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혁명 이후에 근대 국가가 탄생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모더니티의 모순성이 전체주의, 2차 세계대전, 핵폭탄 등을 통해 극단적으로 분출된 이후, 탈식민지화가 진행되고 민주주의, 평화, 다원성, 인본주의, 환경보호 등의 가치가 정착되면서, 세계는 꾸준히 위대한 보편적 인류애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행되었다고 나는 믿어 왔다.
문명이 도래하고 천여 년 만에 드디어 인간이 인간처럼 대우받으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어서, 그런 세상을 사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국가가 국민들을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일이나, 영토 싸움, 종교 싸움, 이념 싸움에서 비롯된 국가 간의 전면전에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가?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이룩되었는가? 위와 같은 면에선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문제가 터지고 있다. 새로운 문제인지, 아니면 가려져 있다가 비로소 분출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분명히 새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세계 각국을 막론하고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당히 일관되어 있는 바, 우리는 그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결과 그 '일관된 문제'들이란 바로,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일상을 위협하는 테러리즘, 보편 가치 추구자들의 맹목화, 개인 사이의 증오, 인종이나 성별 등으로 나뉘는 집단 사이의 혐오, 정보화 및 글로벌화에 의해 정교하게 내재화된 인간 소외 현상, 갈수록 공고해져서 해답이 안 보이는 선진국과 빈곤국의 격차와 난민의 발생 등이다.
국외에서는, 웬만한 국가 규모로 급성장해서 중세적인 방식으로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는 극단주의 종교 세력 및 그에 경도된 개인들에 의해 호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반인륜적인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외국인이나 특정 종교인에 대한 차별적 발언 및 증오 범죄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의 무덤인 아프리카, 전체주의의 무덤인 북한 같은 지역은 심지어 이러한 논의로부터도(!) 완전히 소외되어 극도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단 위의 '일관된 문제' 이전에 권위주의적 군사 문화, 국가주의, 종교적 맹목성 등부터가 아직 극복되지 못했고, 심지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이 내용 역시, 어찌보면 이 글보다 더욱, 정말 중요하지만, 별개의 글에서 다루어야 하므로 일단 보류한다). 또한 위의 '일관된 문제'에 속하는 성별 집단, 인종 집단 등에 대한 각종 혐오 언행, 개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며, 여성주의, 환경주의 등이 꼭 필요한 움직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맹목화되어 퇴색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미디어를 통해 글로벌한 규모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사유와 담론은 도태되고 말초적 자극만이 힘을 키워 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가장 사회성숙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 차별 발언 및 증오 범죄가 가장 광기어린 형태로 빈번하게 나타나며, 마찬가지로 시민의식이 높다고 평가되는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극단주의적 테러리즘이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호주 등과 같이 선진국이지만 사회구조 및 시민의식이 성숙하는 과정 중에 있는 국가들에서는 차별 발언 및 증오 범죄도, 테러리즘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이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이 갖는 함의는, 이러한 '일관된 문제'들은 모더니티의 결여 및 불완전성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티 달성 이후에 생기는 '새로운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관된 새로운 문제'들인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할 (시도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진국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범국가적 연대를 통한 극단주의의 종식인가? 민주시민교육 빛 비판적 사고능력 함양 교육의 강화인가?
또한,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를 이식해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미디어를 활용한 약자들의 글로벌하고 평화적인 연대를 통한 보편 가치의 추구인가? 사회민주주의적 모델인가? 지역사회의 역할 증대인가? 아니면 어떠한 가치를 이식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인가?
물음표만이 계속된다. 이러한 '새로운' 문제들이, '일관되게' 발생하는 데에는 분명히 어떤 원인이 존재할 것인데, 그러한 원인에 대한 검토와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초반에 언급한 민주주의, 평화, 다원성, 인본주의, 환경보호 등의 보편 가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궁극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 있는 우리가 무언가 다함께 놓치고 있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인 만큼, 이에 대한 진단은 굉장히 그 규모가 큰 담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조사하고 끊임없이 사유하여,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관점에서, 사람을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존재하게 해 주는 사회를 사랑하는 관점에서, 그러한 해결책들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적용해 보아야 한다.
그 과정은 어쩌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며, 극단성이 분출될 위험 역시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20세기에 그러한 혼란과 극단성 분출을 겪은 바 있다. 오히려, 그러한 비극이 발생하기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리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여 점진적으로 가치지향을 재구축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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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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