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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목요일

5월 18일을 맞으며: 헌정 민주주의를 사유하기

  군사정권에서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통신과 교통이 차단당한 채로 광주시민들이 학살당했던 일, 실존을 위협하는 시스템의 폭력 아래서 총까지 들어 가며 시민군으로서 계엄군과 대적을 하게 되었던 비극, 불과 36년 전 오늘, 1980년 5월 18일부터 수 주에 걸쳐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나 실상은 꽤나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순수하지 않은 목적의 폭동이었다는 주장이 아직까지도 자주 보인다. 언론인들은 용기가 없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라. 나는 그들이 후대에라도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이후에도 제5공화국 내내 많은 민주진영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탄압당했고, 고문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한 1987년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약속되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경유착을 하며 정권에 돈을 주었던 기업들은 서서히 발을 뺐고, 책임자들은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군사정권의 잔재 청산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어쨌든 세상의 우려와 달리 88 올림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쯤 시간이 흘렀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와 생명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수뇌부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은 2016년, 예우를 해 준다면 광주를 찾아갈 수 있다며, 생생히 살아 있는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기만한다. 군사 독재는 끝났지만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에는 군사 독재를 주도하거나 찬동한 인사들도 포함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정치계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회는 해체되었지만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퇴역장성 단체에 소속되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등 정치의 배후에서 개입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5월 18일 새벽, 짧게나마 알고 있는 역사를 되짚어 보며, 2013년 이래로 외우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곱씹어 보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자연스레 주어진 안정적인 것인가, 혹은 섬세하고 예민하게 쌓아올려진 것인가? 과연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 과연 우리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때, 우리 옆의 사람들이 실존을 위협당할 때, 우리는 다시금 문제를 인식하고, 용기내어 문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우리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그것들이 위협받는 것을 목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헌정 민주주의의 원리에 기반한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 노력과 투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소중한 헌법적 가치, 민주주의적 가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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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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