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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히오스로 보는 디지털 매체철학: 요약과 소개

- 인간은 기호적 존재이므로 매체 속 가상을 실재와 다름없이 소비한다.

- 매체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성장함으로써 세계를 확장시킨다.

- 디지털 매체는 서로 다른 전통매체들로부터 온 컨텐츠들의 질적 차이를 지우고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다.
- 따라서 디지털 매체 속에서는 서사성이 약해지고, 컨텐츠들은 본래의 서사에서 벗어나 탈맥락적으로 조합된다.

- 디지털 매체에서의 이와 같은 서사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서사가 매번 자유롭게 재창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게임성'과 직결된다.
- 히오스에서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시공의 폭풍으로 빨려들어가, 그의 본래 배경과는 관련없이 탈맥락적으로 등장한다. 서사가 붕괴된 그 공간에서 그들은 영원히 전투를 벌이며 매번 새로운 서사를 창조한다.
- 이런 면에서 시공의 폭풍은 현대 매체에 의해 실현된 '게임성'의 날것 그대로의 표현이며, 히오스는 '게임에 대한 게임', '게임 중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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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문재인 정부의 6개월: 지지와 비판 그리고 촛불정신

  물론 문재인 정부가 소위 촛불정신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반영한다면 좋은 일일 것이며, 나 역시 그러길 바란다. 70퍼센트대의 지지율을 가진 정부와, 대선 당시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역량을 보여준 민주당이 그 능력을 좋은 데 활용해서 바람직한 방향의 적폐청산과 사회개혁을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그 촛불 정신의 '필연적인' 귀결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허지웅 평론가가 문재인 정부가 '혁명 정부'라는 특수성을 가지므로 정부의 방향성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서사적 미의식을 정치영역에 투사해서 나온 부당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강력한 여론에 의해 뒷받침된 일련의 정교한 민주적 절차에 따른 박근혜의 탄핵은 그 정치사적 의미가 대단히 크다. 촛불을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으로 귀속시키지 말고 개별 정부를 초월해 있는 무엇으로 보되(한국의 민주주의 환경을 볼 때, 촛불 개념을 이렇게 잡는 건 토템 같은게 아니라 나름 실체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정신의 실현을 위해 잘 노력하고 성과도 거두고 했다는 식으로 회자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오히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제일 좋은 그림일 것이다. 실제로 촛불에 대한 청와대의 오피셜한 인식도 오히려 이 쪽에 가깝다. 진보세력에게 '촛불 도둑'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비난하는 일부 지지자들과는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그림을 위해서는 강성 지지자들이 좀더 비판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비판은 실패를 바라고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사전적 의미로도 그렇다. 지금보다는 지지자들이 좀 더 수용적이어야 한다. 정권 힘빼기를 위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터놓고 따져 보자는 취지의 비판이라면 말이다. 물론 본래 취지는 후자였는데도 전자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일을 적확하게 견제하는 게 바로 지지자의 역할이다. 그리고 적절한 비판은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진짜 발목잡기식의 비난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지지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잘못된 부분, 여론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빠르게 개선하여 좋은 정부로 남아야 할 것 아닌가.

  진보진영과의 반목,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정점을 찍은 MB정권의 망신주기 등에 따른 노무현 트라우마를 이해하며, 나부터가 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정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언급하며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막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이다. 나도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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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2017년 10월 1일 일요일

과학기술 이슈에서 시민참여적 민주주의의 가능조건: 원전 공론화위를 둘러싼 최근의 잡음과 관련하여

[ "사실왜곡" 신고리 건설재개측 반발...흔들리는 공론화 (2017.09.30) ]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 여부를 논의하는 공론화위원회에서 원전 관련 정부출연기관 전문가를 배제할 것을 건설 반대 측이 요청했다고 한다. 사실왜곡이라고 수 차례 지적된 건설 중단 측의 자료가 시민참여단을 위한 자료집에 결국 수정 없이 그대로 수록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너무나 답답하다. 500여명의 시민참여단이 내린 결론이 건설 여부 결정으로 직접 이어지게 되므로 신중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 출발이 될 자료집 제작 단계부터 건설 중단 측의 위와 같은 행동이 드러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후쿠시마 사태 및 MB정부 원전 비리 등을 통해 쌓인 원자력에 대한 불신의 벽의 존재를 납득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며, 그러한 불신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러한 노력은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원자력 종사자 전체를 마피아라고 취급할 정도의 거대한 불신을 그저 '자연스러운 일', 심지어 '원자력계의 업보'라는 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나이브하다. 건설 반대 측에서는 자료의 기본적인 사실왜곡에 대한 지적을 수용하지 않고 공론화 자료집에 그대로 수록하기까지 하는데, 정작 원자력 분야 종사자는 세부 영역에 무관하게 소위 '핵피아'로 취급되면서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말살당하는 것은 명백하게 부당하다. 이러한 분위기가 탈핵 진영에 의해 조장된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전 관련 고위직에 있으면서 큰 금전적 이득을 취할 가능성을 발견하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을 넘어서서, 과학기술, 에너지정책, 산업정책 등 각 영역의 원자력 전문가 전체에 대해 탈핵 진영에서 ‘핵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낙인을 찍고, 심지어 공론화위에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을 제외하라는 당황스러운 요구까지 하는 것은, 건설 중단 쪽에 당위가 있다고 강력하게 전제하고, 따라서 혹시라도 건설이 재개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건설 재개 측이 뭔가 발언권을 얻는 것 자체를 큰 위협으로 여겨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원자력 관련 종사자, 특히 과학기술 쪽에서 연구해온 원자력 공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원전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문제를 은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원전과 방폐장이 가질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공학적인 관점에서 원전과 방폐장의 안전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해 온 경우가 많다. 현대의 정밀 공학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와는 달리, 리스크가 없는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 역시 오해와는 달리 - 이러한 리스크를 예측 가능한 범주에 넣고자 하는 작업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건설 반대 측이 이러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들을 공론화위에서 배제하도록 요청하고, 왜곡된 내용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료집에 수록한 등의 일련의 행동은, 물리적 세계에 실재하면서 작동하고 있는 원전이라는 공학적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접근 시도를 차단하고, 나아가 그러한 과학기술적 영역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며, 오로지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관념상에 존재하는 ‘정책적 대상’으로서의 원전에 대한 논의만으로 공론화를 매듭짓고 결론을 도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지극히 우려된다.

  잘 조직된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치참여가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시민주의자이자 일종의 진보주의적 공동체주의자로서, 신고리원전 건설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시민참여적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참여적인 공론장은 논의에 있어 적절한 근거를 선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첫째로는 학술적인 사실관계, 경제적인 효율성 등을 판단하는 ‘목적합리성’, 둘째로는 담론의 진리성, 정당성, 진실성을 추구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런데, 공론화위에서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을 배제한 것은 학술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검토가 차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목적합리성을 결여한 조치이며, 특정 집단의 담론 참여가 부당하게 제한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 역시 결여하고 있다. 시민참여단을 위한 자료집에 건설 반대 측의 왜곡된 자료가 수록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관계 측면에서의 목적합리성과, 담론의 진리성, 정당성, 진실성 차원에서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시민참여적 숙의민주주의가 본래의 이상대로 잘 이루어져야 할 텐데, 이 두 가지 사항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이번 공론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고 모범적인 사례로 남는 것을 에너지 정책의 차원과 민주주의의 차원 양쪽 모두에서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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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