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평양의 변화와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을 조명하는 최근의 기사들과 달리 나는 평양이 여전히 일반적인 도시라기보다는 물화된 이념의 전시장으로서의 거대한 극장 내지는 놀이공원 같다는 인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아파트에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 사람들이 동원된 간부들이라는 기사, 그리고 도로의 양 사이드에서 손을 흔든 사람들이 권역별로 수십 명씩 동일한 옷을 입고 있는 사진 등을 볼 때 어느 정도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가 속한 사회도, 가상의 완전히 중립적인 제3자가 보면 그렇게 여겨질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서울도 그 형태가 강제적이지 않고 자기검열적일 뿐 무언가의 선전장일지도 모른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에 서울의 모습이 소개될 때는 권력에 의한 동원을 통해 그러한 전시장과 같은 면모가 인위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 대한 반성을 현재와 미래에 중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평양에 분명히 존재하는 강제적 통제는 구별하기 쉬우니 우선 논외로 하고, 나는 자기검열적 통제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도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검열적 통제의 상태에서도 사회는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에서) 혼란스러워 보이게 될 수 있으며 주민들이 기본적인 운신의 폭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많은 것을 누리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사실 한국도 이념적 동질성이 너무 강하고 '불온한' 언설들을 사회적으로 싫어라 하는 면이 있어서 완전히 후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평양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후자에 가깝다고 보아야겠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삶의 질이 높아지고 활기가 돌더라도 평양은 후자가 아닌 전자의 상태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이 평양을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자유화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체제가 극도로 잘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강제적/자기검열적 통제에 의해 자유를 연출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 아닐까?
만일 이러한 관점이 정당할지라도, 현재의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한국의 리더십은 평양의 자유로운 모습에 대해 일종의 외교적 제스처로서 어느 정도 호응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방향을 기본적으로 지지한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이 남북관계에 임함에 있어 평양에 대한 낭만적인 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의 연출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의 착취가 있었을 가능성을 언제나 분명하게 염두하고, 그러한 일이 실질적으로 덜 발생하도록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 시에 한국의 가족들이 북측 가족에 건넨 선물 중 상당수가 북한 당국에 '자발적으로' 신고되고 바쳐졌다고 한다. 명백한 착취이다. 반면 3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당국이 보내 온 2톤의 송이버섯을 한국 정부는 남측의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만약 북측의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도 나누어주도록 했다면 더욱 더 멋졌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기는 했으나, 이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고 선물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때문에 외교적 제스처의 측면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북한 당국과의 대조를 이루는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외교적으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유지하면서도 북한 당국의 주민 착취를 적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교묘한 방법을 찾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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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