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왜곡" 신고리 건설재개측 반발...흔들리는 공론화 (2017.09.30) ]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 여부를 논의하는 공론화위원회에서 원전 관련 정부출연기관 전문가를 배제할 것을 건설 반대 측이 요청했다고 한다. 사실왜곡이라고 수 차례 지적된 건설 중단 측의 자료가 시민참여단을 위한 자료집에 결국 수정 없이 그대로 수록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너무나 답답하다. 500여명의 시민참여단이 내린 결론이 건설 여부 결정으로 직접 이어지게 되므로 신중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 출발이 될 자료집 제작 단계부터 건설 중단 측의 위와 같은 행동이 드러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사태 및 MB정부 원전 비리 등을 통해 쌓인 원자력에 대한 불신의 벽의 존재를 납득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며, 그러한 불신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러한 노력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원자력 종사자 전체를 마피아라고 취급할 정도의 거대한 불신을 그저 '자연스러운 일', 심지어 '원자력계의 업보'라는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나이브하다. 건설 반대 측에서는 자료의 기본적인 사실왜곡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지 않고 공론화 자료집에 그대로 수록하기까지 하는데, 정작 원자력 분야 종사자는 세부 영역에 무관하게 소위 '핵피아'로 취급되면서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말살당하는 것은 명백하게 부당하다. 이러한 분위기가 탈핵 진영에 의해 조장된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전 관련 고위직에 있으면서 큰 금전적 이득을 취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을 넘어서서, 과학기술, 에너지정책, 산업정책 등 각 영역의 원자력 전문가 전체에 대해 탈핵 진영에서 ‘핵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낙인을 찍고, 심지어 공론화위에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을 제외하라는 당황스러운 요구까지 하는 것은, 건설 중단 쪽에 당위가 있다고 강력하게 전제하고, 따라서 혹시라도 건설이 재개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건설 재개 측이 뭔가 발언권을 얻는 것 자체를 큰 위협으로 여겨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원자력 관련 종사자, 특히 과학기술 쪽에서 연구해온 원자력 공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원전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문제를 은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원전과 방폐장이 가질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공학적인 관점에서 원전과 방폐장의 안전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해 온 경우가 많다. 현대의 정밀 공학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와는 달리, 리스크가 없는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 역시 오해와는 달리 - 이러한 리스크를 예측 가능한 범주에 넣고자 하는 작업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건설 반대 측이 이러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들을 공론화위에서 배제하도록 요청하고, 왜곡된 내용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료집에 수록한 등의 일련의 행동은, 물리적 세계에 실재하면서 작동하고 있는 원전이라는 공학적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접근 시도를 차단하고, 나아가 그러한 과학기술적 영역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며, 오로지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관념상에 존재하는 ‘정책적 대상’으로서의 원전에 대한 논의만으로 공론화를 매듭짓고 결론을 도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지극히 우려된다.
잘 조직된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치참여가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시민주의자이자 일종의 진보주의적 공동체주의자로서, 신고리원전 건설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시민참여적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참여적인 공론장은 논의에 있어 적절한 근거를 선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첫째로는 학술적인 사실관계, 경제적인 효율성 등을 판단하는 ‘목적합리성’, 둘째로는 담론의 진리성, 정당성, 진실성을 추구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런데, 공론화위에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을 배제한 것은 학술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검토가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목적합리성을 결여한 조치이며, 특정 집단의 담론 참여가 부당하게 제한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 역시 결여하고 있다. 시민참여단을 위한 자료집에 건설 반대 측의 왜곡된 자료가 수록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관계 측면에서의 목적합리성과, 담론의 진리성, 정당성, 진실성 차원에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시민참여적 숙의민주주의가 본래의 이상대로 잘 이루어져야 할 텐데, 이 두 가지 사항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이번 공론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고 모범적인 사례로 남는 것을 에너지 정책의 차원과 민주주의의 차원 양쪽 모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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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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