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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전문연구요원 폐지 폭탄선언에 대해

  전문연구요원 폐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어제 뉴스 링크([단독] "이공계 병역특례 2023년까지 폐지")를 공유하면서 썼던 글에 더하여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이번 발표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유예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이미 전문연을 염두에 두고 학부생활 도중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공계열 선배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 이렇게 될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입대하거나 대학원 과정을 중단하고 입대하는 등 사회인으로서의, 이공학도로서의 커리어에 문제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교육과정이랑 군대정책은 최소 10년은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 시행 중인 제도의 폐지에 이런 식으로 유예기간을 안 둠으로서, 그 제도를 상정하고 계획을 세워 놓은 수많은 이공학도들의 인생계획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배려가 없는 걸 넘어 폭력적인 처사이다.

  또한 연구 지망 이공학도들의 개인적 불편함 외에 국가적, 사회적 측면에서도 전문연을 폐지할 경우 국내 이공계 학문 연구에 차질이 발생하고 우수 연구인력이 대량으로 해외 유출되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이다. 국내와 해외의 과학기술자 대우 및 연구환경의 차이와 함께, 이런 식으로 연구인력을 기만하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많은 이공학도들이 실망하며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병사 수천 명 더 확보하려고 전문연을 폐지함으로써 국내 이공계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조치인 것이다.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합당하다.

  2020년까지 달 탐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유인탐사 얘기는 아니겠지만), 미국이 달에 사람 보내는 데 들인 돈이 현재 가치로 약 200조 원이었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알파고의 개발 배경에는 구글이라는 거대 IT 기업이 전세계의 좋은 스타트업들을 거액에 인수 합병하면서 연구 개발해 온 수많은 기술들이 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하게 선언 하고 테이프 끊는 것으로는 어떤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과학기술 연구 환경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국내 대학원생 대우가 열악한 편인데 이런 문제까지 더해지면 많은 학도들과 지망생들이 실망하고, 국내 이공계 연구원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자면, 전문연구요원과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은 타 특수병과 및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에 대한 것일 것이다. 이공계 연구인력만 소중하고 다른 직종 희망자는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흔히 전문직이라고 이야기되는 의사, 법조인, 연구원 중에서 앞의 두 직종은 군의관, 군법무관이라는 잘 정착된 특수병과를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으나, 연구원의 경우 전문연이라는 고학력 이공계에 제한된 좁은 문을 통해 보충역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고, 결국 그마저도 없어지면서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는 전문직 종사자 개인 입장에서도 차별적인 대우가 될 수 있을 뿐더러, 군대 입장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기계화, 현대화된 선진강군 건설이라는 최근의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조치가 될 수 있다.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연 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가 전문연 폐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역 일반병에 대해서도 군기강과 상관없는 폭력을 최대한 막고, 밥이랑 월급 수준 개선하고, 장비 제대로 지급하고, 외출을 자주 가능하게 하고, 자기계발 시간을 어느정도 이상 확보하도록 하여, 전문연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병역수행의 환경을 상향평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전문연과 같은 수준의 자유화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앞서 나열한 것들 정도는 현역일반병에게도 못 해 줄 이유가 전혀 없는 조처들이다. 혜택이 아닌 당연한 권리들이다.

  대한민국 징병제 하의 군인들의 복무환경과 그 대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나쁜 수준이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사회 수준에 비추어 보면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전문 연구인력에 대한 특별대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반병사의 복무환경 자체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확 끌어올려질 필요성이 있다.

  안그래도 시민사회와 유리된 한국 군대의 폐쇄성과 전근대성이 조만간 매우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가 군대에 대해 문제를 문제라고 똑바로 인식하고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전문연 폐지 조처를 통해 군대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목소리도 나오고 하면서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전문연구요원 폐지 조치에 대해 전면 재검토 착수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히 조사하여 수정 조치하여야 한다.
- 임금 개선, 식사 개선, 자기계발 시간 및 휴가 확보 등, 수십 년간 방치되어 오다시피 한 군인들의 복무 환경 정상화 문제를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설정하고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사회구성원 개인들의 삶의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주는 교육, 입시, 군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최소 10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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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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