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제 역시 마찬가지겠으나, 교육 문제만큼은 특히나 단편적인 뇌피셜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판단을 항상 유보해 왔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얘기를 어느 정도는 해 볼 수 있겠다.
다소 박정희스러운 사고일 수 있으나, 나는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유년기 동안 이질적인 환경에서 성장해온 전국의 학생들이 공교육을 통해 한 데 모여 최소한의 표준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그래서 교육의 획일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데에 동의함에도, 각종 진보적 대안교육도 무모하게 시도될 만한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예의 표준적인 체험을 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각종 역량을 향상시키기도 하고,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 내지는 교사를 대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종의 '정치적'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교육 현장에서의 표준적인 체험에는 교육 과정의 이수, 즉 학업적인 것뿐만 아니라 계량되기 어려운 사회적인 것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일련의 표준적인 체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수많은 관점에는 당연히 성인지적 관점도 중요하게 포함된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 성교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뿐더러 원리적으로도 광의의 성교육에 있어서 개별 가정을 전혀 신뢰할 수 없으므로 그 역할은 공교육에 위임되어야 하며, 공교육은 그 역할을 잘 해낼 책임을 갖는다.
교육 현장에서의 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세부적인 요소들이 성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경험,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러한 변화를 일궈내는 데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보는 경험은 학생들에게 전혀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변화에는 출석번호 체계를 바꾸는 것 같은 제도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공유한 양현고의 사례에서의 급식 불평등처럼 암묵적 관례로 되어 있는 것 등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자율 배식이었어서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댓글 등을 보니 성별에 따른 차등 배식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성별이 다른 학생들끼리 서로를 마치 다른 종족을 보듯이 대하지 않고 보다 세련된 방식의 관계맺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 등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보호 및 중재가 없는 교실은 사회라기보다는 정글이므로, 이러한 과정 전체에서 교사의 역할은 아주 아주 중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표준적 체험의 의의를 고려할 때, 공교육은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여 사적인 견해가 반영된 자의적인 교육을 하도록 하기보다는, 꾸준한 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양된 전문적 능력에 따른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교육 현장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 현재는 교사 개인 및 임의단체의 관심에 따른 각종 창의적인 시도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조명되면서 논란을 낳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겠으나 교육의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페미니즘의 논의들 중 광범위한 설득력을 갖춘 내용들이 교육학적 검증을 거쳐 교사용 연수 자료 등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흡수되도록 함으로써, 교사에 대한 꾸준한 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초등성평등연구회 등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각종 페미니즘적 시도들도 그러한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은 교사가 딱히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전문성에만 충실하다면 페미니즘의 긍정적 성과들이 반영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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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