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밝아야 할 권력 핵심부가 그 어디보다도 깜깜했던 지난 몇 년이었다. 다행히 몇 개의 집요한 불빛에 의해 그 이유가 일부나마 밝혀졌다. 비선권력이 개입된 비정상적 통치 구조라는 초유의 상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으로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국민적 신뢰를 전적으로 잃었다.
집권 정당성이 지극히 약한 상황에서 혹시나 탄핵이 기각되고 직무에 복귀한다면, 박 대통령은 국정 현안을 챙기기보다는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우선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비정상적 관제 여론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탄핵 인용을 염두에 두고 움직여 온 정치권은 전에 없는 혼란을 겪을 것이며, 정권의 자기보신을 위한 국정원, 청와대 등의 관제 여론 조성 공작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게다가, 232만 명의 국민이 무섭도록 조용한 시위를 진행한 것은 사실 그 안에 하나의 목표를 향한 거대한 총의가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대의제 민주주의 하의 정치인들이 그 국민적 요구를 제도적으로 달성하는 데 실패한 이상 그 잠재적인 총의가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정권의 억압적 태도를 극복하고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에만 모든 사회적 비용을 쏟아도 모자라게 될 것이다.
반대로,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관제 보수 단체들이 한동안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들을 단지 돈 받고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안일한 것이다. 신념을 가지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부 대형 보수 교회 신자들의 경우는 동원되면서도 동원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신념체계와 외적 요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어찌 그저 일방적인 동원이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단지 깜깜했던 박근혜 정권의 단말마가 아니며, 신흥 극우의 집결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20세기의 단말마가 지극히 21세기적인 트럼피즘과 융합하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흥 극우 세력의 탄생을 방지하려면 탄핵 반대 단체에 대한 배제와 멸시가 있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한 뒤에 그들의 상실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물론 국정원과 청와대의 관제 여론 형성을 무력화하여, 그들을 실질적 정치적 주체로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다시 관제 여론에 기만당할 수는 없다). 또한, 탄핵 인용 이후에 정치인들이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올바로 담아낼 수 있도록, 따라서 탄핵 회의론의 발생 및 극우 세력의 편승을 방지하도록 시민사회의 공론장이 명민하게 작동하면서 제도권 정치인들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역동적인 민주정치가 한 순간에 극단적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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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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