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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7일 금요일

정량적 사고를 모사하는 매체이론: 변증법적 유물론의 영향?

나는 학부 시절에 철학 쪽에 관해서는 정석적 계보에 따른 훈련을 받기보다는 마음 가는 순서대로,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다소간에 내가 이해하고 싶은 대로 (주로 미학과에서) 독서하고 수강하고 했었다. 그렇다 보니 진작 생각해 보았어야 하는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대중문화 비평의 맥락에서 매체이론을 처음에 접했을 때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정량적 사고를 모사하는' 특유의 느낌 때문이었다. 예컨대 기술매체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실재의 디지털한 재현인데, 사실은 현실세계 및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방법도 깊게 파고들다 보면 결국 디지털하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에 따라 매체에서의 비트의 밀도가 점점 높아져서, 마침내 기저현실 및 그 인식의 해상도에 준할 만큼, 혹은 그것을 넘을 만큼 과도하게 선명해지고 초실재를 형성하는... 이런 것들 말이다.

이렇게 비트의 밀도라는 양을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전개되는 논의를 통하면 상당히 심오한 얘기를 비교적 수량적(?)으로, 덜 심오해 보이게끔 전개하고 미래까지 외삽해서 예상해 볼 수 있다 보니, 이공계 백그라운드를 가진 입장에서 꽤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받아들일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에 철학을 다른 경로로 처음 접했다면 지금처럼 흥미를 갖진 못했을 수도 있다.


이보다 조금 더 전에 내가 철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던, 현대적 미술사론에서 택하는 내용과 형식의 대립 및 재현과 표현의 대립과 같은 서사에서도 이런 점이 없지는 않았는데, 매체이론에서만큼 적극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매체이론에서 상술하였듯 '정량적 사고를 모사하는' 특유의 느낌은, 정치사회적 문제의식이 문화비평이라는 목적에 희석되고 또한 포스트-담론 특유의 메타포적 언어에 숨어 들어가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사실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생산량, 그리고 자본의 축적 같은 것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단계단계 변화한다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양적 접근'이 매체이론에서 말하는 기술매체의 발전과 상당히 비슷해보여서 그렇다. 실제로 매체이론의 시초이자 대표 격으로 알려진 발터 벤야민도 마르크시즘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사회적 동기를 가지고 매체 (특히 영화와 같은, 당시로서 새로 나온 기술매체) 를 분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게 영화는 대중계급의 등장과 관련지어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런 변증법적 유물론의 유산이 실제로 현대의 매체미학에 남아있는지, 즉 내가 위에서 받은 막연한 느낌이 실제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부터 계승된 것이 맞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려면 벤야민을 다시 읽어보고, 보드리야르나 플루서 같은 포스트-로 분류되곤 하는 매체이론가들이 벤야민을 어떻게 인용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테다.

암튼 마르크스의 영향력의 크기가 사상가들 중에 역대급이라고 이야기되는 데에는 현실에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등장시켰었다는 점이 크겠지만,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의 틀을 제공했다는 이론적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장되곤 하는 '과학성'도 결국 유물론에서 비롯되는 과잉된 이해가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광의의 과학을 말하는 것이라기에는, 실제 자연과학을 많이 의식한 채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전개된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재밌게도 내가 종종 비판해 온, 과학을 참칭하는 극우주의의 기저에도 일종의 유물론 비슷한 관점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양쪽 모두 싫어할 법한(...),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게 좀더 미안해지는 이러한 비교가 꽤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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