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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유진박에 대한 생각

마미손의 신곡 <별의 노래>에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피처링을 한 것을 알고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놀라운 아이디어이고 멋진 콜라보레이션이어서 인상깊게 들었다. 특별히 우월한 입장에서, 혹은 특별히 비참한 입장에서가 아닌, 그냥 많이 울어 본 한 명의 사람으로서 건네는 말처럼 느껴지는 "괜찮아 울어"라는 가사는 마미손과 유진박의 대화 같기도 하고, 그들이 청자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하다.

유진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많은 감정이 든다. 이것의 이유로는 그가 선보여 온 음악이 주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의 재능과 성향, 그리고 겪어온 삶에 대하여 내가 머릿속에 만들어낸 어떤 인상이 강하게 작용함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그러한 감정들이 팬심의 동력이 되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것들 자체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유진박의 행복한 삶과 멋진 음악생활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유진박에 대한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을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 유진박은 대체로 자신에 대해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추측이지만 그가 좋지 않은 일을 여럿 겪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언어 문제를 위시하여 사람들이 그에게 느끼는 약간의 낯섦 탓에 그의 이러한 성격이 특정한 방향으로 규정되고 개념화됨으로써 부풀려져서 소비되는 점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겪었던 좋지 않은 일들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거의 방송들을 보면 낯설고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 내레이터에 의해 종종 언급되곤 한다. 사람이 망가졌지 않냐, 도움이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시청자를 설득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 점이 영 편하지만은 않다. 유진박은 사건사고를 많이 겪었고 그러한 시절이 마치 긴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타인 혹은 스스로에 의해 규정지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어찌되었든 매일매일 그의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것이다.

유명인에 대해 모든 종류의 답답함, 명쾌하지 않음을 견디지 못하고 특정한 개념을 동원하여 규정짓고야 마는 것이 대중의 속성이다. 그러나, 정서적 문제를 겪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의일지라도 캐물어 가며 너무 많이 알고자 하는 것이 도움이 별로 안 될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명인과 대중의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방식과 수준에서 의사소통을 지속해 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한다.

여하튼 유진박이 매체에 하는 말의 양에 비해 그에 대한 궁금증은 너무 많다보니, 그에 대한 기억과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많은 지레짐작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략 '잊을 만 하면 방송에 나오는 비운의 천재' 정도의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몇 년을 거치면서도 그의 음악세계는 엄연히 활발하게 살아 있으므로, 앞으로는 유진박 본인의 의사와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배려 있는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그러한 부분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 내가 제일 자주 듣는 유진박의 곡은 바이올린 연주만큼이나 보컬의 비중이 많은 "Do it in the dark"(링크)라는 곡이다. 애수가 느껴지면서도 솔직담백한 특유의 분위기가 일품이니 꼭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 이번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마미손의 인터뷰(링크)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의 맺음을 대신한다.

"저도 처음에 유진박 형님에 대한 인상이, 안타까운 일에 대한 솔직히 동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당연히 그런 맘이 들잖아요. 만나뵙기 직전까지도 제가 작업 제의를 하고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도 형님께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만나 뵙고 나서 그게 굉장히 내가 오만한 생각이었고 굉장히 건방진 동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TV나 이런 데에서 비친 것처럼 그 일 자체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맞잖아요? 거기에서 우리가 받는 어떤 감정만큼 형님께서는 불행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공연 어떻게 할까, 바이올린 녹음할 때 잘 했나 못 했나 이런 게 주된 고민과 걱정거리고 관심사고, 음악 안에서 너무 행복하세요, 형님은, 제가 만나서 느낀 바로는.

그래서 제가 처음에 가졌던 그런 감정들이 굉장히 얄팍했다고 느꼈던 거였고, 제가 작업 같이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대중들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우리가 이렇게 얄팍한 동정심으로 이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되겠구나, 오히려 음악 안에서 지금 행복해하고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더 행복해질 것 같아 보인다라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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