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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월요일

작가의 작품개입이 부당해지는 순간



작품이 완성되고 독자들에게 수용되면 그때부터는 작가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작품을 향유한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그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라는 공통된 기반을 가진 채로, 그러나 각기 다른 형태로 수용되고 해석되면서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기존에 작품 내에서 표현되지 않았던 사항들을 트위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언급하면서, '사실은 이러한 것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한 마디씩 던진다. 그런 말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작품세계는 작품에서 표현된 오직 그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작품의 배후에서 실제 세계에 준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음을 가정하고 그것을 상상하는 일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 창작 당시에 표현되지 않았던 설정이나 사건을 작가가 한 마디씩 끊임없이 추가하는 것은 무의미를 넘어 TMI이며,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들에게 수용되어 있는 작품에다 다시금 작가적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는 부당한 시도로밖에 달리 평가하기 어렵다.




물론 작품세계 밖 실제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이 드러나도록 설계된 작품, 혹은 자기 자신의 외연을 그 텍스트 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작품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애매하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구체적인 예시를 알거나 스스로 제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가는 과정 자체에서 농도 짙은 예술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작 당시에 무언가를 설정해 두고 있었다는 '창작 비화'의 형태라면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좋다. 설령 그것이 독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모종의 이유로 '깨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작품의 이해와 평가, 새로운 지평의 발견에 도움이 되는 이러한 '창작 비화'가 아닌, 그저 탈맥락적으로 내용을 추가할 뿐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당히 난감하다. 그것이 실제로 작가가 창작 당시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인지, 혹은 이후에 추가한 생각인지에 관계없이 말이다. 해당 작품의 오래된, 그러나 매우 라이트한 팬인 나의 입장에서, 혹시 이러한 행동들에 팬들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다른 예술적 의도(혹은 예술 외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부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만약 작품의 세계관 아래에서 나올 후속 작품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탈맥락적으로 제시되기보다는, 해당 후속 작품들 내에서 충분히 표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저 미감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처럼 무언가가 멋지지 않다는 주관적 인상을 보편적으로 전달 가능한 언어로 풀어내고자 할 때는, 늘 윤리적 규정성에 의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으로 읽힐까 걱정스럽다. 만약 그렇게 읽힌다면 그것이 내 글쓰기의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이 미감의 차원이라고 해서, 윤리적 차원에 비해 진지하지 않은 것도 결코 아니다.



댓글 1개:

  1.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의 특정 등장인물이 성소수자였다고 작가가 직접 밝힘으로써 성적 소수자성의 가시화투쟁에 기여하는 등, 이러한 작가의 행동이 작품의 가치를 한번 더 환기하고 더욱 빛내인 면모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빛내임 역시 작가가 작품에 사후적으로 개입한다는 본질적인 문제성을 어느 정도 감수해 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후적 개입이 비슷한 양상으로, 혹은 퇴행적인 양상으로 반복되고 만성화된다면 결국 박수를 쳐 주기도 뭔가 민망한 상황이 된다. 앞서 말한 빛내임이 약해지고 희생된 것들만이 눈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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