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오늘의 기억을 회고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흔치않은 10의 배수인지라 오늘은 나도 그 집단기억에 두서없는 몇 자를 보태 보고자 한다.
나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침에 방에서 쉬고 있던 중 친구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문자를 받고 처음에는 그 친구의 짖궂은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으나, 매우 갑작스럽고 놀랍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 친구가 재차 사실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방에서 나가 봤더니 가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참여정부 대통령인수위와 행정부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나는 노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연히 친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정치를 잘 몰랐음에도 인터넷상에 대운하 등으로 이명박을 조롱하는 밈이 많았던지라 역으로 민주당계열 정부에 막연하게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별개의 얘기지만 당시에 극우매체 뉴데일리를 보고 충격받았던 게 내 지금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준 듯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그 사건이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현재적'일 것으로 보이므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하여 학술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조명작업은 아직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증언과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의 영역보다는 현실정치와의 연관 하에서 수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런 증언과 일화들은 정치를 떠나서도 역사적 기록으로서 틀림없이 소중하므로 끊임없이 찾아보고 기억하게 되는 면이 있다(다르지만 비슷하게, 얼마전에 박근혜정부 말기의 내부 상황을 옹호적, 동정적으로 기록하여 신동아에 실린 글도 어떤 점에서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청와대 내부의 기록들뿐 아니라, 국민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참여정부 시기의 각종 정책들이 어떻게 수립되고 수행되었는지, 또한 그러한 과정 중 소위 '노무현 정신'의 구현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디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끝없이 길어질 테니 내 개인적 평가를 간추려 보자면, 말과 글을 도구로 하는 민주적 통치,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적 기록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실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좋은 모습 중 하나였으며, 이는 말과 글에 있어서 무척이나 능했던 대통령 개인의 '스탯'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늘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지만 정작 '말을 잘 못한다'라는 컴플렉스가 아주 강한 내 입장에서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던지 언어적 표현을 갈고닦아 적시에 꺼낼 수 있는 능력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는 다들 알다시피 순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소위 기득권층의 공격뿐 아니라 '약자'에 해당하는 계층의 대표세력과의 대립도 많았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당 계열과 진보세력의 대립이 더욱 공고해지기도 했다.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실망한 이들, 그리고 아주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된 이들도 많다. 여담이지만 노무현이 비판했던 보수언론의 무서움을 나는 상당히 최근에야 체감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는 소위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으며 글 쓰는 사람들끼리 상당히 생산적으로 싸웠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나의 직접적 경험이 아닌 기록을 통한 유추이지만,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논쟁과 사건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독 참여정부 시기에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아마 인터넷이 발달했으나 소위 뉴미디어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지 않은 기술적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글 쓰는 사람들 중심으로 자주 이야기된 '시민사회'는 그들의 의도나 자기인식과는 관계없이 엘리트적인 면이 없지 않았고 높은 수준의 정치성을 지속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것은 내 경험의 한계상 철저히 온라인공간 상에서의 파급력을 중심으로 한 편협한 평가일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결과적으로, 여러모로 '한국적 리버럴'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하지만, 혁명이 아닌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위 '좌파'와는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확고하게 탄생하게 된 시기가 참여정부 시기가 아닌가 한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도 양면적인 평가가 있을 것 같다. 컴퓨터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고, 인터넷의 잠재력을 인식했으며 대통령 재임시절 프로그래밍 능력을 바탕으로 이지원시스템 개발에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던(그리고 이것들을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결부짓고자 했던) 대통령이었으나, 과학정책에 있어서는 황우석 사건이라는 두고두고 회자될 '흑역사'격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과학 연구 내용 그 자체를 정치의 영역과 과도하게 결부짓는 과정에서의 여러 오판이 단적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주도한 '황금박쥐'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십수 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까지 잊을 만하면 등장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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