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2024)를 보러 강남역 CGV에 갔다.
귀여운 까만 고양이와, 내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우아한 조류인 뱀잡이수리가 등장한다고 해서 기대하면서 봤다. 대사가 없는 영화인데, 하필 전날 세네 시간밖에 못 자는 바람에 틀림없이 보다가 졸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사가 아예 없는데도 꽤나 박진감 있어서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냉혹하고 강대한 자연의 현실적인 느낌과, 뭐라 설명하기 힘든 환상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두 가지 느낌 모두 이 영화에 아주 조리있는 줄거리나, 배경이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터전을 제공하지만 이유없는 파괴를 일으키기도 하는, 소중하고도 두려운 존재이다. 설령 인간의 직간접적 개입을 비롯한 어떤 메커니즘이 제시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자연화된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바로 내게 그런 일이 그런 순서와 규모로 일어나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는 없다.
이처럼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들 또한, 어떠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농도짙게 디자인되었다기보다는 실제 자연이 행동하는 방식처럼 다소 두서없이 일어난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배경과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만, 그 규모가 장대하게 표현이 되어서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의도를 견주어 보며 상황에 따라 협력하고, 그렇지만 때로는 미련없이 헤어지거나 냉정하게 공격하기도 하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는 동물들 특유의 관계맺음 방식도 무척 인상깊었다. 대사가 없어서 이런 점이 더욱 잘 표현된 것 같다. 유튜브에 뜨는 동물 영상들이나, 대사가 전혀 없는 일부 실험적인 공연예술에서도 짧지만 이러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이 영화에 기묘한 포근함을 부여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너무 피곤하게 서로 지지고 볶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담백한 관계가 좋아 보이기는 하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또한 인간으로서의 해석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점들과 어울리게도,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동물들의 행동 역시, 어떤 상징성을 아주 농도짙게 가져가거나 고정된 메시지를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신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사건들에 대응하면서 뭉치고 흩어지는 귀여운 동물들의 모험을 보며, 삶과 존재에 대해 각자 열린 생각을 가지고 서로 나눌 뿐이다.
아트워크도 무척 아름답고 분위기도 몰입감 있어서 하루가 넘게 지났는데도 인상에 퍽 오래 남는다. 주변에 많이 추천해서 함께 소감을 나누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