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야먀모토 요시타카)을 읽고
과학기술학 스터디에서 읽고 있는 재미있는 책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야마모토 요시타카)에서는 일본이 1800년대 중후반에 걸쳐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인식하고 발달시킨 특유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개국의 타이밍'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다. 비단 과학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다소 막연하지만 과학기술과 결부된 일본 특유의 문화적 이미지에도 그런 요소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이 근대화를 도모하던 1800년대 중후반은 서구에서 뉴턴역학에 이어 전자기학과 열역학이 정립된 시점으로, 물리학이 형이상학과 신학으로부터 완연하게 독립되어 그 자체로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하도록 정립되었던 시기이다. 또한 내용적으로 보면 양자물리 등의 현대물리학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던 시점이고, 물리학이 완성되었으며 더 이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고전물리학 이론을 외부 세계에 적용하는 '지구물리학' 등의 연구, 그리고 물리학자들이 주도하는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등이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놓여 있던 서구 과학기술을 수용한 일본은, 재래의 공업과는 달리(그리고 지적 유희에 가까웠던 초기의 서구 과학과도 달리) 수학적으로 정식화된 과학 이론이 교육되어 직접적으로 기술적 산물들로 연결되는 일련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궁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교양 물리학이 유행하였는데, 궁리학 저서들에서도 물리학은 그 자체의 이론적 흥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자연스레 기술적 응용, 국가 부강과 결부지어 소개되었다(그 대표적인 예가 증기기관과 철도에 대한 엄청난 경외감이다). 근대적 인프라들의 탄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면서, 그 자체의 이론적 완성도도 매우 높아진 상태의 고전물리학을 수용함으로써, 자연을 이해함으로써 조작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정복적이고 낙관적인(따라서 상당히 제국주의적인) 경향을 일본은 가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일본의 개국이 서구에서 현대물리학이 등장한 이후에 일어났다면 일본의 과학기술 수용 양상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는 저자의 상상도 흥미롭다. 이러한 상상은 21세기에 유행하고 있는 (주로 미국식의) 교양 물리학 서적이 대체로 현대물리를 선호하며, 우주의 넓음과 양자세계의 불확정성 등에 대해 지극히 '자기수양'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소비하곤 하는 것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현대 교양과학 서적의 이러한 '자기수양' 경향은 일본 근대화 시기 궁리학의 '자연 정복' 경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며, 과학의 내용적 특성이 사회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산출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질문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21세기 교양과학 서적의 자기수양 경향은 해당 주제에 깊게 매료된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정신적인, 영적인 부분을 커버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면 1800년대 후반의 탈형이상학적인 과학기술에 매료된 일본인들에게 그러한 영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일본은 중앙집권화를 꾀하면서 상당히 종교적인 색채를 갖는 천황제로 회귀함과 동시에, 그러한 체제를 근대국가화, 현대문명화에 복무시키는 특이한 형태를 정립했다. 그 과정에서 종교적인 색채와 결합한 국가주의가 근대적 일본인의 정신에서 영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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