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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0일 화요일

변화한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철 안내방송 중에 들을 때마다 꽤 의아한 부분이 있다.

  "불쾌한 신체접촉이 일어날수 있으니 시민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나중에 구글링해 보니, 원래 '불쾌한 신체접촉'이라는 말 대신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다수의 승객들을 범법자로 매도하는 것 아니냐는 민원이 속출하여 이렇게 바꾼 것이라고 한다...)

  선로와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은 것, 지하철 운행 중의 진동이 심한 것 등은 지하철 자체가 그렇게 건설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조건들이다. 이런 요소들에 대해 '시민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에 비해, 불쾌한 신체접촉은 혼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서로를 존중하여 의식적으로 배려한다면, 그리고 혼잡함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점차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불쾌한 신체접촉을 당하는 입장에서 주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자세로 탑승하자는 캠페인도 이런 배경에서 제시되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노트북 가방을 안아서 들고 탑승하는데, 기도하는 손 모양보다 확실히 자연스러울 뿐더러, 승하차 과정에서 주위 승객들과 부딪힐 일이 없어 내 입장에서도 편하다.)

  여튼, 오늘 집에 오는 길에 교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평소에 듣던 것에 비해 뉘앙스가 좀 달랐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불쾌한 신체접촉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가 먼저 조심하고 배려하면 다같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냥 안내하시는 분이 그렇게 바꿔서 말한 건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다. 불쾌한 신체접촉을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불가피한 요소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동료 승객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먼저 조심하고 배려함으로써 점차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전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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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2일 월요일

오브제: 상상된 것의 출현

컴퓨터그래픽 작업공간에 덩그러니 생성된 오브젝트 같다.
하늘의 색깔도 건물들의 모양도 단조로워서 그런 걸까? 도로변의 여러 시설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기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무리 번화한 도시의 풍경일지라도,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각종 시설물들이 모두 제거된다면 우리는 그 장면을 매우 낯설게 여기게 될 것 같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자유롭게 생성한 오브젝트들에 의해 구성된 가상환경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21세기 도시의 첨단 단지들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을 물리적 현실 속에 직접 출현시켜 버리려는 욕구가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고층 건물, 하늘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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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2일 금요일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

  지난 몇 주간 인터넷 공간상에서는 큰 규모의 파장이 일어났다. 게임 ‘클로저스’에 참여한 한 성우가 트위터에 ‘메갈리아4’의 티셔츠 구입을 인증하는 글을 게시한 뒤, 유저들의 반발이 많자 넥슨 측에서 해당 성우의 참여 분량을 삭제한 일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 약 1년간 ‘메갈리아’와 관련하여 형성되어 온 인터넷 상에서의 여론이 거의 모든 대형 커뮤니티에서 단번에 터져 나오게 되는 도화선과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이 사건에 대해 각계에서 의견표명을 하는 과정에서 웹툰 계에서는 일부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보인 태도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실망하는 일도 있었으며, 정의당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논평을 냈다가 철회하는 등의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당원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메갈리아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메갈리아에 대한, 어떤 경우에는 모든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동안 페이스북 상에서는 좋아요로만 의견을 표현해 왔는데 이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진즉에 이야기되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그것들을 살펴볼 충분한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태의 전모가 어느 정도 드러난 현 시점에서 늦게나마 의견을 남겨 보려 한다.

  인터넷 공간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에 대해 일종의 이데올로기화된 ‘건국 신화’를 기반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효과적인 운동 전략으로서의 ‘미러링’이 제시되는 과정에 대한 신화가 그것이다. 지지자들은 그러한 신화를 신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자들은 그러한 신화에 대한 무의미한 비난을 하곤 한다. 자신이 이들 중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관계없이, 이러한 신화를 걷어내고 보다 실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서로 비슷한 성향의 유저들이 모였던 초창기에는, 이용자들이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여성운동으로 정체화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격한 언어와 혐오감정이라는 공통점으로 흔히 비교되는 ‘일베’ 현상과는 달리, 메르스 갤러리는 여성운동이라는 대의의 서포트를 받게 되었고,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이름을 딴 웹사이트 ‘메갈리아’에 이르러 그들의 언어는 ‘미러링 전략’으로 지칭되게 되었다. 메르스 갤러리의 언어는 외견상 혐오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운동의 전략의 하나로 빠르게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미러링 행위의 본질이 단순히 혐오적인 유희인지, 남성중심적 편견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와 조롱인지, 절박함에서 오는 분노 표출인지 판별하려는 시도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며, 심지어 한 사람 안에서도 중첩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뢰를 기반으로 공정성이 확보된 유의미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담론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메갈리아의 지지자들을 타자화하여 담론공동체로부터 배제하려는 시도 역시 배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점들에 의해, 메갈리안 멘탈리티 자체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내 수준에서는 다소 무모한 것이 된다.

  어떻게 보면 허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메갈리아라는 ‘집단’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메갈리아의 언어가 미러링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대외적으로 정체화되어 여성주의 진영에 흡수되면서 발생한 발화의 양식, 운동의 양상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사이트로서의 메갈리아와 양식으로서의 메갈리아가 혼용되어 언급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학문적 태도이기도 하며 실천적 사회 운동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거시적인 사회 구조부터 지극히 일상적인 영역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만큼, 페미니즘의 학술적인 측면과 사회 운동의 측면은 꽤나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에 의해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페미니즘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응용윤리적 판단 및 사회구성적으로 정립된 평가를 넘어선 ‘엄정한 의미에서의’ 규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메갈리아라는 단어가 더 이상 특정 사이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자들에게 흡수된 화법 및 운동의 양상을 뜻하게 된 이상, 개인적 의견에 따라 메갈리아가 ‘과격한 페미니즘이다’, ‘문제가 있다’라며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내세워서 여성주의 진영에 흡수되며 발생한 사상과 전략에 한해서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와 반대로, 메갈리아의 양식을 채택한 페미니즘 진영에서 그렇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본인들에게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며 부정하는 현상 역시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은 매우 필요할지언정,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하게 후술한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자체의 성질을 균질한 것으로 가정하여 진단할 수는 없다. 그 집단의 코드에 강하게 동조하는 사람, 반대하는 점도 있으나 전략적, 윤리적 판단에 의해서 동조하는 사람, 자세히 알지 못하고 대의를 보며 동조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스탠스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또한 그들이 하나의 커뮤니티에만 소속되지 않고 복수로 활동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마치 어떤 정당이나 정파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진영’이라는 것은 사실 허구인 것이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믿고 활동하는 것이 인간 행동의 핵심적인 측면 아니겠는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미 진영으로 보이는 것이 발생한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논지를 전개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이것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코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그 코드가 사이트 내부 및 외부적으로 그 표현 자체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오류를 낳으며, 그 코드 배후의 의미와, 그것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메갈리안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자가 페미니스트일 수는 없다는 강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 생활정치 영역과 제도권 정치 영역을 혼동하여 공고한 강자-약자 구도를 형성한다는 점, 그들에 의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메갈리아의 ‘건국 신화’와 미러링 행위의 성격이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 채로 이데올로기화되어 신념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점, 몇몇 사안을 강력하게 공론화하여 해결에 일조한 바는 있으나 전략적인 면에서 대중에 대한 궁극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에서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메갈리아의 비판자들 중 ‘메퇘지’, ‘쿵쾅쿵쾅’ 등의 숱한 외모적 편견에 근거한 멸칭들을 사용하여 그들(에 더하여 모든 페미니스트들)을 조롱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시대에 무슨 여혐이냐’, ‘그러면 나도 여혐이라는 것이냐’, ‘나와 내 주위 사람들 중에 여혐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는 사람들과는 더욱더 같은 편에 설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강한 진영논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들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그 발생 원인과 해소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이번 논쟁으로부터 시선을 넓혀서 지난 십여 년 간 인터넷에서 진행되어 온, 더 나아가 지난 백수십년 간 진행되어 온 페미니즘 담론을 살펴보면, 언제나 그것은 남녀라는 동등한 두 진영의 싸움 같은 것이 아니었으며, 기본적으로 여성혐오가 공고하게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어 왔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그대로 사용하겠다. 여성혐오(misogyny)는 자국이성혐오와 같은 혐오적 정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게 강하게 적용되는 외모지상주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적 풍조 등을 포함하는, 젠더담론에서 다루는 가장 뿌리 깊은 지점에서부터 존재하는 넓은 개념인 것으로 이해된다). 비록 일베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혐오적 발언들에 의해 여성혐오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일베뿐만 아닌 많은 곳에서 여성혐오는 언제나 존재하였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페미니즘 담론은 잘 정착되지 못했고, 여성혐오적 발언들의 엄청난 양에 비해 그것이 제지되는 경우는 그에 비해 많지 않았다.

  이처럼 네티즌들이 평소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해 보여주었던 나이브한 반응을 생각한다면, 현재 메갈리아에 대해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는 억압적인 기제에는 여성혐오적 반동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를 통해 다른 모든 페미니즘 담론에까지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며, 이러한 우려는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으로 ‘여성 억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혐 한 적 없다’면서 그것을 생활이나 미디어 속에서 캐치할 정도로 이해하며 체화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완전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우리 안의 여성혐오’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여 공론장을 열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메갈리아에 대해 최대로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혐오표현이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당한 운동의 방식으로 수용되어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었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 자체는 생각해 볼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소위 ‘우리 안의 여성혐오’를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성평등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뢰가 붕괴되어 있는 것이 이유가 되어, 메갈리아의 혐오적 정서와 폭력적인 언어가 여성운동의 대의와 만나 운동의 양식의 하나로 흡수되어 재생산되는 것이 끊임없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나도 여성혐오에 분노한다! 그렇지만 메갈리아는 좀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진짜로’ 여성혐오를 잘 발견하고 있는 것일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한 그 ‘진짜’는 어떻게 규정되는 것인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결국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평소의 언행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스탠스를 증명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젠더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음으로 인하여, 공론장의 기반이 되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원이 확립되지 못했는데,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스탠스를 증명함으로써 신뢰가 회복되고 담론공동체가 형성되어 대화와 설득을 통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일상화된 실천이, 신뢰의 확보와 더불어 생산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과 사회적인 인식 제고에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기존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원한다면, 여성들이 겪는 사회구조적 차별 및 문화적 풍조에 의한 모멸감 등을 더욱 열심히 알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남성들이 겪는 군대라는 경험,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소위 ‘맨박스’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남성들 중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들 중의 모두를 악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각자가 문제를 느끼는 영역, 각자가 잘 알고 있는 영역에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그 의도는 분명히 인정하되, 여성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있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결구도와 갈등만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설득하여 공론장에 참여할 인원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

  더 많은 실천, 더 많은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 공통점을 발견해서 서로 연대하기보다는, 차이점을 발견해서 서로 배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을 발견하여 이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론장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식을 같이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설득 가능한 요소를 발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절대악에 대한 혁명과 투쟁이 아닌, 악한 요소를 가진 평범한 대중에게서 그 요소를 발견하여 파괴하여야 하는 젠더이슈와 같은 경우에 더욱 더 그렇다(물론 그 악이 ‘평범한 것’이 되어 있는 현 상태는 정말 답답한 것이 맞다). 메갈리아가 끊임없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동안의 대중들의 젠더이슈에 대한 무지와 개선되지 않는 여성인권 상황, 그리고 붕괴된 사회적 신뢰와 공론장의 부재를 생각해 본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나,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지형 속에서 이렇게까지 고립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증오에 의해 사회가 붕괴되고 파편화된 개인만이 남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일반적으로 젠더담론은 동등한 양 진영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말로 하자’,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에 대한 기만이 된다. 그러므로 문제를 열심히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을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상태에서 대화와 설득을 역설하여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증오의 시대, 불신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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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