원주의적(혹은 원자론적) 사고논리적 사고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간주하곤 하나, 논리라는 형식을 동원하는 방식에 따라 그 둘은 종종 정반대에 있게 되기도 한다. 사태의 부조리와 입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해 주는 것은, 후자보다는 주로 주로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고양이는 반드시 발로 착지하고, 식빵을 떨어뜨리면 반드시 잼을 바른 쪽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고양이의 등에 식빵을 묶어 두면 무한히 회전하는, 혹은 공중에 계속 떠 있는 영구동력장치를 만들 수 있다.

이 유명한 논증(?)은 척 보기에도 다소 황당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분절적 이해에 포섭되지 않는 것들을 다루다가 스트레스를 느끼고 분쟁을 겪는 상황들 중 꽤 많은 수가, 실은 고양이와 잼 바른 식빵 농담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2026년 2월 1일 일요일

AI의 무색무취함과 적당함, 그리고 지식정보망의 형해화 가능성

AI로 논문을 쓸 때 가짜 인용 문제가 자주 논란이 된다.

연구 단계에서 논문 추천 받을 때라면 몰라도,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는 단계에서는 내 연구와 관련이 되는 일부라도 직접 정확하게 읽고 cite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난 아무리 AI 시대를 재미있어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텍스트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매우 중요시하는 인간인 듯. 나아가서 앞으로는 자동화할 수 있는 읽기, 쓰기 및 계산도 '굳이 사람의 능력으로 해 보며' 인간의 그런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학자 집단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려나.

어쩌면 참고문헌이라는 것은 이젠 정말로 '참고가 된 문헌'이라기보다는, 내 논문이 지식정보망의 어디쯤에 어떠한 맥락으로 위치해 있다는 것을 느슨하게 표명하는 장치 정도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래도 참고문헌에는 그런 기능이 당연히 있고 또한 그런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scientometrics나 science of science에서 citation network를 통해 지식정보망과 지식의 발전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많이 하는 일이다.

근데 인간의 '쪼'가 들어가지 않고 느슨하게만 관련이 있는 '무색무취한', '적당한' 인용들이 AI 때문에 폭증하게 되면,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재구성된 지식정보망의 질조차 종국에는 많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양이나 속도 면에서는 AI가 압도적이니, 결국 인류가 쌓아온 방식은 뒤안길로 금세 밀려나서 불필요한 것이 되고, 그런 느슨하고 적당한 방식이 압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있다.

예컨대 분야 상으로는 내 연구와 크게 상관 없어 보이는 어떤 논문의 특정 부분에 큰 영감을 받아서 연구가 진행되었거나, 혹은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분야의 논문에서 내 생각과 비슷하고 formal한 연관성도 있는 아이디어를 이미 제시한 부분이 있었을 때, AI가 과연 그런 인용을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이례적인 경우들 외에도, 내 연구가 어느 지형 위에 놓여 있다고 표명하다 보면 '학맥'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형성되게 되는데 AI가 분야의 유사성, 연구대상 유사성만을 바탕으로 정보를 취합하다 보면 그런 패러다임적인 것들이 형해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논문 작성 단계가 아니라 논문 다 마무리하고 나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한다면 결국은 흉내가 아닐까? 독해력과 문제의식을 갖춘 사람이 봤을 때 그게 납득이 갈까? 이런 생각들이 든다.

물론 새로운 기술적 매체가 등장하면서 내용의 복제가 간편해지면 늘 거대한 양적 확대가 일어나고, AI 또한 의미론적인 영역으로까지 고도화된 복제 및 정보처리 장치라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적당하고 느슨한 인용이 더욱 발전하고 양적으로도 확대되면서 인간이 모르던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의 구조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이 직접 자신의 정신을 개입시켜서 작성하는 텍스트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나중에 나올 무언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지금 생각으로는 AI 특유의 '적당함', 그리고 인간의 안이함 때문에, 정보처리의 세밀함이 당분간은 계속 낮아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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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6일 화요일

예수와 크림의 관계: 발전하는 형식, 침잠하는 내용

단어들의 유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종종 찾아보는데, 그 중 특히 신기해서 예전에 포스팅 했던 내용이 있다. 영어에서 쓰는 접미사 -able은 라틴어 habilis로부터 유래되었는데,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고인류 '호모 하빌리스'의 이름에도 들어가는 이 말은 어원상 원래 '손'과 관련이 있는 말이라고 한다. 기초 어휘들이 형성될 시기에 살던 사람들이 '손'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능'과 연결지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블로그에서 해당 포스트 보기: 링크 ("영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는 재미: 어원에는 문명의 교류사가 압축되어 있다"))

'손'이라고 하는 구상적인 기원을 가진 단어가 이렇게 다른 단어 뒤에 붙어서 능력을 나타내는 다소 추상적인 역할을 맡게 된 것이 대단히 흥미롭다. 손을 권능과 연관지어 생각했던 옛 사람들의 관념이, '-able'을 말할 때마다 우리도 모르게 되살아나서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한국어에서 '~해 놓다', '~해 버리다' 등도, 구체적인 동작(놓기, 버리기)에서 유래된 동사가 본용언에 어떤 시공간적 상태나 뉘앙스를 더해주는 보조용언으로서 문법적 요소에 가깝게 자리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자의 제자원리에서는 기초적이고 구상적인 단위들로부터 복합적이고 추상적인 뜻을 가진 글자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매우 native하고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위에 서술한 일종의 문법화(grammaticalization) 예시들과는 다르지만, 최근에도 어떤 구상적인 의미가 의외의 말 속에 살아 움직이는 흥미로운 예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그 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호칭이다.

'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라는 호칭 뒤에 있는 Christ라는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 Messiah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인데, 이 메시아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액체 따위를 붓거나 바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구세주를 일컫는 말로 많이들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기름 부음 받은 자(anointed one)'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기름 부음'이 무슨 말인지 사실 잘 몰랐는데... 이는 말그대로 '기름을 부었다(pour oil)' 혹은 '발랐다'라는 뜻으로, 유대 문화권에서 선택 받은 자에게 치러지는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한다.

이를 번역한 Christ(그리스어로는 Christos)라는 단어도, 원래 그 자체로서는 성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르다', '문지르다'는 뜻의 Chriein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의 유래는 인도유럽조어(PIE) 'ghrei-'로 재구된다고 한다.

이걸 보고 나는 큰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면 현대 영어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뜻이나 사람 이름(Christopher 등) 등의 자명한 사례 말고, '바르다'는 뜻이 살아 있으면서 Christ와 같은 유래를 갖는 단어가 있을까? 찾아보니, 일상적으로 널리 쓰는 유명한 단어들 중에서는 딱 하나가 있는데 놀랍게도 그게 바로 'cream'이라고 한다.


이걸 알고 나니, cream이라는 아주 일상적인 단어와 Christ라는 아주 유명한 호칭을 말할 때마다 어떤 액체를 바른다는 아주 구상적인 의미, 그리고 그것을 신성한 것과 연관지었던 옛 사람들의 생각이 함께 되살아나서 움직이는 것 같아서 매우 재미있게 생각된다.

그러나 어원 지식이 없다면 영어 원어민들도 cream이라는 단어를 듣는다고 christ를 연상한다거나, 둘을 결부지어 cream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성유(성스러운 기름)를 뜻하는 'Chrism'이라는 단어는 그 발음이 Christ와도 cream과도 비슷하고 당연히 어원도 같으므로, 만약에 이러한 배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단어를 들을 때 Christ와 cream 모두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언어학 방법론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찾아보니 인도유럽조어는 가설로서 설정되고 재구된 것이지 직접 발견된 언어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cream과 christ가 어원이 같다는 것은 정설이라고 한다. 학술적 근거를 갖고 추적이 된 게 있겠지 싶다.
(기ghee 버터도 같은 어원을 가졌다는 것 같다. grime, grisly 등도 같은 어원이라는 설이 많다고 하는데 이들은 ghee나 cream만큼 확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massage, masquerade, mascara 등이 messiah와 같은 유래를 갖는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셋 다 뭔가 바른다는 뜻이니 그럴듯한데, 이것은 분명히 논거도 있고 인정받는 학설 중에 하나이지만 이설들도 있어서 cream과 christ의 관계처럼 완전히 정설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Christ라는 호칭 말고 Jesus라는 이름은 어떨까? 먼저, Jesus는 예수의 말하자면 '본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불렸을 것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구약성경은 존재했고 야훼라는 신은 믿어졌는데, 예수(혹은 근본적으로 같은 이름인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바로 '야훼께서 구원하노니(Yhwh Shua)'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서 신의 이름인 야훼에도 무언가 뜻이 있을까? 바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 혹은 '존재하게 하는 자' 정도의 뜻일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굳이 풀어 보자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께서 구원하신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격을 부여받은 것과 별개로 그냥 그 당시에 널리 쓰이던 이름이었기 때문에, 굳이 저렇게 문장으로 이어서 해석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헤수스, 여호수아, 존, 조셉, 조세핀, 요슈아 등 서구권의 정말 많은 이름에, 야훼의 이름이 깃들어(?) 있다고, 혹은 더 나아가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거나 다른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어떤 신적 권능에 대한 생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위의 cream-christ 연관성만큼이나 흥미로운 듯하다.


이런 것들이 바로, 문화라는 누적적이고 복잡하고 고유한 현상의 매우 fascinating한 점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의식하며 말하지 않겠지만, 언어생활의 배후에는 인류 문명이 여러 사건의 연쇄 그리고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조건지워진 바를 통해 우연적/필연적으로 축적해온 어떤 원형들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될 수 있는, 예전에 썼던 다른 글(hapseda blog 게시물: 링크 ("삶, 기록, 의미... 그리고 재조직화하는 흐름으로서의 인간"))의 몇 문단을 아래에 가져오면서 글의 마무리를 대신해본다. 아래 글에서는 형식의 발전에 주목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발전한 형식뿐 아니라 침잠해버린 내용의 흔적들도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을 한다.

"(전략)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만 '저장', 그리고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두 키워드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전개되게 된다. 인간의 정신은 정보를 단순히 쌓아둘 수도 있지만 정보를 예쁘고 유용하게 처리하고 가공해서 흘려보내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마저 재조직화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어떤 형식인데 이러한 처리 능력이 그저 인간의 기능적인 부분에 그치는 대신 유희적이고 감상적인 부분, 인격을 형성하는 부분에까지 심원하게 닿아 있고 (물론 내용을 단순히 저장하는 기능도 정보처리에 따른 side effect로서 개인과 세계에게 매우 중요하긴 할테다), 그로 인해 위와 같은 일이 생기는 듯하다.
심지어 '저장'이 아닌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이러한 인간 역량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와중에 문명 전체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어떤 기능일 수도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버려지더라도 그러한 내용들을 처리하고 재조직화하는 형식의 작동을 통해 그 형식 자체가 발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발전한 형식이 존재하는 한 그 모든 사라진 내용들, 혹은 발견되기 어렵게 가라앉아 있는 내용들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고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문명사적 차원에서도 유효한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예시지만 언어들의 초기 역사 중에서는 절대로 알수 없게 돼버린 것들도 많을텐데 그 과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후략)"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2025년 한 해 결산

2025년 한 해 결산

<학업>

* 출판
- 2024년 7월부터 진행한 연구 1편 출판 (능동물질)
: Communications Physics 8, 288 (2025)

- 2023년 6월부터 논문 2편 준비 중 (정보이론 및 열역학)

* 학회참석 및 발표
- 2025 04: 한국물리학회 봄학술대회 (대전) 포스터발표
- 2025 06: FT Workshop (양평) 초청발표

- 2025 07
> STATPHYS29 (이탈리아 피렌체) 포스터발표
> Bocconi Univ (이탈리아 밀라노) Satellite 참석
: Learning and Optimization in High Dimensions
> NORDITA (스웨덴 스톡홀름) 포스터발표
: Fluctuations in Self-interacting and Learning Processes
- 2025 08: 고등과학원 계산과학 및 인공지능 Lecture Series 참석
- 2025 08: 통계물리분과 23회 통계물리워크샵 구두발표
- 2025 10: EAJSSP 2025 (서울 고등과학원) 포스터발표
- 2025 10: 한국물리학회 가을학술대회 (광주) 구두발표
- 2025 11: 9th QIT (제주) 참석
- 기타 정기 NEST meeting (고등과학원) 및 월례회 (분과)

* 지원사업수혜
- 한국연구재단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 1년형
: 비평형계에서 확률적 정보 흐름의 정량화 및 그 활용

* 수업조교: 2025-2 열과 통계물리


<투자>

* 투자자산 (KRW기준)
- 전체 수익률(총 투자자산/총투입액): 67.6%
- 1년 시간가중수익률(TWR): 약 43%

* 총자산 (KRW기준)
- 증가율(1년): 30.1%
- 투자수익 기여분(전체): 24.9%


<기타 활동>

* 전공설계지원센터 다전공 수기 공모전 입선
수기제목: <적성을 재조정하는 다전공, 지식 베이스캠프로서의 다전공>
eBook 출판 (ISBN: 9791198174710)

* 딥러닝 동아리 Deepest Season 17, 18 활동
- 발표주제
S17: Diffusion Schrödinger Bridge
S18: Flat minima, replica theory and mode connectivity
- 프로젝트 진행
S17: Deep neural representation geometry
S18: Operation of representations in large models

* ARKO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그늘 속 알고리즘> 참여
- <비전이 공간이 될 때: 그 두번째 이야기> 세미나 발표
- 한동석 작가 개인전 Ghost Frame (선유도 Hall1)
협업연구 참여: <예측되는 가상: 영상 예측 자기회귀 실습>
도록 작성: <기계적 지각의 틈새를 걷기, 데이터의 환영을 목격하기>

* 공연 (미숫가루 비강흡입 @skiing_corncaine)
- 01/25 CLUB 001 (with 샌드페블즈, 가톨릭관동대 밴드부)
- 01/26 딥퍼플 (with Warped Savior, 사바하, 지렁이 마조히즘, Marine black noodle, 곱창)
- 02/09 CLUB A.O.R (with 지렁이 마조히즘)
- 08/10 CLUB VICTIM (with Dear Demon, Liberalia, 서울스핏)
- 08/17 그림라이브하우스 (with 발렌티즈, 곱창, 뱀파이어호텔, 지렁이 마조히즘)

* PT: 연초에 받다가 헬스장 옮겨서 연말에 다시 시작

* 언클린 보컬 레슨: 한두 달 정도 받았고, 내년부터는 지인이 하는 레슨팀으로 옮겨서 배울예정



<문화생활>

* 독서모임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양귀자)
-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로레인 대스턴)
-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 판타 레이 (민태기)
-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민태기)
- 서사의 위기(한병철)
- 북한 과학환상문학과 유토피아 (서동수)
- 채식주의자 (한강)


* 공연 관람

- 03/15 내귀에도청장치
- 03/22 Abysmal lord, Caveman cult 내한 (폐허, 세균전, 피컨데이션 게스트)
- 04/06 LuciDream
- 08/15 Walpurgisnacht (Starrywave, 렘넌츠, madmans esprit)
- 11/08 Vektor 내한 (디아블로, 두억시니, 메서드 게스트)
- 12/07 SNUGO 부천아트센터 공연 (베토벤 교향곡 9번)


* 프로레슬링 (PWS Korea)

- 11/29 PWS Korea 서울메인쇼
- 12/20 PWS Korea 서울메인쇼

* 영화

- 플로우
- 모노노케히메 (재개봉)
- 나우 유 씨 미 3
- 주토피아 2


<내년 모토>

: 졸업에 집중, 진로 탐색, 일상의 단순화, 생활비 절약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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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7일 수요일

단월드 사이비 세력의 뇌과학분야 침투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승헌의 사이비 세력인 단월드가 뇌과학 분야에 지속적으로 침투해 온 심각한 문제를 다룬 좋은 글을 오랜만에 보았다 (아래 하재영 연구원님 글). 최근에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환단고기가 논란이 되면서, 유사역사학과 뇌과학 양쪽에 발을 뻗고 있는 사이비단체 단월드에 대해 지적해주신 듯하다.



물론 '뇌과학' 자체는 단월드의 브랜드라기보다는 뇌에 대한 과학 연구를 일컫는 일반적인 용어이기는 하다 (설마 국내에서 이 단어의 정립 자체에도 단월드의 영향이 있었을까? 거기까진 아니라고 믿고 싶다). 공유한 글의 글쓴이께서 오랫동안 단월드 사이비 세력의 핵심컨텐츠 역할을 하는 "뇌교육"을 "뇌 과학"으로 단순히 잘못 표기한 것일지, 아니면 단월드 사이비 세력이 제도권 뇌 관련 학계까지 침투해서 오랫동안 오염시켜 온 정황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쓰신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단월드 사이비 세력이 실제 뇌 관련 학계에 침투한 정황은 매우 전방위적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것만 해도 다음과 같다.

(1) 이름도 거창한 '한국뇌과학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함 (참고로 제대로 된 국가차원의 뇌과학 연구소는 '한국뇌연구원'임)

(2) 실제 제도권의 뇌 관련 유명 원로 과학자들(신희섭 교수, 조장희 박사 등)에게도 접촉해서 같이 책을 쓰거나 행사를 개최함

(3) 내가 알기로 일단은 제대로 된 뇌과학 내용을 다루는 대회인 '한국 뇌 캠프'(구 한국 뇌과학 올림피아드)를 서울대, 고려대 등과 함께 주최/주관하기도 함

이처럼 단월드는 '뇌교육'이라는 자신들만의 컨텐츠 안에서만 노는 것을 넘어, 어느새 위 예시들처럼 실제 뇌과학계와 접점을 만들고 후원을 하는 식으로 그 경계를 흐리고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예전에 놀림받던, 눈 감고 색깔 맞히기 등 뇌교육 마술의 차원을 넘어선 지 한참 되었다. 뇌과학 학계에서는 이를 제때에 막지 못했고 오히려 꽤 많은 유명 원로들이 일회적이든 지속적이든 이들 세력과 협력하기도 했다. 슬픈 일이다.

일단 과학에 관심 있는 중고교생들이 참여하는 행사인 한국 뇌 캠프에서 단월드와 뇌교육을 반드시 퇴출시켜아 한다. 한국인지과학회 및 각 대학의 주최 측도 뇌교육 이름이 붙은 단월드 쪽 주관기관이 이상한 곳임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모종의 이유로 유지되고 있는 듯해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되기는 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이북5도위원회 논란: 방만한 운영과 영토주권 문제를 분리해서 다루어야 한다

이북5도위원회의 개편 혹은 기능 이관에는 동의하나, 이북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기구 자체의 폐지에는 반대한다. 실질에 형식을 맞추어야 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실질과 괴리가 있어 보이더라도 명목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도 있고, 헌법상 영토 규정, 통일 지향 규정 등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생각한다.

헌법상의 영토 규정에 근거를 두고 설치된 이북5도위원회와 같은 제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지의 여부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꾸준히 표명하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보여준다. 이는 향후 대북관계 및 외교상의 실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조직이 비대하고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방만하게 집행된다는 이유로 축소 및 기능 조정을 주장하는 것, 혹은 그런 이유로 폐지 내지는 통일부로의 기능 이관을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사실 나라살림연구소가 이번에 의제를 띄우기 전에는 이북5도위원회가 이렇게 본격적인(?) 조직인지까지는 몰랐고 그냥 도지사 정도만 임명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남북이 이미 사실상 두 정부 내지는 두 국가여서 이북5도위원회의 설치가 남북관계의 실질과 괴리가 있다는 이유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라면, 그런 이유의 섣부른 폐지론은 그 본의에 비해서 상당히 큰 시그널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재정적인 이유로 이북5도위원회를 개편한다면, 그것이 혹시 대한민국의 명목상 영토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변경하는 것으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관련 공직자들이 발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국제무대에 대한 엄중한 고려가 비교적 덜한 한국 정치인들의 돌출적인 발언에 한국인들은 그러려니 하는데도 정작 외신에서 주목해서 본의에 비해 크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토 주권에 대한 입장 자체를 실제로 변경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재정 효율성 문제를 넘어서 국가의 기틀(?)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전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생각보다 아주 큰 사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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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대통령 발언으로 공적 무대에 올라와 버린 유사역사학

하필 이재명 대통령이 "환빠" 질문을 한 상대방이 그 뉴라이트 행보에 논란이 있는 박지향 교수라서 논의가 꼬인 점이 있다. 야당 정치인들까지 이재명 비판에 가세하니 정부여당 측 지지자들은 진영논리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무리하게 옹호하고, 심지어 식민사관 타도와 민족사학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유사역사학 자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한 흐름까지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발언의 진의에 논란이 있으나, 일단 말 그대로 읽는다면 유사역사학을 주류 사학과 동등한 링 위에 올려 주는 발언인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에도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고 올리기도 하고 '식민사관'도 종종 언급하는 등 유사역사학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정말로 중립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경청하려고 물어본 것일 수도 있고, 그러면 조금은 더 낫지만, 사실 유사역사학과 역사학 사이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 자체가 유사역사학에 우호적인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그 근거로, 유사역사학에 친화적인 인터넷매체들은 이재명 대통령 발언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논평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굉장히 기대감 섞인 글들을 게재했다. 트래픽을 늘려 줄 것 같아서 클릭하지는 않고 검색창에서만 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 기대가 된다. 이제는 '환빠'라는 조롱의 언어가 아니라, 공정한 검증과 ..." (환단고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대통령 - 한문화타임즈)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 '환단고기'와 '환빠'라는 단어가 직접 거론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도 공식 ..." (사상 최초로 '환단고기'를 언급한 대통령, 역사 광복의 서막인가 - 한문화타임즈)
참으로 아찔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장차관, 고위공직자, 일반 시민 등이 함께하는 간담회를 자주 연출하는 편인데, 여태껏 그 상황들에서 대체로는 디테일한 상황 파악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행사들에서 종종 굳이 안해도 될 다소 가벼운 농담이나 튀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본인 스타일인 것 같지만 그것들 중 일부는 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최근 1-2주 사이에 그런 게 유독 크게 보도되어 이런저런 논쟁을 낳은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북한 억류자 처음 들어본다, 언어순화 등), 이번 일도 그 중 하나라고 보아야겠다.

이덕일 류의 유사역사학은 단순히 그들만의 장사를 넘어, 중앙 정계에 있는 정치인들과 그 지지세력에게 상당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기 위해 남용되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이라는 단어가 그들 주변에서는 이미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아 있을 정도이다. 주류 사학계에서 유사역사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래 노력해온 분들의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정치계에도 전달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이들의 영향은 중앙 정계뿐 아니라 미시적, 지역사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마음 아픈 형태로 일어난다. 소외 의식과 민족 의식을 자극해서 주류 사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하고, 이것이 실제 역사학적 작업을 왜곡하거나 좌초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전라도 천년사>, <김해시사> 출간을 둘러싼 사건들도 그 예시이다. 이는 조롱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주 세밀한 실천적 이성을 필요로 하는 논쟁인 것 같아서 꼭 팔로업하고 싶은데, 지난번에도 이에 대해 공부해 보겠다고 페북에 썼지만 아직은 문헌들만 찾아봐 둔 상태다.

이들뿐 아니라 맨 아래 공유한 글(기경량 교수님) 말미의 추천서적도, 누가 유사역사학 얘기를 하면 나도 몇 마디 얹을 수 있도록 한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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