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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9일 금요일

유보로 위장한 확신: 집단적 2차 가해를 중단해야 한다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이라는 단어는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학생사회나 원외 진보단체 등의 '공동체적 해결'의 과정에서 자주 사용되던 단어이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는데 박 전 시장 사건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사실은 문제가 완벽히 적절하게 다뤄질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라면야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이라는 잠정적인 명칭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건도 그렇게 이상적이지 못하고, 박 전 서울시장 사건은 특히 더 심했으므로,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사용되었을 때 딱히 문제가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걸 당시 사건과 관련해서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현실에선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권침해 사건을 다룰 때는 그러한 침해가 일어났다는 잠정적 사실에 주목하여 사건성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 단어들을 사용한다면 마치 '호소'와 '지목' 자체가 사건성의 핵심을 이루는 것처럼 은연중에 오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마치 호소와 지목이 안 이뤄졌다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건 그래도 그 개념들(이상적으로 활용되었을 때)에 실제로 그런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고, 어휘가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마치 비직관적인 번역이라고 늘 비판을 받는 '여성혐오'처럼 말이다. 여성혐오는 그런 '의도적 오해(?)'에 대항해서 오히려 더 적극 사용하고 개념의 원의를 알리는 방향으로 돌파를 했고 이제는 조롱하는 쪽에서도 의외로 원의에 꽤 가깝게 쓴다.

그래서 그런 악용과 오해의 가능성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피해호소인이 이렇게 악용되는 걸 보니 개념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어휘 자체에서 오는 악용 가능성이 무척 중요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널리 쓰이다 보면 개념은 옅어지고 그 이름만이 남게 되며, 그 이름이 주는 직관에 따라 활용이 이뤄지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본 바로는 학생사회는 그 누구라도 가해자와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폭력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을 중요시해 왔다. 말하자면 구성원에 대한 신뢰의 유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해 가능성을 가진 그 단어가 피해자성을 지우는 데에 적어도 대놓고 악용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모순적인 신뢰가 어느 정도 깔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성원 일반에 대한 신뢰일 수도, 혹은 현재 권한을 쥐고 있는 기구의 능력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만 해도 그러한 모순적인 신뢰가 있어야 정당화되는 것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인데, (여담이지만 실제 법정에서의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것도, 공권력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적용이 되는 것이지,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될 때에는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약간은 있다고 본다) 불특정 다수에게서 설왕설래가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단어가 적확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다.

박 전 시장 사건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문제가 많이 된 건, 여당에서 피해자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식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단어를 소개하는 양상으로 액션이 나왔고, 지지자들도 피해자성을 지우려는 방향으로 (정확히 위에 말한 그런 방식으로) 해당 단어를 악용하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다들 기존에 알고 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면 문제가 되었겠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소개가 되었고, 여기서 지지자들이 일반적인 지칭과 달리 '굳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은 명백히 악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사건을 처리할 때 원칙적으로 필요한 피해사실 인정의 '잠정성'을 소극적으로만 깔고 가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그 잠정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방향으로, 또한 성폭력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호소'와 '지목'을 사건화하는 방향으로 해당 단어를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인권위 등에 의해 사실관계가 많이 인정된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직 개념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그 당시에도 이미 100% 적절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여러가지 비난과 2차가해의 풍랑을 마주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므로 정당 입장에서는 이를 막았어야 하는데, 해당 단어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거기서 피해사실의 원론적인 잠정성을 과도하게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한 2차피해가 집단적으로 생산되었다.

법원 및 인권위에서 여러가지 사실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인정된 지금에서도 여전히 피해자는 피해자라고 불리지 못하고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으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상징하게 되어버렸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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