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자율독서모임에 가져가서 읽은 책은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로, 20년쯤 전에 <피로사회>로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책을 작년에 훈련소에 갔을 때 진중문고 서가에서 처음 보고는 한병철의 이름과 <서사의 위기>라는 제목만 보고 기억을 해 두었다가, 이번에 다시 눈에 띄길래 구입했다. 많은 철학사상들이 인용되어서 다소 어렵긴 하지만, 어떤 의도로 그러한 철학들을 인용하는지 잘 설명해 주는데다 책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다.
합세다
:합리성, 세속주의, 다양성.
게시물 목록
2025년 6월 16일 월요일
『서사의 위기』(한병철) 서평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독서모임 소개 및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 서평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질문지]
오늘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질문 간단하게 작성해 보았어요. *이 질문지가 필수는 아니기 때문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1.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제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이나 생각은?
2. 주인공(들)이 품고 있는 '금지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 인물의 욕망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었나, 아니면 거부감이 들었나?
3. 작품 속 인물들은 왜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억누를 수밖에 없었을지? 현실의 우리 사회와 비교했을 때, 작품 속 사회 구조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거나 다르다고 느꼈는지?
4. 양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5. 나에게도 ‘금지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외부의 시선, 두려움 등)
6. 인상깊었던 문장은?
2025년 4월 4일 금요일
윤석열 파면 이후: 헌정질서 복원, 정치문화 복원 그리고 사회체질 개혁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의 임기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따라 조기에 종료되게 되었다. 다행스럽긴 해도, 기쁘기는커녕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비상계엄선포와 그 이후의 행보가 사회에 남긴 상처와 분열이 너무 크다.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헌 사항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아서, 탄핵소추와 파면에 이르는 상황 자체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난 이상 오늘의 선고내용과 결과는 상당히 늦어지기는 했지만 순리와 상식에 부합하며 다행스럽다고 하겠다.
이러한 오늘이 있을 수 있도록 12월 3일 그날 밤 빠르게 국회에 나가서 비상계엄 해제에 일조한 국민과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에게 고마움과 부채의식을 느낀다. 위헌 위법적 조치에 대한 국방장관과 일부 군 수뇌부의 동조에도 불구하고, 40여년 전 광주와 달리 더욱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지 않게 한 군경들의 민주의식도 분명히 평가되어야 한다.
그 이후의 정치적 상황 또한 대체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 내에서 진행되어 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혼란상 속에서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해치는 일도 몇 사람이 마음먹으면 그냥 일어날 수 있구나, 그런 발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구나 하는 국민들의 집단경험은 대의제 권력기구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켰다. 이러한 부정적 집단경험이, 추가적인 혼란보다는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방지할지에 대한 지혜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먼저 확실한 책임의 추궁을 통해 헌정질서를 복원하고, 그 다음으로는 여야 할것없이 정치문화를 복원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구감소와 성장동력 상실 등으로 예정된 어두운 미래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사회체질을 개혁해야 할테다.
2025년 3월 26일 수요일
플로우(2024) 감상평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2024)를 보러 강남역 CGV에 갔다.
2025년 3월 24일 월요일
상황적 우연에 따른 언어이해의 오류는 인간, 언어, 세계 사이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이다
'황망하다'는 말은 슬프다기보다는 정신없다는 뜻인데, 장례식을 치르는 상주들이 보통 '혜량해 달라'라는 말과 함께 주로 이 황망하다는 말로 소식을 전하다 보니, 슬프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서 종종 그렇게 쓰이는 것 같다.
이 얘기를 함께 나누던 다른 분의 보충적 의견에 따르면, '허망하다' 등의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다 보니 여기에 이끌려서 더 그런 점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어감, 몇 가지 상황적 우연, 다른 단어 및 형태소들과의 유사성 등이 겹쳐서 단어의 뜻이 사전적인 것과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곤 하는 것이 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 같다(나는 이런 것을 '이끌린다'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이런 언어 현상들 관련해서 위키 등에서 많이 본 표현이라서 그런 듯). 의미와 기표는 서로 별개의 층위인데, 실제로 언어가 구사될 때는 언어들간의 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나, 세계의 필연적 구조의 영향 하에 그 층위를 활발하게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연과 혼동에 의해 쓰임이 변화하더라도 언어정책은 어휘들의 사전적 의미와 정확한 어법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등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현상들은 세계와 인간의 지극히 다채로운 상호작용이므로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황망하다'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얘기했던 또다른 예시로는 '억하심정'이 있다. 사전적으로 보면 억하심정은 사람의 마음 중에서 꾹 눌러 놓고 겉으로 내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속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 중에서는 부정적이고 억울한 마음이 아무래도 많게 되어 있다 보니, 억울하고 한이 맺혔다는 뜻으로 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용하는 듯하다. 물론 사전적인 뜻대로, 꼭 한이 맺힌 느낌이 아니라도 뭔가 음침한 속마음을 갖고 행동하는 것 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또한, 답답하고 북받친다는 의미의 '억하다'라는 단어가 존재하므로 '억한 심정'이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런 표현과도 상호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억하다'라는 말이 '억한 심정' 외에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억하심정'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덕분에 그 영향을 받아서 (예컨대 억하심정이라는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긴 했는데 그게 알맞지 않은 쓰임새임을 인지하고 있어서 바로 수정할 때) '억한 심정'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위 내용과 약간 관련될 수도 있는, 2017년경 별다른 목적 없이 간단히 작성해 본 글을 하나 첨부한다 (아래에 임베드). 여기에서는 언어로부터 우연하게 유발되는 감각인상(편의상 '언감 현상'이라고 칭함)이, 결코 필연적인 것은 아님에도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인식 구조상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러한 언감 현상은 감각과 의미가 직접 맞닿아 상호작용하므로 아주 세련된 예술적 계기까지는 아니지만 주관적 보편성을 가지므로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논증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위키위키 류 사이트 이용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떡밥 중에 하나인 Bouba-Kiki 효과도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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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1일 금요일
미술과 음악에서 균일성에 대한 왜곡된 인지와 이를 보정하는 표현법
디자인 분야에서 정사각형과 원의 폭이 같으면 원이 더 작아 보이기 때문에, 원의 크기를 일부러 더 키워 주어야 두 도형의 크기가 똑같아 보인다거나 하는 여러 노하우들이 있다 (여기서 크기가 같다는 것은 면적이나 길이 등 정량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딱 보기에 같은 크기라고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음악에도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 한 마디 내에서 앞쪽이나 뒤쪽에 가사 음절들이 쏠려 있거나, 멜로디의 상승감 및 하강감이 두드러지면, 분명 박자가 정확히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저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그런 효과가 덜 느껴지도록 송라이팅 자체를 잘 하거나, 아니면 가창을 할 때 살짝 밀거나 끌어서 부르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이런 것들이 음악 프로듀싱 하는 업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이슈가 아닐까 싶다.
2025년 3월 20일 목요일
국제질서 급변과 인구 급감을 앞두고... '평범한' 과학 커리어란 가능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추진하는 일들의 귀결은, 지금까지 빚과 지출을 늘리며 대내, 대외적으로 확장되어온 미 연방을 어떤 의미에서 한 번 청산하는 것과, 더욱 노골적인 부자들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인 듯하다. 큰 정부를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어떤 평균적 의지(별로 정합적으로 작동가능한것 같지는 않은)가 이런 결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인데, 그 의지를 표명하는 개인들조차 지금의 이런 사태까지 속속들이 예상하거나 의도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경제 및 외교통상 관련 조치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언론, 시민, 외국인들의 비판을 막고, 기후, 다양성 등의 의제를 시민운동과 학술연구 양쪽에서 완전히 죽여놓다시피 하는 걸 보면 순식간에 유럽보다 중·러에 가까운 나라가 된게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게 회복이 가능할까?
특히 학계조차 컷을 당하고 탄압을 받고 있는걸 보니 참으로 무서운 일인 것 같다. 안그래도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태계가 돌아갈 만큼의 볼륨은 아직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이 지극히 중요할 텐데... 이는 한국인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한국이건 세계이건, 왜 내가 어렸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좋다가 하필 내가 커리어를 꾸려나가고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될 시기부터 이렇게 흉흉하게 되는가를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이것은 어릴 때의 순진함에 의한 착각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가 바뀌고 있는 것임이 명백하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데,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차라리 한국 내에서 가능한 커리어패스가 충분히 있다면 몸도 편하고 좋을 텐데, 세계를 유랑해야 하는 한국 과학도의 삶이란... 과학도들은 미국유학에 대한 흔한 한국적 관념처럼 '급'을 높이려는 욕심 때문에 해외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초과학계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디폴트로 굉장히 국제화되어 있는데다, 한국인 연구자들의 경우 해외 아니면 커리어패스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몸이 힘들고 정착이 늦어짐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돌아다니게 되는 것에 가깝다. 이를 알아야 한다.
내가 박사 졸업을 할 시점에도 미국의 상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말년 만화에서 유래된 유행어인 '명예로운 죽음'처럼 '명예로운 미국못감(?)'을 하고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자 시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다시 군비증강과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는 지금의 국제정세로 보면 과연 유럽 혹은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전할지... 그 이전에 한국은 멀쩡할지?
앞으로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대학이랑 연구소의 자리들도 점점 줄어들 텐데, 내 실력을 보니까 나는 개인적인 안정성을 포기한다면 평범하게 자리를 지키는 연구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늦지 않은 나이에 학계에 정규직으로 정착이 가능할 정도로 좋은 연구 업적을 쌓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팔자만 생각한다면, '명예로운 학계포기(?)'와 함께 빠른 취업을 생각하고 과학은 애호가로만 남는 것이 사실 제일 좋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수학, 물리학 하는 학생들 중에 일부 자존심 세고 소명의식 높은 부류는 취업하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난 공과대학 출신이다 보니 이런 면에 있어서는 생각이 유연한 편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까지는 없다. 사실 그럴 입장 자체가 못되는 게, 요새 박사 취업도 굉장히 어렵고 (신진 기업들뿐 아니라 전통의 삼성만 봐도... 과거 전기전자/물리학쪽 박사 삼성취업은 과장 많이 섞어서 럭키 티맥스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작년엔 박사 채용이 거의 없었고 특히 하반기 삼전은 박사채용 0명이었다는 말이 있음), 실제 혁신은 인더스트리에서 훨씬 많이 일어나니까 말이다.
후과를 생각하면 사실 이런 글도 올리면 안 되기는 할테다. 과학도로서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도 참 갑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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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9일 일요일
기본값의 왜곡, 헌법재판의 개념, 가벼움이라는 착각
결국 원조 내란수괴인 전두환 일가까지 등판해서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2025년 3월 8일 토요일
윤석열 구속취소를 보며: 직무정지의 실효성,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관 개편 제안
다시 힘든 시간을 마주하며...
2025년 3월 3일 월요일
메탈 및 메탈근처 앨범 10선
지하철에서 Spotify를 켰다가 심심해서 꼽아 보는 메탈 및 메탈근처 앨범 10선.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들은 일단 빼고, 폭넓게 알지는 못하다보니 상징성, 대표성보다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지금 현 시점에 끌리는 앨범들 위주로 골랐다. 전반적으로 연주가 복잡다단하면서도 어느정도 직선적인 야마가 분명하게 잡혀서 비교적 쉽게 이해가능한 곡들, 그리고 어두움의 틈에서 서정성이 스며나오는 곡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1. 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iral (1994)
시기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아래 다른 앨범들과는 꽤 이질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대중음악 전체에서 딱 한 개 음반만 꼽자면 이것임. 악보에 표기하기 곤란한 전자음과 효과음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소리의 텍스쳐가 대단히 강조되면서, 그 결과물도 실험적인 가치를 넘어 악곡 그 자체로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반으로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나와서 선구자 역할을 한 듯. 2010년대에 한창 일렉트로닉 유행하던 시절에 어두운 전자음악이 뭐가 있나 많이 찾아봤었는데 내 마음에 충분히 드는 건 없었고 오로지 NIN이 오래 전에 매우 탁월하게 선취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