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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3일 수요일

캠퍼스에서의 위협적 플러팅 사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밤길에서 찝적충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외국인에게 무례하게 말을 걸려다가 거절당하니까 위협적으로 돌변했고, 지나가던 분들이 있어서 다행히도 제압이 되었지만 아니었으면 어땠을지 모른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중이 지켜지는 것은 이런 걸 보면 아직 먼 얘기 같아 보인다. 외국인을, 그리고 여성을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보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인식 때문에 flirting 같은 게 많은데, 심지어 거절했을 때의 물리적 폭력의 위험까지 있다.

  자기 기분 나쁜 것만 생각하고 상대방을 인간으로 안 보는 것 같다. 하긴 그러니까 애초에 저렇게 무례하게 말을 걸었겠지... 이런 건 정말 어디에나 만연한 것 같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꾸준히 있어 왔을 거다. 저 학생이 직접적인 사과를 하고 합당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며, 이런 일이 생겼을 때에 학내 공동체가 뭔가를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 Open Letter to SNU Student who Harassed Me | 나를 괴롭힌 서울대학교 남학생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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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4일 월요일

사적 자유와 공적 책임에 관한 소고

사적 개인으로서의 삶을 사회적 역할에 따른 공적 책임과 구분하지 못하는 게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아닐까? 사람들의 공적 책임의식이 더욱 강화됨과 동시에, 사적 개인으로서의 자유도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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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최대 규모 집회 그 이후는? - '평화집회'에 대한 단상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 실외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한 전무후무한 국정농단 사태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데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100만 명의 국민이 운집했고, 11월 12일의 집회는 '평화집회'로 진행되었다.

  물론 최전선 일부의 대치상황도 있었으며 이것은 현재의 밤샘집회에서도 지속 중이다. 이번 집회에서 그러한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시위대 내에서 성추행을 했다는/당했다는 증언이 꽤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폭력 없는 평화로운 집회'와 같은 기술적 표현보다는, 자주 쓰이는 '평화집회'라는 말을 인용하여 고유명사처럼 간주하며 사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평화집회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며 칭찬하는 말을 근래 자주 볼 수 있다. 최대 인파가 집결한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그것은 적어도 시위의 원인이자 시위의 대상인 집권세력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폭력시위가 일어나는 순간 프레이밍을 통해 우위를 점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폭력이 발생하는 순간에 역풍이 불어올 것을 국민들은 알기에, 평화집회 현장은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긴장 상태이기도 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아슬아슬한 대치상황을 유발한 시위자들에 대해 "그 사람들은 모두 프락치일 거에요"라며 배제해 버리려는 모습도, 그런 보이지 않는 비대칭적 긴장을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라고 본다.

  100만의 인파가 몰렸음에도 큰 규모의 혼란이나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움에는, 외부에서 요구하는 도덕적 덕목에 의해 평가'된' 것이라는 측면이 필시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폭력이 발생하는 즉시 자랑스러움이 깨어지도록 프레이밍을 하여 시위 전체의 정당성을 상실시킬 수 있는 힘이 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안타깝다. 자랑스럽다고 말할 때, 프레이밍이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그런 프레이밍에 당하는 것처럼 되는 데 대한 찝찝함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애초에 부끄러운 일이 일어난 마이너스 상태에서 그것을 해결하고자 해서 시위대가 집결한 것이지, 자랑스러움을 느껴서 플러스 상태가 되고자 집결한 것이 아니다). 이런 찝찝함 없이, 오롯이 국민들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 자율적으로 자랑스러움을 재구성해 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오늘 오전에, 몇 시간 후 시작될 집회를 예고한 기사의 제목은 "100만 명 운집... '정국 분수령' 될까?"였다. 분수령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정도 되는 규모의 집회라면 그 곳에서 드러나는 민의가 실제로 중앙 정치의 방향을 정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뜻한다.

  평화집회를 한 뒤 해산한 것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반 쪽짜리 해석인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주권자인 국민 100만 명이 모여 거대한 민의를 드러낸 뒤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간 것은, 주권행사의 대리인인 제도권 정치인들에게 그 거대한 민의를 반영하여 뭔가를 확실하게 이뤄 내라고 요구한 거라고 봐야 한다. 그러한 기대를 못 할 정도로 희망이 전혀 없었다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산하여 일상으로 복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의는 100만 명의 집회를 통해 현시되었고, 그에 따른 실천은 일단은 제도권 정치의 역할로 위임되었다. 제도권 정치인들은 그 책임을 짊어지고 확실하게 실천을 해내야 한다. 여, 야, 청 가리지 않고 자주 나오는 발언은 '겸허히 민심을 경청한다'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큰 갈림길이 있을 때, 민심은 경청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실제로 반영되고 피드백이 돌아와야 만족한다.

  만약에 민의가 반영되고 실현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그들에게 민의를 끊임없이 다시 보여주어 주권자로서 정치인들에게 위임한 역할을 끊임없이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 또한 그 역할을 회수하여 스스로 집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끊임없이 내비쳐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들 스스로가 주권을 가짐을 의식하고, 국가의 중대한 국면에서 그 주권이 어떻게든 행사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단계까지 간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며, 국민 스스로가 오롯이 세운 자율에 의한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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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트럼프 당선

해는 어김없이 오늘 아침에도 떠올랐다. 그런데 이 세계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빈곤과 불평등의 해소, 군사적 긴장 완화, 인권 개선과 차별 철폐 등 범지구적 인류공영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시대정신이 그 효력을 너무나도 빨리 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두렵다.

우리가 마주하던 한계와 억압을 타파하여,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인류가 나름대로 가시권에 두고 진전해 오던 것이 지난 수십 년이다. 우리 모두는 그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 동력이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탈적인 후퇴일 뿐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삶과 직접 결부된 물리적 현실조차 정치 경제 제도와 미디어에 의해 제어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예고된 불안정성은 더욱 우려할 만하다.

이전에 썼던 글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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