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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사회적 존재로서의 과학기술

  2018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환경운동연합의 의견서에서 양이원영 처장이 핵융합에 대해 남긴 코멘트가 그 실소를 자아내는 내용으로 인해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당사자인 양이원영 처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응하면서 '핵융합 지지자'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일각에서 "과학기술은 지지/반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대응하곤 하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1) '된다 / 안 된다'의 문제를 미리 말할 수 없고 일단 해 봐야 아는 것일진대(그것도 그 특정한 구현방식에 대해서만), 그것에 대해 실제로 (2) '해 보자 / 하지 말자'의 여부를 정하는 것이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일 테다. 적어도 후자의 차원에서는 과학기술을 지지/반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은 아닐 수 있다. 양이원영 처장의 문제는, 가히 자연신론적이라 할 만한 비과학적 주장을 근거로 (1)의 차원에서 '안 된다'의 쪽을 부당하게 채택해 놓고, 그것을 근거로 (2)의 차원에서 '하지 말자'의 쪽을 채택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부당한 주장을 공문서에 수록하여 운동가로서의 공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내 페친이신 전명환 씨가 이전 글에서 댓글로 탁월하게 지적해 주셨듯(Facebook 게시글 링크), 과학 예산과 에너지 예산을 잘 구분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단계의 핵융합 연구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분명 과학에 속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에너지기술 관련 예산으로 책정이 되어 있다면 에너지기술 관련 예산인 것이다. 원래 권력이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개념을 뒤틀어서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 아니겠나. 머리 속의 개념을 원하는 대로 사회 속에 구현하려면 어찌되었든 권력이 필요하다.

  지극히 정당한 주장을 하는 이공학도들을 자신의 진영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적폐 취급하는 행동은 매우 적폐스러우나, 그러한 행동에 대응하는 입장에서도 과학기술은 진공 속에 놓여 있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것임을 늘 염두하여야 할 것 같다. 양이원영 처장은 이러한 측면을 무척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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