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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3일 토요일

대중을 타자화하는 정치인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문제적이라고 간주되는 어떤 경향성을 보이는 특정 계층 혹은 집단의 정치적 주체성(혹은 주체화의 가능성)을 지워 버리는 사고방식이 근래에 일부 여권 인사들의 실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 양상은 서로 정반대되어 보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1)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좋은 의제를 가지고 노력했음에도 그들은 계몽되지 않고 있다. 결국 그들 개인의 탓이다.

(2)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 개인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처한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물론 지극히 단순화시킨 것이기는 하다. (1)은 주로 혁명을 바라는 진영에서 자신들의 노력 이후에 찾아오는 냉소로 인해 나오는 발언이고, (2)는 주로 온건한 방식을 좋아하는 진영에서 나름대로 포용적인 태도를 의도하면서 하는 발언일 테다. 최근의 잇따르는 실언은 진보주의자이자 민주화 투사로서 가지는 (1)과 같은 태도가 살짝 엿보이긴 하지만 일단은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정부여당 인사으로서 가지는 (2)와 같은 태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위 두 가지는 정반대되는 주장 같지만, 사실 둘 모두 그 개인들을 자신이 설득해 내서 잠재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취급하지 않고, 어떤 문제를 풂에 있어 주어져 있는 전제 조건처럼 보고 타자화시킨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다. 말하자면, 정치인으로써 설득과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척이라도 하) '상호주관적'인 태도로 대중을 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분석가 내지는 평론가처럼 '객관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 객관이란 것도 게임을 많이 한다거나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교육 때문이라는 등의 뇌피셜에 불과하다는 것은 덤이다.

내가 어떤 분에게 처음으로 듣고 꾸준히 사용하는 "정치적이기 전에 인간적이어야 한다"라는 문장은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거나, 잘못된 행동에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 따위가 아니라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문장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특정 계층이 보이는 경향을 오직 전제된 조건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향 자체에 대한 변화와 설득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발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인간적인 것인가 하면, 인간은 (사실적, 당위적 측면 모두에서) 그렇게 생겼으며 그렇게 대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공학, 전략적 접근 등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전자처럼 할 경우 위의 (1), (2) 모두에서 정치공학'' 남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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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3일 일요일

『통섭과 지적 사기』: 전선에서 산출되는 비판

  아예 정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접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서로 시비가 걸리더라도 논의가 겉돌면서 유의미한 비판이 잘 생산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오히려 활동 영역이 겹치지만 분명히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 싸우면서 서로가 가진 문제점을 폭로하여 고찰하도록 해 줄 수 있다. 역시 진공 속에서보다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야 비로소 구체적인 국면들이 변증법적으로 산출되는 것 아니겠는가.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하고자 하는 '통섭'을 대단히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 『통섭과 지적 사기』(이인식 기획)이 있어서 저자가 어떤 분인지 봤더니 '융합'을 선도적으로 주장해 온 인물이었다. 분명히 다른 기원을 가진 통섭과 융합이라는 두 단어가 인기를 모으는 과정에서 늘 병렬적으로 소개되고 심지어 동의어처럼 간주되면서 대중적으로 비슷한 진영으로 여겨지는 데 대한 모종의 위기감이 이 책의 기획 동기가 아닐까 싶다. 융합의 가치를 철저히 수호하고자 하는 이 책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거나, 수록된 개별 글들의 본래 목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융합과 통섭 사이에 어떤 역사적, 잠재적 대립이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통섭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비판이라는 점에서 읽어 볼 만할 것이다. 반대로 통섭을 주장하는 이들이 융합에 대해 언급하는 글도 있다면 흥미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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