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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4일 금요일

꿈으로부터 포착되는 정신세계

  단지 깨어났을 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가다 꾸는 내 꿈들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는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는 일이 별로 없고, 스스로가 가진 건축적 구조를 통해 내 행동을 특정한 방식으로 말없이 조건짓는 '공간'들이 부각되어 등장하는 편이다.

  보다 자세히 묘사하자면, 내 꿈에서는 현실에서 경험한 공간들 중 인상에 남은 공간들이 상당히 웅장하게 과장되어, 그리고 때로는 서로 조합되어 등장한다. 그런 공간들 중 특히 자주 등장하는 것들로는, 긴 복도에 작은 공간들이 나뭇잎처럼 달려 있는 전형적인 학교 형태의 공간, 롯데월드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 틀림없는 거대한 실내 놀이공원, (어릴 때 자주 갔던 다양한 콘셉트를 갖춘 찜질방의 이미지가 반영된 듯한) 깊이 들어감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테마들을 보여주는 모험적인 선형적 공간, (중고등학교 때 다녔던 학원 건물들의 구조에 대한 표상으로 추정되는) 좁은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수직적으로 연결된 각기 다른 테마의 공간들, 건축 자재와 제어설비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복잡한 환승 구조를 가진 지하철역 등이 있다.

  이런 꿈 속 공간들에 대한 매우 신기한 점은, 이들이 몇 개월 혹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어떠한 예고도 없이 꿈 속에 계속 재등장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 각각의 공간들이 현실 세계로부터 떨어진 어딘가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크게 변하지 않은 구조를 가진 채 말이다.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명시적 의도와는 상관 없이 형성되는, '정신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어떤 형태로든지 분명히 있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이러한 '정신세계'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지, 그리고 단순히 꿈 속에서 갑작스레 일방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탐사하면서 시험하고, 나아가 특정 목적으로 활용해 볼 방법은 없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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