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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7일 월요일

강요되는 근본주의: 그들의 악의적 독해에 위축되지 말자

최연소 연예부장으로서 여러 연예인들에 대하여 비하성, 논란성 기사들을 써서 연예인 팬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김용호 기자는, 최근에 우파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김세의, 강용석의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배우 정우성이 중졸이므로 변호사 연기를 못 한다는 등의 비하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우성이 상당수의 진보적 국민들에게 모범적이라고 간주될 만한 사회참여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 있는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김 기자가 이번에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을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라며 자신의 채널에서 비난한 모양이다. 우파 진영은 파괴력 있는 컨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대로라면 '문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외치는 그의 위기감 넘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페친 분들이 탁월하게 지적해주신 바 있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지점은 바로 김 기자의 봉준호 감독 비난에서 엿보이는, 좌파사상에 대한 특정한 악의적 독해법이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어 왔으나(아마 <괴물>에서의 비판적 묘사 등을 염두한 것 같다), 정작 대표적인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에서 투자를 받아 <옥자>를 만들었다며, 이것이 좌파들의 이중성이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현대의 영화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대적 체제를 완벽히 벗어난 대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한가운데에서 예술과 인간성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대중문화 장르의 저력 아니겠는가. 이것은 현실과 신념의 중간 어디쯤에서 신념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식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을 실천하되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하는지와 관련된 '양태'의 문제이다.

즉 김 기자의 이러한 비난은 좌파사상에 대한 '근본주의적' 독해를 악의적으로 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잘못된 비난이다. 조금 확장해 보자면, 이것은 최근에 청년보수 진영과 극우개신교 진영 등에서 다수 생산되는, 좌파, 운동권 등을 비판하는(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칭하며 좌파세력과 동일시하는) 뉴미디어 컨텐츠들이 높은 비율로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좌파라면 모름지기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알고 있는 전통적, 전형적인 좌파의 모습(주로 90년대까지 융성했으며 사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지하조직 중심으로 작동했던 '운동권')에 시대착오적으로 근거하여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그 요소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그 요소를 충분히 강력하게 취하지 않는 좌파에 대해서는 또 위선적, 이중적이라며, 혹은 이득에 따라 비일관적으로 행동한다며 비난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 신념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특정한 신념체계 전체를 문자 그대로 추종하며, 충돌하는 것들을 전적으로 거부해 버리는 것만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여기는 '근본주의'의 거울상에 불과하다. 아마 극우진영에서 유달리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좌파진영에서 매우 강경한 목소리를 내다가 소련 붕괴 이후 전향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미제의 산물인 콜라를 먹지 말자고 할 정도의 강성 좌파였으나, 나중에는 박근혜 정권에서 어버이연합 등의 극우단체를 동원하여 관제데모를 주도한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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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3일 목요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 서거 10주기를 맞으며

  10년 전 오늘의 기억을 회고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흔치않은 10의 배수인지라 오늘은 나도 그 집단기억에 두서없는 몇 자를 보태 보고자 한다.

  나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침에 방에서 쉬고 있던 중 친구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문자를 받고 처음에는 그 친구의 짖궂은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으나, 매우 갑작스럽고 놀랍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 친구가 재차 사실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방에서 나가 봤더니 가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참여정부 대통령인수위와 행정부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나는 노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연히 친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정치를 잘 몰랐음에도 인터넷상에 대운하 등으로 이명박을 조롱하는 밈이 많았던지라 역으로 민주당계열 정부에 막연하게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별개의 얘기지만 당시에 극우매체 뉴데일리를 보고 충격받았던 게 내 지금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준 듯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그 사건이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현재적'일 것으로 보이므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하여 학술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조명작업은 아직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증언과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의 영역보다는 현실정치와의 연관 하에서 수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런 증언과 일화들은 정치를 떠나서도 역사적 기록으로서 틀림없이 소중하므로 끊임없이 찾아보고 기억하게 되는 면이 있다(다르지만 비슷하게, 얼마전에 박근혜정부 말기의 내부 상황을 옹호적, 동정적으로 기록하여 신동아에 실린 글도 어떤 점에서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청와대 내부의 기록들뿐 아니라, 국민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참여정부 시기의 각종 정책들이 어떻게 수립되고 수행되었는지, 또한 그러한 과정 중 소위 '노무현 정신'의 구현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디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끝없이 길어질 테니 내 개인적 평가를 간추려 보자면, 말과 글을 도구로 하는 민주적 통치,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적 기록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실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좋은 모습 중 하나였으며, 이는 말과 글에 있어서 무척이나 능했던 대통령 개인의 '스탯'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늘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지만 정작 '말을 잘 못한다'라는 컴플렉스가 아주 강한 내 입장에서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던지 언어적 표현을 갈고닦아 적시에 꺼낼 수 있는 능력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는 다들 알다시피 순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소위 기득권층의 공격뿐 아니라 '약자'에 해당하는 계층의 대표세력과의 대립도 많았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당 계열과 진보세력의 대립이 더욱 공고해지기도 했다.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실망한 이들, 그리고 아주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된 이들도 많다. 여담이지만 노무현이 비판했던 보수언론의 무서움을 나는 상당히 최근에야 체감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는 소위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으며 글 쓰는 사람들끼리 상당히 생산적으로 싸웠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나의 직접적 경험이 아닌 기록을 통한 유추이지만,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논쟁과 사건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독 참여정부 시기에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아마 인터넷이 발달했으나 소위 뉴미디어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지 않은 기술적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글 쓰는 사람들 중심으로 자주 이야기된 '시민사회'는 그들의 의도나 자기인식과는 관계없이 엘리트적인 면이 없지 않았고 높은 수준의 정치성을 지속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것은 내 경험의 한계상 철저히 온라인공간 상에서의 파급력을 중심으로 한 편협한 평가일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결과적으로, 여러모로 '한국적 리버럴'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하지만, 혁명이 아닌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위 '좌파'와는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확고하게 탄생하게 된 시기가 참여정부 시기가 아닌가 한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도 양면적인 평가가 있을 것 같다. 컴퓨터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고, 인터넷의 잠재력을 인식했으며 대통령 재임시절 프로그래밍 능력을 바탕으로 이지원시스템 개발에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던(그리고 이것들을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결부짓고자 했던) 대통령이었으나, 과학정책에 있어서는 황우석 사건이라는 두고두고 회자될 '흑역사'격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과학 연구 내용 그 자체를 정치의 영역과 과도하게 결부짓는 과정에서의 여러 오판이 단적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주도한 '황금박쥐'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십수 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까지 잊을 만하면 등장하곤 한다.

  결론짓자면, 노무현 개인이 여러 가지 면에서 가졌던 유능함은 매우 탄복할 만한 것이나, 대통령으로서 그의 정치적 한계 역시 오직 외적 여건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엔 여전히 새로운 것이었던) 대통령 선출의 민주적 정당성, 대통령 개인의 카리스마, 개혁론자들의 기대와 실망, 재임기간 내내 어려웠던 외적 여건 등은 아직까지도 정치에 관심 있는 사회구성원 상당수에게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기억이 되었으며 입체적 평가를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으로는 대통령의 훌륭했던 점이 보편적인 민주 정치의 가치와 결부되어 계승되어야 하고, 한계를 보였던 점은 솔직하게 조망하며 분석되어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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