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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6일 토요일

대선후보 자녀 성희롱피해 사건 관련

  유승민 후보의 딸이 어제 선거 지원 중에 겪은 일에 대하여 간략히 언급하자면, 대중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해 온 방식,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여성성이 일방적으로 소비되어 온 방식을 보았을 때 이미 이런 일은 예견되었다. 참담하다.

  직접적으로는 이 일은 전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이다. 그는 응당한 책임을 지고 형사적 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 개인의 형사적 책임과는 별도로 사회적인 책임이 존재한다. 본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전자를 적용하되, 근본적인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후자가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는 그 표현만 '책임'으로 동일하며 사실상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기 때문에, 이를 논함으로써 가해자가 면책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첫째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유명인의 가족인 여성은 그 유명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성적인 맥락으로 사회적으로 소비되곤 한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그런 발언들로부터 자기가 그를 지켜 주겠다는 일종의 '기사도 정신'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기사도 정신 역시 그를 성적 쟁취의 대상처럼 상정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과는 명백하게 구별될 수 있다.

  가해자는 정신장애 3급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쯤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 보면, 강남역 살인사건 가해자의 머릿속에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여성들이 감히 자신을 무시한다는 망상이 형성되었던 것에는 사회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input들의 영향이 없을 수 없다고 본다. 예컨대, 외계인의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외계인이 자신을 조종한다는 망상이 생길 수 없지 않겠는가. 이번 건에서도 비슷하게, 해당 가해자가 '하필 그런' 기이한 행동을 한 데 대해서 사회의 영향을 배제하려는 시도는 그 근거가 미약하다.

  물론 반대로, 여성을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사회의 단면이 그에게 확실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 역시 상당히 조심스러운 주장이기는 하다. 사회의 한 단면과,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내부에 형성되는 관념이 갖는 역학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된 바는 아직 없다고 알고 있다(이는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소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 만약에 여성이 남성에 대해 평가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여성의 권위와 사회적 지위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미디어가 여성의 시각을 대변하여 일방적으로 남성을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사회였다면 가해자가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을 것 아닌가?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이 사건에 있어 사회의 책임을 묻는 주장은 검토될 이유가 충분하다.

  사회의 책임이 지적되어야 하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유 후보의 딸이 유명세를 획득하여 선거 유세에 참여하고 있는 과정 전체가, 여성의 외모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사회적 세태를 빼고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의 자녀가 그 자의에 따라 후보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 후보의 경우에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그 딸이 유달리 외모와 연관지어 화제가 되었고, 급기야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으로 언론에 보도되기에 이른다. 사람의 존재와 그 사람의 행동은 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한다. 유 후보의 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가 외모를 중심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며,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그러한 종류의 사회적 주목은 개인에게 피해가 되는 파국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에게 주목해서 유명세를 부여하고 유세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결국 사회의 힘이고, 그 주목의 포인트는 바로 외모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이 부분 역시 다소 조심스러운 주장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가 하필 그런 방식으로 가해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외모가 주목받음으로써 유명세를 얻은 사람이 웃음을 지으면서 대중들과 사진을 촬영해 주는 환경은, 그렇지 않은 환경에 비해 가해자가 그런 행위를 하기에 유의미하게 우호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본 사건과 관련하여 사유되어야 하는 두 번째 책임이 발생한다. 그것은 유승민 후보 캠프 측의 책임이다. 여성의 외모가 일방적으로 소비되어서 여성 개인에게 성희롱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며, 또한 어제와 같은 직접적인 물리적 성희롱이 아니더라도 인터넷 등에서 그러한 작용은 이미 차고 넘쳤다. 물론 편지, 현장유세 등의 다른 방식으로도 유 후보의 딸은 유권자들을 마주했으나, 사회의 힘은 그의 외모가 가장 부각되게 만들었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소비했다. 유 후보는 이전에 분명히 딸이 유명세를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고, 그 부담 역시 이러한 예견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 후보의 캠프 측은 여성의 여성성이 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보다 날카로운 의식을 가지고, 후보의 딸의 유명세가 갖는 정확한 성격에 대해 이해한 뒤 그에 대한 경계심을 공개적으로 천명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언에 뒤따르는 구체적인 대책은 다양하게 가능했을 것이다. 만약 그 경계심에 따라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면 네티즌들이 후보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의 외모에 집중하며 유 후보를 '국민 장인'이라고 부르는 여론보다 그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더욱 우세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제 현장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형성되어서 그러한 사건을 방지했을 수 있다. 반대로 그 경계심에 따라 후보자 딸의 유세 참여 자체를 포기했어도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의 행태를 사후적으로 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견하고 능동적으로 변화를 일구어 낸다는 점에서 전자가 더 멋진 일일 것이고, 언젠가는 그러한 일이 가능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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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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