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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9일 일요일

기본값의 왜곡, 헌법재판의 개념, 가벼움이라는 착각

결국 원조 내란수괴인 전두환 일가까지 등판해서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윤석열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무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퇴행적, 미래적(?) 극단주의 모두를 적극적으로 띄워 줘 버린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전국민의 관심이 쏠린 최고로 권위 있는 채널에서 공식 발언으로 부적절한 인식이 나가게 되면, 우리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합의의 선 자체를 확 낮춰 버린다. 그러면 음지에서나 머물러야 할 온갖 극단주의적 주장,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하는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함께 수면 위로 떠올라서 제도권에 안착하게 된다.

이건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도, 윤석열 정부 내내 역사관을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문제들 관련해서 계속 그래 왔다. 그래서 5.18 부정론을 비롯해서 역사관 관련한 온갖 이상한 주장들이 기세등등해져서 함께 튀어나와서 정상을 참칭하게 된다. 이것이 제때 비판되지 못하고 장기화되면 말 그대로 정상, 흔히 말하는 뉴 노멀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비상 계엄선포 및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및 그 대리인단이 온갖 짓을 다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나는 이를 기본값 조정에 의한 인지 왜곡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치 관련한 기계적 중립 및 양비론으로의 압력이 심한 편인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되면 정치 중도층과 무관심층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어느새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반대로 문제가 아닌 걸 문제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지도자가 뻔뻔할 대로 뻔뻔해지면 이렇게나 악영향이 크다. 정치권력의 책임성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2020년대의 세계를 보면 헌정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합의를 부정하는 극우의 정치세력화가 어느정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통령 본인이 이에 진심으로 심취해서 찬동해 버리는 바람에 그 속도와 규모가 대단히 가속화되어, 순식간에 세계 어느 제대로 된 민주국가보다도 심각하게 제도권에 올라가 버렸다.

거기에다가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국가행정조직 중에서도 굉장히 특수한, 군경이라는 국가폭력의 유일한 합법적 담지자를 위헌적, 불법적으로 동원해서 국민들 앞에 대치까지 시키면서, 폭력적인 헌정 부정세력들을 기세등등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번에 새로 발표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떨어졌던데, 내란 옹호의 세력의 주류화를 조기에 떨쳐내는 데 실패한다면 이는 일시적인 일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는 40년 전의 원조 내란수괴도 뻔뻔하게 다시 기어나와서 저러고 있으며, 지난 몇 주 동안 보았듯이 거대 여당 중진들도 광장정치에 고무된 나머지 옹호해서는 안 될 것까지 옹호하고, 찬동해서는 안 될 것까지 찬동해 버리고 있다. 이게 우리나라의 정치에 아주 안 좋은 여파를 장기간에 걸쳐서 남길 것이다.

전재국 씨가 시공사 돈 떨어져서 나오는 거다... 이런식으로 가볍게 치부할 게 아니다. 극우 기독교 광장정치도 돈으로 동원하는 거니까 무시하면 된다고 가볍게 치부하다가 순식간에 이렇게 와버렸지 않은가 (물론 MB랑 박근혜 때 국정원과 청와대가 진짜로 우파 단체에 나랏돈 줘 가면서 집회 동원하고 했던 것은 그것대로 또 추적하고 기억하고 비판해야 함). 마르코스가 기어이 재집권해 버린 사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 상태에서 정말 혹시나 탄핵이 기각되기라도 하면, 헌정체제 파괴를 획책한 내란이 광장정치의 힘까지 더해져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고, 정말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한다. 이미 적당한 정치적 화해로 끝날 수가 없게 갈 데까지 가버린, 야당과 일부 헌법기관을 돌이킬 수 없게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버린 인물이 윤석열이다. 헌법재판소도 외부로부터의 여러 정신적, 물리적 압박이나 정치여건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헌법 위반사항을 공정하게 따져서 탄핵심판 선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판결을 하는 기관이라는 언설도 꽤 많이 보이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에도 동의가 안 된다. 쟁점이 갈릴 만한 통상의 위헌법률심판 등에서는 헌법에서 근거를 찾되 재판관들의 개인 성향, 국민 여론, 사회상규 등이 반영될 수 있고 여기에 정치성이 개입될 수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말그대로 헌법의 규범력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판정을 내리는 기관이지, 그 외의 다른 개념규정은 부차적이거나 아예 불필요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의 경우 헌법 위반사유가 명확하고 피청구인의 헌법 수호의지가 부재한데다, 위반 사항이 단순히 문언 상의 디테일에 대한 절차적인 부분도 아니고, 헌법정신 그 자체를 정면으로 파괴하려 했던 상황이다. 이럴 때에는 정치나 여론이 아니고 오직 헌법에서 근거를 찾으면 '정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오히려 그 정답이 아닌 외부 여건에 좌고우면해서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판결일테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체제 파괴를 선동하고 있는 내란범(형사 판결 안 나왔는데 내란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지적은 받지 않겠다)을 다루는데 있어서 절대로 안이해서는 안 된다. 속 편한 소리들 좀 그만 보고 싶다.

워낙 요즘이 해체주의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인 만큼, 이게 '옛날의 그' 진짜 계엄령, 진짜 내란, 진짜 군사쿠데타와는 다른, 뭔가 가벼운 것이라고 사람들이 계속 착각하는 경향도 있다. 나는 심지어 윤석열 본인도 어느 정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계엄이 (너무 다행히도) 일찍 해제된 덕분에 사람들이 더 그렇게 느끼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한국에서 국민들의 기본권이 순식간에 제한되고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순간이었고, 국민들과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이 그날 밤 용기있게 막아냈다.

그리고 광장에서 내란을 옹호하는 전광훈, 손현보, 전한길이나 그에 영합하는 여당 중진 의원들도, 속으로 계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돈이나 정치 여건 때문에 잠깐 그런다는 식으로 평가절하(?)를 당하곤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심각한 사안 앞에서, 아무리 잠깐의 정치 여건 때문에 파면 전까지만 그런다고 해도, 그 악행의 무게는 그 행위 하나하나로 조목조목 정확하게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계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쉽고 당연한 일이지만, 여당의 분위기 자체가 위처럼 박살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그런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윤석열과 명확히 선긋기를 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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