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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요일

22대 총선 단상: 정권 견제는 다행이나 미래정책 실종이 아쉽다

어제는 22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며 종합선거상황실(?)을 차려놓고 출구조사를 본 뒤에, 할 일을 하다가 새벽쯤 주요 격전지만 좀 다시 들여다 봤다.

자취방에 차려진 종합선거상황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전국구 선거 등의 행사가 있을 때면
BBQ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시청하곤 한다. 

다음날의 해가 뜬 지금 정리되어 가는 결과를 보니, 더불어민주당(161), 더불어민주연합(14, 시민 및 진보 포함), 조국혁신당(12)을 합쳐서 범민주계열은 187석 정도를 가져갈 모양이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야권 연대에 의미가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개혁신당 등도 야권으로 친다면 190석 초반 정도까지도 볼 수 있다.

총선 전날에 나는 더민주+더민연+조혁 합쳐서 185석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운좋게 실제 결과와 상당히 근접했던 내 의석수 예측.

다만 이것을 지역구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예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200석 이상까지 조심스레 점치던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수도권과 PK의 격전지들에 대해서 너무 낙관하는 것 같고,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너무 낮게 잡는 것 같아서, 분위기 봐서 이를 적당히 낮추어 불렀더니 대충 비슷하게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잇따른 외교 실수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국내 대응, 이태원 참사, 수능 킬러문제 논란, 재정건전성으로 얼토당토않게 위장된 심각한 세수부족, 과학기술 R&D 예산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사업 졸속 삭감, 역사관 논쟁,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임명, 방송장악, 무대책 졸속 의대 증원 등을 비롯한 수많은 논란거리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졸속 조치들로 오히려 일을 계속 키우는 괴상한 대응의 방식을 매우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태도 때문이며, 선거결과의 이러한 면 자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결과가 전혀 기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마지막쯤에 쓰겠다.


먼저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의 각종 조사결과들과, 개헌저지선 확보를 향한 국민의힘의 간절한 호소, 그리고 출구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야권우세(200석 이상)를 감안하면 범민주 계열이 약간은 김새는 면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 자체만으로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후술하겠지만 좀 다른 국면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출구조사는 출구조사일 뿐이니 그것보다 적게 나와서 아쉬운 것에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도권 격전지와 PK를 국민의힘이 안정적으로 지켰다. 정치 구도 자체에 균열과 충격이 생길 정도의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보수언론이 선방이라고 평가해 주면서 정부여당을 보호하는 논리를 펼칠 구석이 은근히 좀 있다. 이런 흐름에 따르면 대통령실 대대적 개편과, 비윤 중진들 다수 당선에 따른 정부여당의 관계 재정립은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대통령실이 지금까지와 다른 겸허한 태도, 경청하는 태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민주세력 입장에서도 이번 결과는 기존 구도에 비해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의석은 많지만 이걸로 어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돈 시점 이후 (특히 최후반) 에 민주당이 180석을 가지고 진행하던 여러 입법들 중에서도 국민생활문제에 밀착된 것과 나라의 미래에 관련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집중해서 밀어붙였던 권력기관 개혁 관련 입법에서는 국정 동력을 과도하게 소모해버리며 확실한 결실 없이 정권이 끝나는 모습을 봤지 않는가. 게다가 어쨌든간에 압승은 압승이기 때문에, 현재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쇄신의 계기도 딱히 마련되지 않고 계속 곪아 갈 것이다.


의석 수와 별개로 구체적인 판세를 통해 민심을 짚어 볼 수도 있다. 일단 민주당이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긍정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끌고 간 선거가 아니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 정서, 그리고 역으로 이재명, 조국에 대한 심판(?) 정서만이 선거에서 부각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먼저 수도권 격전 예상지역들에서 민주당이 대부분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구들 중에 원래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들에서도 생각보다 접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는 점은 민주당이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에서의 패배, 송파병, 영등포을, 강동갑 등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유를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지역특색의 변화가 있었기로소니, 각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역량에 대한 반성도 반드시 필요한것이다.

또한 PK 격전지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곳들 중에서도 단 한 곳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21대 총선보다 더 안 좋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즉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원래 민주당을 안 뽑던 사람들까지 민주당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의석을 넘는 이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밀리면 안 될 곳들에서도 상당부분 따라잡히거나 밀려난 것이다.

즉 의석 수에 비해서 선거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당에게 생각보다 좋지가 않다. 이런 걸 감안하면 자칫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지부진한 선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국혁신당이 등장해서 선거판에 활기를 확 돌게 만들면서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오히려 민주당세까지 같이 견인해 준 면이 있다.


결국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겸허한 태도로 돌아설 계기가 없고, 민주당 입장에서도 당내 쇄신의 계기 및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개혁적 국회운영의 동력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각종 민주당 취향의 입법과 그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민주당의 특검 시도, 정부의 언론장악 등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답한 정국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실이 주요 사건사고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정말 단 한 차례도 못 본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은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통령 본인의 태도 변화를 통해 꼭 좀 바뀌었으면 한다. 걱정에 비해 선방한 부분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참패했다는 큰 결과를 바탕으로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신당의 이준석은 좋으나 싫으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당 당대표 자리에서 노골적인 대통령실의 의중으로 완전히 쫓겨났는데도, 애매한 태도 없이 얄미울 정도의 선명한 반윤석열 스탠스를 보여주며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와서 마침내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밀리는 결과가 나오다가 개표에서 드라마틱하게 당선되는 서사가 생기면서 보도도 많이 되고 국민들의 인상에 남았기 때문에, 의석 수에 비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향후 주요 선거에서도 일정 정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약자 계층에 대한 혐오, 차별 정서에 의존해서 정치적 기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해 온 면이 크다 보니 개인적으론 퍽 우려가 된다.


조국혁신당은 대정부 강경노선과 함께 조국 후보의 대표 컨텐츠인 '사회권 선진국'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선명한 진보개혁적 색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 자체는 좋지만 대기업 임금 제한 등 괴상한 정책으로 지지자들에게마저 의문을 사고 비판을 받는 등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주요 정당치고는 역대 한국정치에 없었던 수준의 서울 강남 엘리트 편중도 큰 한계점이다.

창당 초기 목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당선이 된 얼떨떨한 상황이고,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진보개혁적 의제와 정권심판이라는 커다란 사안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실질적인 실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이준석과 함께 정권이 불편해할 만한 구도를 연출하면서 일정 정도 의석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므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정부여당은 입시비리 범죄혐의자라는 낙인을 가진 조국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3년 전은 물론이고 반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왜 나왔는가 한번 겸허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녹색정의당은 오랜 기간 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오면서 인지도는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서 결국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이 결과를 현실적으로 본다면, 좋으나 싫으나 민주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단독으로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킬 능력까지는 없었고, 정의당의 주요 후보가 있되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야만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지역구도 크게 없다 보니, 단일화의 동기도 양쪽 모두 크게 없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결국 소수정당에 좋은 쪽으로 작용을 하지 못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심리적 거리가 8년 전에 비해 매우 멀어졌고, 반쪽짜리 비례대표제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당보다도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민주당이 당분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정의당이 상징해 온 진보적 가치들이 의회정치에서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면서 이슈파이팅이 되면 좋은데 참 답답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번 선거를 보며 전혀 기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안 되었던 이유를 얘기해보자. 그 이유는 중단기적으로 여의도 정치 구도가 큰 변화 없이 계속될 것 같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 위의 모든 논의를 뒤로하고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책 실종 선거, 그중에서도 청년 실종 선거였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주요 동력이 되었고 정책 공약, 심지어 정치이념의 이슈마저 이에 묻혀 버린 느낌이 있다.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어차피 누가 되든 똑같어~' 라는 클리셰 같은 정치혐오적 언설은,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야 아주 큰 틀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와 불가역적인 기후변화를 비롯한 세계 체제의 총체적 위기에 더해서, 선진국이라면 으레 접어들게 되는 저성장이라는 국면, 그리고 극단적 저출생과 서울집중이라는 거대한 망국병까지 앓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외교안보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의 체질을 어떻게 개혁할지를 결정해서 최대한 파국 없이 연착륙을 하려면 효과적인 정책을 통해서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느 세력이 집권해서 4~5년간 어떤 정책을 집행하느냐가 그야말로 나라의 미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결국 미래세대를 타겟으로 한 정책들이 적시에,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 때문에 청년 세대에 대한 정치적 주목도는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망국병의 직접적인 여파가 목도되기 전에 나라의 체질을 개혁하는 선제적인 대응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확실한 근거는 없는 느낌이지만, 딱 우리 세대쯤이 그 여파를 방파제 없이 정면으로 맞고, 그 이후 세대쯤부터 부랴부랴 대책이 마련될 것 같다는 (그리고 그때쯤이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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