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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일 목요일

정치적 발화를 둘러싼 어떤 부조리에 대하여

[ 처맞을 각오하고 쓰는 한국의 요즘 집회 비판 - 함께하고 싶은 집회를 위하여 (by 박현우, Nov 30. 2015) ]

  말해져야 하지만 조심스럽게 말해져야 하기에, 오히려 말해지기 힘든 주제들이 있다.

  어떤 것에 찬성하면서도, '이런 단점이 있긴 하다'고 지적하면서 개선을 권유함으로써 보다 나은 찬성의견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것에 반대하면서도, '이런 장점도 있긴 하다'고 하면서 맹목적인 반대가 아님을 천명함으로써 보다 나은 반대의견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뤄야 할 문제들은 점차 다면화되는 반면에, 우리가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오히려 심도있는 비판이 사라지고, 일차원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되고, 진영논리로 고착되고, 단편적인 인상들만이 흥행하고 있다. 그에 따라, 위와 같은 주장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들을 하려면 마치 사상검증 하듯이 '내가 물론 전체적으로 동의하긴 하지만~~', '내가 물론 전체적으로 반대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구구절절하게 밝혀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든다. 그래서 말을 하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찬성논리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반대논리에 힘을 싣는 것처럼 보일(따라서 실제로 반대논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존재하고
역으로,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대한 반대논리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찬성논리에 힘을 싣는 것처럼 보일(따라서 실제로 찬성논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집회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링크한 글과 같이 더 나은 집회를 위한 코멘트로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군을 동원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집회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페이스북 페이지 '국민의힘'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더 나은 집회를 위해 '집회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집회 자체를 부정하는 측에 힘을 실어 주는 효과를 내는 것을 배격하려면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 그러면서도 비생산적인 양비론 역시 경계하려면 또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 너무 어렵다.

  비단 이 주제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려다가 포기한 일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다룰 주제 자체는 너무나 다양한 맥락, 다양한 측면이 존재하는 복합적인 주제인 반면에, 그 주제에 대한 어떠한 의견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어떻게 나눠졌는지도 알 수 없는 일차원적 대결 구도의 양쪽 편 중 한 쪽을 추켜세우고 한 쪽을 깎아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그렇지 않을 거면 차라리 존재하기 말기를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대결 구도 없이도 의견이 사실상 '거의' 양분되어 있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대결 구도 없이 모두가 각자의 맥락 속에서만 주장한다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든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상술한 사회적 강요 속에서 양분적인 대결 구도 자체에 매몰되는 것은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다. 더 공부를 많이 해서, 더 좋은 말, 더 좋은 글을 생산한다면 그러한 현상을 피해갈 수 있을까? 그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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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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