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허언증 갤러리(이하 '허갤') 출처의 드립들이 캡쳐되어 페북에 자주 올라오는데, 뻘짓들이지만 굉장히 재밌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 성취되기 힘든 높은 목표 등과 관련해서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는 건 언제나 엄청나게 재밌는 일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이입으로 가히 인간의 본성적 욕구라고 할 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겉으로 이야기되기는 힘든 것들이다.
소설과는 좀 다른 것이, 소설은 비록 가상이지만 사실적인 갈등구조 속에 독자를 몰입시켜서 감명을 주는 것인데 반하여 허갤의 기획은 어차피 거짓말이라는 게 합의된 어떤 '우월한 상태'에 자신과 독자를 이입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갤의 드립들이 유저들에게 재미를 주는 방식을 세 단계로 구조화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해당 '허언'의 참신함(소위 드립력)에 대한 인정의 의미에서 나오는 웃음이며, 둘째는 그 허언에서 묘사하는 우월한 상태에 자기이입이 되어 실실 웃게 되는 웃음이며, 마지막 셋째는 그 허언이 말 그대로 실현 불가능한 허위의 것에 그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발생하는 묘한 파토스이다.
이러한 구조에 의해 허갤의 개드립들이 인간의 뿌리깊은 본성과 잘 맞닿아서 강력한 재미를 주는 이유가 잘 해명된다. 아마 두번째 단계에서 이것이 하나의 놀이에 그치지 못하고 현실로 믿어져 버린다면 허언증이라는 정신적 질환이 되는 것일 테다.
그런 면에서, 가상의 우월한 상태를 자랑하기로 합의하여 판을 깔아 준 허갤이라는 공간의 속성은 다른 사이버 공간과 비교해도 매우 독특하다. 만화 캐릭터나 유명인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참여하는 '코스튬 파티'와 매우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존재론과 관련해서는 이화여자대학교 김선희 초빙교수의 <사이버 공간이 다중자아 현상을 일으키는 존재론적 구조>(哲學 제74집, 2003.2, 171-191 (21 pages))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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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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