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동산규제가 비판받으니까 위선적으로 지방균형 갑자기 다같이 꺼내들고 나온다고 비난하는 플로우가 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서울 부동산 중심으로 일원화된 욕망의 구조와 그러한 욕망을 실제로 지탱하는 물적 토대가 한국 사회 최대 문제이자 초저출산의 원인이고 그걸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온 사람들은 많았다. 그리고 이번에 인스턴트하게 지방균형 얘기를 꺼내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아마도 앞서 말한 사람들과 꼭 동질적인 집단은 아닐 것이다.
구체적인 대책과 방안 없이 무조건 청년들보고 지방에 왜 안가냐고 하는 것도 물론 열받는 일이다. 어제 쓴 글(블로그에서 보기: 링크)에서도 말했듯이, 수도권 부동산만이 최고의 자산이라고 인식이 자리잡혀버린 상황에서 저렇게 말하는건 계급 고착화에 불만을 갖지 말라는 뜻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특히 서울 아파트 이미 보유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하지만 '그러면 니가 먼저 가라', '너는 서울집 팔고 갈 거냐', '너가 먼저 가라하면 안 갈 거잖아' 이런 식으로 너무 비난만 하는 것 역시 그렇게 생산적인 방향을 향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저런 말도 사실 지방은 가기 싫은 곳이라는 식의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나.
(물론 상대방이 그런 전제를 가진채로 말하고 있을테니 그걸 자기가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수도 있으며, 이 주장도 꽤나 일리가 있다. 말하자면 어떤 주장을 할때 따옴표를 쳤느냐 안쳤느냐를 서로 헷갈리는 거다. 이런 건 굉장히 피곤한 논쟁이지만 하기는 해야 하며, 말을 조금씩 더 정교하게 하면 약간은 해결될 때도 있다. 이런 것도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할 frustration의 한 예시가 된다.)
지금 지방균형발전을 얘기한다고 왜 민주당 옹호라고 단정하는가? 정부여당이 지방균형 드라이브 걸고 있지를 않은데, 차라리 비판이면 비판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겠지만 내 스탠스는 부동산 문제를 기술적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계급고착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 딱 여기까지다. 물론 실제로 충분한 방안 없이 인스턴트하게 지방균형을 끌고 와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꽤 많기는 한 모양이다. 정치 강성지지층 여론형성 과정에서 의제를 막론하고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의제가 그렇게 소비되면 원래부터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오던 사람들은 오히려 낙담하고 배제되는 경우도 많고 그게 바로 숱한 정책이 실패한 과정임을 알아야한다.
지역균형을 얘기할 때에는 비수도권 도시들이 실제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도록, 무슨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양질의 일자리가 있으니까 지방에 가는 것이 되게끔 아주 확실한 지방분산을 해낸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비난에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그걸 절대로 못해낼 거라는 확신, 진지한 추진과제가 절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느낌도 있다. 솔직하게 지금까지로 보면 정말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고위직들의 위선도 분명히 지난 몇년간 봤다. 근데 그렇다고 자포자기하고 그걸 안 하면 나라의 미래가 어둡지 않나. 무슨 국민들끼리 누가 먼저 내려갈지 눈치싸움을 시키고 있나. 나라가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고 밀어주고, 국민들도 진지하게 어떻게 실현시킬지 마음을 모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균형발전이라는 것이 꼭 모든 소멸위험지역을 다 살려야 하고 모든 지자체에 인프라와 공공기관 등을 나노 단위로 나눠주자는 주장인 것도 아니다. 꼭 그런 극단적인 전제를 깔고 비난하는 것도 잘 이해가 안 간다. 광역시에 에너지를 집중시켜서 되살리는 것 역시 얼마든지 지방균형발전의 범주에 속한다 (사실 나름 10위권 경제대국인데 제2, 제3도시들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규모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인 것 자체가 정말 가슴아픈 상황이다. 이게 해결되어야 한다). 나노단위의 인프라 분산과 광역시 일자리 되살리는 것은, 동일한 지방균형발전이라는 말로 묶이기 어려울 만큼 크게 다르다. 어쩌면 서울집중과 지방균형발전만큼이나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전자는 개별적인 경우들에 대해 사회문화적 경제적 가치가 있을 수 있고,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할 문제는 후자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것도 결국 시간축 위에서 과거에 벌어진 선후관계와 미래에 벌어질 선후관계를 고려하면서 복합적으로 풀어가야 될 문제를, 지금 현재에 사영시켜서 한번에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frustrating한 메타적 문제다. '실제로' 사태가 시간축 위에서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공간마다 사람마다 동질적이지 않게 전개되어 왔는데, 그 모든 시공간을 거쳐온 우리가 지금 현재 여기서 같은 의제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이건 굉장히 실제적인 얘기이고 너무 현학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현재로서는 이정도 표현밖에 안 떠오른다.
또 하나의 민감한 얘기를 꺼내자면, 지난 10년간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이에 대한 반발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문제, 말하자면 '과도기의 문제'가 어느정도는 작용했다고 본다. 누군가가 어떤 주장을 할 때, 인식변화의 과도기 이전에 머물면서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이후의 패러다임을 어느정도는 인지하거나 전제하면서 말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서로 (그리고 꽤 자주 스스로도) 헷갈리는 게 많다. 전자인 사람이 스스로 후자라고 생각할때 주로 사고가 난다.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발언의 의도가 아무리 있어도 자기가 서있는 땅이 어디냐에 따라 별로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 되고, 그럴 때 자기 주장을 더 하기보다는 그냥 말을 아끼는게 더 나은 상황도 많다. 게다가 시공간마다, 사람간의 관계마다 변화가 동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단지 인식상의 문제, 논쟁을 어렵게 만드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도' 손익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특정 쟁점에 있어서 과거에 이득을 본 사람들이 미래에 양보를 하고, 과거에 손해를 본 사람들이 미래에 권익을 찾고자 하는데, 전자의 경우가 반발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걸 한다고 해도 '누가 먼저 할지'로 싸우는 와중에 과거와 미래 양방향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점 또한 부동산문제와 판박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이 시간적으로뿐만 아니라 공간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
부동산이든 젠더 문제든, 물론 그런 시공간적 비균질성을 의식하고 말을 조금씩만 더 정교하게 하면 나아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지금에 비해 모순이 해결된 최종상태가 무엇인지 모두가 어느정도 알면서도, 역학관계 때문에 '실제로' frustrated되어서 해결의 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점들을 단계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려야 하고, 구성원들이 이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위에서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과도기라고 했지만, 사실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이 해결된 (그리고 아마 새로운 모순이 생긴) '미래'가 존재하게 되었을 때에야 그걸 정말로 과도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미래가 오길 바란다. 이 글조차도 민주당이 욕 먹으니까 말 복잡하게 돌리는 글로 보이는가? 정반대로 해석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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