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뉴스피드를 5분 넘게 스크롤한 것 같은데 거의 모든 게시글이 워마드의 성체훼손 관련 글이다. 무언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자주 화제가 되는 워마드라는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와, 하필 이번에 모욕된 것이 종교적 상징이라는 사실에 대한 논의가 겹쳐져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개인적 관심 때문에 후자를 언급하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자라고 주장해 볼 것이다.
성체는 실제 육신이 아니지만 육신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인데, 상징이 아니라 실제 육신이라고 주장하는 교인에게는 그렇게 믿는구나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믿음이 바로 상징작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기의 위반을 긍정하는 종류의 삶이 아닌, 금기를 실천하며 정신적 수양을 하는 종류의 삶이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 굳이 그 상징이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인들을 화나게 하는 것 외에는 큰 효과를 갖지 못한다. 이것은 '상징이 허위이긴 하지만 굳이 그걸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라는 일각의 시혜적(?) 입장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언어 분석을 잘 하기만 한다면, 상징 효과 자체는 허위가 아닌 분명한 사실이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며 종교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나는 여러 사안에서 상징 효과를 의도적으로 걷어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며, 따라서 대중이 웬만한 금기 위반에는 정신적으로 끄떡하지 않고 그 위반의 가능성을 덤덤하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을 실질적으로 철폐하고자 함이 아니라, 상징인 것과 아닌 것을 인지적으로 잘 구분하기 위함이다. 상징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풍요로운 문화 현상과 그 향유자들을 마음 깊이 존중하되, 그 현상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메타적인 고찰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이라는 것이 작동하는 한, 무신론자 및 세속주의자는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희망하고 추구할 수는 있을지언정, 현실적으로 누군가에게서 작동하는 상징작용을 하찮게 여기는 것 그 자체에서 자부심을 얻기보다는, 오히려 상징에 영향을 덜 받는 자신의 성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해서 상징이라는 것의 강력함을 사유하고, 원한다면 상징작용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쪽으로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상징 훼손에 대해 분노하는 교인들을 깔보는 데에서 그치는 반응은 그냥 성체 훼손 글의 게시자가 정확히 의도한 바에 다름 아니다.
워마드에서 태극기를 폄하한 것이 논란이 되었을 당시엔, 나의 페친 풀에서는 이것이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며 국가주의의 철폐를 주장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사실 그것이 이번 건에 대한 태도와는 정반대로 상충되기는 하지만, 그리고 나는 국가 상징물에 대한 온건한 수준의 애정은 괜찮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한 번 변호를 해 보자면, 현실적으로 종교적 상징에 투사되는 종교권력에 비해 국가 상징물에 투사되는 국가권력이 더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만약 해외의 종교국가든 혹은 국내의 소규모 커뮤니티든, 종교권력이 정말로 무섭게 작동하는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게시자가 위협을 받았다면 나 역시 그 게시물에 대한 논평보다는 종교권력의 철폐를 우선적으로 주장했을 것 같다. 또한 이번 일에서도 혹시 앞으로 게시자의 신상이 밝혀져서 실질적인 위협을 받는다면 그 게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주장할 것이다. 사실 가톨릭에 의한 위협보다는 과격한 반페미니즘 측에 의한 위협이 더 우려되기는 한다(...). 상징 작용은 풍요로운 문화적 자산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존중되어야 하지만, 실질적 권력이 부여되어 억압으로 작동한다면 가차없이 비판되어야 한다. 상징이 권력이 되면 그 집단은 제대로 된 공동체라기보다는 이념의 전시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무언가를 모욕하는 방식으로 자주 화제가 되어 온 워마드라는 커뮤니티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가장 먼저 상기해야 할 점은 워마드는 단일 대오를 이루는 단체가 아니며 불특정한 익명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세우는 구체적인 정치적 테이스트 등에 관계없이, 그들이 작동하는 방식은 2010년대 초반부터 많은 어그로를 끈 일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인터넷 문화 그 자체인 디시인사이드를 정확하게 모방하고 있다. 그런 공간들에서는 혐오할 대상을 선택하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금기시하여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타겟팅하여 희화화하는 놀이가 벌어진다. 그리고 대중들이 그것에 대해 금기를 위반했다며 엄격, 근엄,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을 짜릿하게 즐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여기에 마치 기자의 취재와 같은 방식으로 진지하게 반응하면 마찬가지로 조롱의 대상이 되어 '지는 거'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역시 이러한 전형적인 ‘혐오 놀이’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위가 정치적 유효성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예컨대 코미디 프로그램이 정치적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꿀잼일 수도 노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 두 축에서 형성되는 4개의 케이스 중 꿀잼인 정치풍자 코미디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인정되는 집단에 한정하여) 정치적 유효성을 갖겠지만, 나머지 케이스는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그 정치성을 선언하는 것과, 실제 정치성이 인정되는 것은 별개 문제라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성체훼손 건의 경우에는 정치성을 선언했는지 여부는 매우 애매하다. 혐오 놀이의 특성상 논란이 될 가능성을 당연히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정치적 목적이라고 간주하기보다는 놀이로 간주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사실적 유효성과 규범적 유효성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규범적으로 봤을 때 유효한 정치적 행위가 아니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정치적 논란을 낳는다면 그것은 정치성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별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 뿐이다. 예컨대 종교 지도자의 성범죄 등을 나열하여, 혹은 낙태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들을 나열하여 종교에 대한 혐오를 자극했다면,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공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어떠한 문제를 분명히 제기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번 성체 훼손 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진지하게 종교에 대한 공격이 될 거라고 믿은 거라면 그냥 저주인형에 못을 박는 토테미즘적 행위일 뿐이고, 그렇지 않다면 짜릿한 혐오 놀이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성을 선언했는지의 여부가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정치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다루어질 여지가 많다. 혐오를 바탕으로 논란을 야기한 사건이고, 이 혐오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난민 논란에서 보았듯, 혐오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강력하며, 관계의 섬세한 형성이 아닌 관계의 단절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반대의 스탠스에 놓인 사람들도 같은 대상을 혐오한다면 일시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혐오가 아닌 연대의 논리라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혐오의 타겟은 이렇듯 어디로든 쉽게 향할 수 있으므로, 혐오를 특정한 방향성을 갖도록 해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그 의도대로 정밀하게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질적인 타자를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논의로서, 현대의 가장 큰 의제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나는 혐오 놀이에 기반을 둔 사회 운동이 장기적으로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설령 혐오감을 바탕으로 출발해 버렸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방향대로 잘 이끌기 위해서는 즉각적으로 양질의 이론을 공급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를 지난 2~3년간 우리는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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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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