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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1일 목요일

'군무새'에 대한 관점: 사회가 책임을 분담하자

  소위 '군무새'에 대해 대화할 때 그들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 표출과 희화화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복학생들 스스로도 군대에 대한 얘기를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많이 하지 말자는 식으로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하에서 언급할 '사회의 군대화' 문제를 제하고 보면 군대 얘기를 사회에서 하지 말자는 건 본질적으로 TPO의 문제에 가까우며, 갑분싸를 방지하고 활기찬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여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히려 정반대로 접근해야 한다. 오히려, 군대 얘기는 여전히 '너무 적게 이뤄져서 탈'이다. 군대 얘기는 주로 과도한 자부심 표출이나 극도의 한탄과 같이 주변인들을 곤란하고 불쾌하게 하는 방향, 그리고 면제자∙미필자 차별과 '사회의 군대화' 등의 매우 유해한 방향을 위주로 표출되어 소산되는 데 그친다. 이를 비판하는 축에서도 여러 공동체에 잔존하는 군사 문화를 남성중심주의와 필연적으로 연결하여 비판하거나, 군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거나 금기시하는 등, 개인의 마음가짐에 대한 가이드라인 이상으로 거시적인 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도움이 되는 담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징병제도의 변화 필요성, 더 나아가 군대의 필요성(!)에 대해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정치관 중에서도 매우 코어에 위치한 부분이며 징병제 사회에서 사회적으로도 금기시되어 온 부분이므로 지극히 민감한 문제이다. 이러한 논의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군대란 어떤 조직이며 어때야 하는 조직인지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모병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징병을 두려워하는 '남자답지 못한' 사람인 것이 아니며, 징집의 대상이 되지 않는 여성이라고 해서 군대 문제에 대한 발화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군대에 대한 얘기, 혹은 '군대 물 덜 빠진' 듯한 얘기를 참고 들으면서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모임 자리에서 군대에 대한 얘기가 불편감을 주므로 자제할 것이 권장되고, 적어도 현재 주류적인 방식의 군대 얘기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게 아니므로, 군대에 대한 얘기를 효과적으로 수용하여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요를 말하자면, 첫째로 군대에서 겪은 힘든 일들과 부당한 일들에 대한 증언이 솔직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접수되어 유익한 영향을 낳을 만한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어떠한 장치도 없이 군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억울함을 사실상 당사자 개인에게 오롯이 떠넘겨서 감내하도록 하는 현재의 상황은 매우 가혹하다. 그나마 있는 군인권센터가 왠지 모르게 뭔가 불온하거나 편향적인 무언가로 여겨지면서 보편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누구의 책임이든간에 이런 상황도 반드시 해결이 필요하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최근 수년 간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이 가시화되며 성과와 한계를 보인 바 있는데, 물론 이들의 방법론을 무작정 군대 문제의 접근에 이식해서는 안 되겠지만 가시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기반으로 참고할 만한 지점을 찾아보면서 요인에 대해 분석할 필요는 있다고 보여진다.

  둘째로, 높은 직급의 모범적인 군인, 어려운 환경에서 복무한 군인, 그리고 소위 '꿀을 빤' 사람 등의 다양한 경험이 모두 가시화될 필요가 있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보상이 필요하다(사실 이 부분은 군인들의 모범적인 사례 같은 것이 미디어에서 더 많이 조명되고 이미지가 개선되어야 해결될 문제 같긴 하다). 사회적 존중이 없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존중을 찾으려 하는 것이 군무새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여기서 군인에 대한 존중이 면제자∙미필자 차별과 '사회의 군대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지극히 중요할 텐데, 이하에서 서술하겠지만 사회에 '시민성'이 확고하게 성립되어 있다면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얘기가 결국 고대 로마로 회귀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소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군대의 영향으로 정말 심각하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고 이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트라우마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회적으로 접근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지, 공동체에서의 배척만으로 끝나는 현재의 세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사적인 개인들에게 무한한 아량에 따른 모범적 해결을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이 공동체에서 배척되거나 역으로 공동체를 장악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방관해서도 안 되므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공적인 장치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 위와 같은 것들은 물론 실현되면 좋은 것들이긴 하겠으나, 본래의 의도대로 실현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위와 같은 부분들이 주의깊고 세심하게 이뤄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역으로 '사회의 군대화'가 일어난 부분은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군대라는 일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군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게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시피 한 기형적인 사태는 바로 이것을 경계하다 보니 벌어진 것일 듯하다.

  그리고 소위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전세계가 지금 당장 총을 내려놓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낭만주의적인 생각만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무새' 현상 그리고 군 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이해, 나아가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필요하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폭력이라는 것을 언급 자체를 거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군대에 대한 대안적 담론을 그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어야지만 군대에 관한 '폭력적인' 담화를 쇠락시키고 군대의 '폭력에 관한' 제대로 된 담론을 등장시킬 수 있다. 나도 앞으로 그 중에 한 명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 볼 생각이다.

  요약하자면, 군대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으로서 주민을 국민화하고 엘리트를 최전선에서 양성하던 시절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한 때 사회와 군대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져서 면제자∙미필자 차별과 '사회의 군대화' 등의 수많은 문제를 낳았고, 그래서 민주화된 사회의 시민들은 군대를 사회로부터 격리했다. 그러나 군대의 구성원은 군대 이전에도 사회 구성원이었고 군대 이후에도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그런 격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시민성을 바탕으로 한 집단적 책임 의식을 담지한 채, 군대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없는 특수성은 개혁해 가며 군대를 관리하는 공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우리네 시민사회는 쉽사리 '군대화'되지 않을 만큼의 맷집을 가지게 되었다. 주민들을 관리하던 군대가 이제 시민들의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군대 얘기는 바로 이렇게, '시민성을 바탕으로'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폭력', '시스템'이라는 키워드와 떼어놓을 수 없다. 우리는 폭력에 대해 비폭력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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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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